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 교육민주화 선언'을 되돌아본다.
'5.10 교육민주화 선언'을 되돌아본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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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오창훈 광주 운남중 교사

   
▲ 지난 10일 오후 광주YMCA에서 열린 교육민주화 선언 10주년 기념식이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전교조 교사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교육희망
1986년 5.10 교육민주화 선언은 1989년 전교조를 탄생시키는 불씨가 되었다.

1982년 1월에 창립한 한국YMCA 중등교육자협의회는 YMCA 연맹 이창식 간사(현 국립청소년수련원 원장)의 주선으로 광주, 서울을 중심으로, 86년 교육민주화 선언 당시 20여 개의 지방 조직을 꾸리게 된다.

5?10 교육민주화 선언(당시 전국회장 윤영규)은 4개 지방회(서울, 광주, 춘천, 부산)  546명의 교사가 서명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2개월 동안 이어지는 실천대회에는 전국에서 수천명의 교사가 동참하게 된다. 당시 5공의 엄혹했던 정치 상황에서 ‘선언’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이후 87년 6월 항쟁, 그리고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그 해 9월「전국교사협의회」(15개 시도 교협) 창립으로 발전했고, 드디어 1989년 5월 28일「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5?10 교육민주화 선언은 교사들의 자기 반성과 정체성 회복의 몸부림이었다.  선언문은 “학생들과 함께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 교사들은 오늘의 참담한 교육 현실을 지켜보며 가슴 뜯었다. ……… 이제 우리는 맹랑한 꼭두각시의 허무한 몸짓을 그만 그쳐야 한다.”로 시작된다.

해방 이후 국가주의적, 관료주의적 교육이 지배하는 사회.정치적 풍토에서 교사는 국가 권력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교육에 관철시키는 존재로 역할 해 왔음을 통감하고, 진정한 국민의 교사로 거듭나겠다는 외침이었다.

교육민주화는 사회민주화의 토대이며, 완성으로 보았다. 1979. 10. 26 궁정동의 총성으로 막을 내린 줄 알았던 유신독재는 5공으로 서슬푸르게 되살아나, 5?18 광주학살로 이어졌고, 암흑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1986년 2월 총선에서 민중들은 여소야대를 이루어 냈고, 이는 한국 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에 사회 각계에서 민주화 운동의 싹이 움돋기 시작하였고, 교육계에서도 5~6년 동안 Y교사회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론적 무장을 한 진보적 교사들이 떨쳐 일어나 교육민주화 선언을 하게 된다.

교육민주화 선언은 학생과 학부모도 교육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 비정한 점수 경쟁과 물질만능의 상업주의 문화의 홍수 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 비민주적인 교육현장은 일방적으로 강요된 가치만을 학생들에게 투입할 뿐 ………”.

“학부모들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여유도 없이, 당면한 과열 입시경쟁 속에 자신과 사랑하는 자녀의 인간다운 삶을 저당 잡혔다.” "교사, 학생, 학부모를 교육의 주체로 확고하게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바로 교육민주화의 첫걸음이다.”

최근 광화문에서 고 1 학생들의 촛불 시위는 선언 20년이 지난 오늘, 교육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오며, 교육의 개혁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교육민주화 선언은 교사가 주체가 되어 새로운 교육 건설의 역사적 과제를 짊어지고 간다는 다짐이었다. 선언은 “모든 장애와 고난을 이기며, 민주 교육을 실천해 나갈 것을 오늘 엄숙히 선언한다.”로 끝을 맺는다. 1987년 6월 항쟁은 그동안 고통 받고 억눌렸던 민중의 힘이 분출되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고, 교육 민주화 운동도 양적,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초.중.고 학교 단위의 평교사회가 우후죽순처럼 결성되어 학내 민주화를 이끌었다. 나아가 시.군 별로 지역 교협과 광역시.도 단위의 교협이 결성되어, 교육청과 교육권을 신장시키는 여러 사안의 교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교사 대중조직의 기초를 다졌다.

5?10 교육민주화 선언은 10만 교사대중 조직으로 교육현장에 그 뿌리를 내렸다. 이후 꼭 3년 뒤, 우리 교사들은 연세대, 한양대에서 교사대중 조직인「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깃발을 올리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1,500여 선생님들이 교단에서 쫒겨났다. 그러나 해직교사들과 현장 선생님들은 10여 년의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전교조의 깃발을 사수한 끝에, 1999년 7월 1일 전교조는 합법화되고 현재 10만 대중교사 조직으로 교육현장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오창훈 광주운남중 교사oh5011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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