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칼럼] 두 지도자의 책임
[정병준 칼럼] 두 지도자의 책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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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채 전남대 총장. 박준영 도지사 책임져라

정치인이 소신이 있다는 것은 꼭 나무랄 일 만은 아니다. 대부분 시류에 따라 흔들리며 사는 세상, 오히려 칭찬할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소신에도 목적의 정당성과 절차의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부당한 주장을 끝없이 되풀이한다면, 그것도 범부(凡夫)의 일이 아니고 권력자의 일이라면, 그 폐해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2005년 전남 지역특성화사업 심사에서, 전라남도는 일관되게 건강기능성식품사업을 밀었다. 평가위원들에게 이 프로젝트를 지원해 줄 것을 요구했고,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공무원들은 터무니없는 점수를 주어 1등으로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가 재평가에서 탈락하자, 지역혁신협의회 운영위원회를 소집토록 해, 다시 한 번 뒤집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결과가 바뀌기에는 건강기능성식품사업은 사업계획이 너무 부실했다.

지역특성화사업을 공공기관이 아닌 개인기업이 주관하겠다는 것부터가 이례적인 일이거니와, 그 기술을 외국에서 도입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전무후무할 일이다.

개인기업이 지역특성화사업을 주관해서는 안된다는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기업의 유익한 기술을 다른 기업에 무상으로, 혹은 최소한의 실비로 제공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환영받을 일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안철수연구소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오메디는 기술개발능력을 믿을 수 없는 기업이다. 이 기업의 연구소가 있다는 영암군의 주소지는 ‘빈 창고’인 것이 확인됐고, 이 연구소의 기술개발 인력은 석사급 연구원 2명 뿐이다. 석사급 연구원 2명이, 텅 빈 창고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도입해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공공자금 36억원을 지원받게 되면, 그 돈으로 연구소를 짓고, 연구원을 고용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현대판 봉이김선달'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브퐁루아] 라는 프랑스 회사에서 기술 이전을 받겠다는 계획도 허점투성이다. 이브퐁루아가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기술 가운데 어느 것을 이전 받을지 조차 정하지 못했다.

게다가 기술이전에 대해 어떤 보장도 없다. 최근 바이오메디와 이브퐁루아는 MOU를 체결했다고 한다. 전례로 보아 MOU(양해각서)의 실현가능성은 10% 이하. 결국 10%의 성공 가능성에 공공예산 36억원을 투자하는 도박을 하자는 것이다. 만약 기술이전 협상에 실패하게 되면, 이 사업은 또 하나의 ‘러시아 유전의혹사건’이 될 것이다.

평가위원회의 첫 평가에서 바이오메디 프로젝트가 1등 점수를 받았을 때 격론이 일었던 것은, 단순히 전라남도 공무원들이 이 프로젝트에 터무니없는 점수를 주었다는 절차상의 하자 때문만이 아니었다.

선정된 프로젝트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현장조사를 담당했던 전남전략산업기획단의 연구원은 이 회사가 사업 수행 능력이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서울 모대학 교수도 이 프로젝트에 대한 5가지 불가론을 내 놓았다.

긴 토론결과, 평가위원회는 4가지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붙여 지역혁신협의회에 통보했다. 평가위원회의 보완요구는 평가위원회 스스로 내놓은, 자기부정일 수 있다.

그렇게 부실한 프로젝트라면 평가에서 떨어뜨려야 했다. 그런데 1위로 선정한 것이다. 왜일까. 전라남도의 조직적 지원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뉴시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4일 기자실을 찾은 이근경부지사는 ‘전라남도가 기능성식품 산업을 추진하기 위해 이 사업을 지지한 것이지, 특정 사업자를 보고 밀어준 것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라남도의 이 설명을 그대로 믿어 주기 어렵다. 전라남도의 이 주장이 진실이라면, 전라남도는 함량미달의 주관기관을 변경하라는 제안을 수용했어야 했다.

바이오메디가 사업주도능력이 없고, 프랑스로부터 기술이전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평가위원들은 주관기관 변경 가능성을 타진했다. 기능성식품산업이라면 굳이 외국기술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사업을 주도할 수 있는 대학이나 연구소가 전라남도에도 여럿 있기 때문이다.

   
▲ 바이오메디의 연구소가 있다는 영암의 주소지 건물. ⓒ시민의소리 자료사진
그 중 한 곳에 주관기관을 맡기자는 것이다. 기능성식품 사업 육성이 전라남도의 진정한 목적이라면, 전라남도는 주관기관을 변경하자는 제안을 거부 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전라남도가 기술개발이 가능한 공공기관으로 주관기관을 변경하겠다고 했다면, 이에 반대할 평가위원이나 운영위원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라남도는 이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심사는 끝났다. 심사 결과는 전라남도에 공식 통보됐고, 전라남도는 새로 선정된 해양레저산업 육성사업을 산업자원부 심사에 추천했다. 해양레저산업에 전라남도 예산을 출자하겠다는 내부결재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5월 4일, 다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발표가 나왔다. 오는 10일 지역혁신협의회 공동대표자회의를 열어 다시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공식조치가 끝난 일을 다시 논의하고자 한다면, 그보다 앞 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지난 일을 잘못 처리한 데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개인간의 계약에도 법률적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하물며 법률기관의 공공행위에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 책임은 광주전남지역혁신협의회 강정채 의장과 박준영 전라남도지사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무겁게 져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이 프로젝트의 선정과 신청의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한 지도자라면, 그들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 전남도민에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재논의는 그 다음의 일이다.

재논의를 위한 공동대표자회의 개최를 놓고, 두 지도자가 해대는 발뺌도 보기 딱하다. 전라남도는 지역혁신협의회 의장이 공동대표자회의를 제안했다고 주장한 반면, 강정채 의장은 박준영 전남지사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전남교육원에서 열린 한옥세미나장에서, 박지사로부터, ‘마음에 곤란을 느낄 만큼’ ‘지역혁신협의회가 잘못된 결정을 했다’는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것인가?

그 어느 쪽이 진실이던, 지역혁신협의회가 전라남도의 의지 관철을 위해 들러리를 서는 꼴이 됐다. ‘행정기관 독주 극복’이라는 지역혁신체계의 취지를 오히려 역행하게 된 것이다. ‘혁신(革新)’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있다면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다.

한 사회 지도자들이 ‘어떤 논의를 하느냐’는 곧 그 사회의 수준을 대변한다. 그런데 고작 부적격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자기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 이 땅 지도자들의 수준이란 말인가?

낙후된 땅 전라도,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먼 데, 지성과 행정 두 영역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벌이는 터무니없는 논의를 지켜보노라니, 어쩔거나 전라도여, 전라도가 걱정이다.

/정병준 광주전남지역혁신협의회 특화산업분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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