청춘의 운명을 지고
청춘의 운명을 지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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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이지원 전대신문 편집국장

“나는 기뻐요 나는 기뻐요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미쳐서 발가벗고 돌아다니며 노래한다. 극이 시작되자 어둡던 무대에 조명이 켜지면서 한 명의 미친 남자가 등장한다.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 것인가 궁금해마지 않았던 이들로서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남자의 등장에 당황해한다.

곧이어 이 남자는 또다시 말한다. “사람은 죽지 않는다. 잠잔다 하라…”라고.
미친 사람이 내뱉은 말치고 그 무게가 상당해 시작부터 가슴 한 편이 묵직해진다.
지난 19일 저녁을 먹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광주문화예술회관으로 신문사 후배들과 함께 황지우 원작, 이윤택 감독이 연출한 ‘오월의 신부’를 보러 갔다. 우연하게도 이 날 아침 ‘오월의 신부’ 원작자인 황지우 시인을 만나는 행운을 가졌다. 우리 대학 총장을 비롯해  ‘오월의 신부’를 주최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취재를 가서였다. 그 곳에서 ‘오월의 신부’ 원작을 만들게 된 배경과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인식 등에 대한 황지우 시인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시작 전부터 광주민중항쟁 그 역사적인 모습을 극으로 표현해 낸다는 특이성 때문인지 예술회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러 왔고, 빼곡히 객석을 채우고도 자리가 부족해 계단에 앉은 사람들도 많았다. ‘오월의 신부’는 극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감동 그 자체였다. 공연이 진행된 2시간 30분 동안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음악회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만약 그랬다면 사람들은 ‘한 번 더’를 외치고도 남을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

문득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25년이 지난 오늘 광주에서는 5·18을 재연한 뮤지컬을 볼 수 있게 됐다. 신문에서는 연일 망월동에 참배 온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을 기사에 싣고, 지면을 할애해 ‘임을 위한 행진곡’의 배경을 설명했다. ‘광주민중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오월의 신부는 그래서 보는 내내 서글펐다. 마치 80년 5월 그 당시로 돌아가 그 때 그 당시의 역사적인 순간을 체험이라도 하는 듯한 마력이었다.

‘오월의 신부’는 자막에서 나오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뮤지컬 중간마다 대사와 그 내용이 절묘하게 연결된 연희단거리패 앙상블의 노래가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았다. 아직도 몇몇의 대사는 귀에 쟁쟁하다.

“계엄해제, 계엄해제, 계엄해제…”
“누가 나가서 싸울까…”
“너가 해. 너가 해…내가 해. 내가. 내가 나가 싸운다”
“청년의 운명을 지고 오늘 나는 싸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많지 않지만 이름 없는 소시민들이 폭력과 억압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었다고 증언하는 오월의 신부. 최소한의 염치와 체면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던 광주 시민들과 학생들이 위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리라.
오늘 나는 ‘청춘의 운명을 지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한 청춘이고 싶다.

/이지원 전대신문사 편집국장jajen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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