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몽구칼럼]권력과 오인의 구조
[박몽구칼럼]권력과 오인의 구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3.0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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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오늘]박몽구 시인 문학박사

   
십 오륙년 전 잡지사 일선기자 시절 기억 한 토막. 부산에 있는 한 어린이 보호시설 취재 뒤 끝에 들은 여담 한 마디. 조갑제 기자가 취재차 다녀간 뒤 꾸준히 사랑의 손길을 보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 기자에 대한 추억은 이것만이 아니다. 전두환 정권 말기 시절 <월간조선>에 르포 기고가로 인연이 되어 이른바 ‘광주사태’에 대한 갖가지 심층 보도가 시작될 때 그는 광주 출신인 필자를 찾았다. 기사 이면에 그가 보인 광주에 대한 따스한 관심과 추적 의식만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 조갑제 씨가 지난 2월 26일 ‘조갑제의 현대사 토요강좌’에서 "5월18일 광주에서 사격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군인들은 시위 진압 경험이 전혀 없었다. 방패도 없었다. 날아오는 돌덩이에 속수무책이었다"며, "젊은 군인들은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대낮에 몽둥이로 시민들을 구타했고 이를 본 시민들은 흥분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역사의 진실을 이만저만 거꾸로 돌린 망언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를 전해 들으면서 대선배에 대한 참담한 연민을 느꼈다. 그 자신 제5공화국 전야에 국민의 눈과 입을 가리기 위해 단행된 이른바 언론계 숙정의 희생물이요, 그나마 당시 비판적 성격을 견지하고자 애썼던 <마당>지 창간 기자가 아니던가. 한때 심층 보도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덕분에 <세대>지를 인수하여 재창간한 <월간조선> 기자로 일약 발탁되어 간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수구 언론사의 간부로 성장하면서 패기발랄했던 옛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게 부정함은 물론, 오히려 자신을 직장에서 내몰고 탄압했던 세력들의 대변자요 보수반동 세력의 정점에 서 있다.

요즈음처럼 조갑제 씨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여론이 들끓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그의 이 같은 변신에 이해가 가는 대목도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겸 정신분석가 자크 라깡에 따르면, 인간은 애초에 ‘오인(誤認)의 구조’ 속에 살아간다고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에서 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평화와 완전한 사랑의 대명사인 어머니를 상실한 인간은 일생 동안 그 대체 존재를 찾아 헤매게 된다. 그러나 어떤 만남에서도 어머니와 일치되는 대체물은 없기 때문에 편력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조갑제 씨에게 어머니의 존재가 민주화이지 결코 권력이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어머니적 실체로서의 민주화를 갈망해 왔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번번이 어머니가 아닌 변질되고 오염된 애인을 만나 왔다. 현재의 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이다. 완벽한 민주화 정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 완벽한 어머니로서의 민주화를 찾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헌신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과정에서 조갑제 씨가 너무 일찍 어머니 찾기를 포기했다고 진단한다. 필자는 그가 권력과의 밀착, 보수 세력과의 연대를 통하여 성급하게 사회를 바꾸겠다는 생각보다, 초심으로 돌아가 진득하게 어머니를 찾는 노력을 계속해 주기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도 화급한 일개인에 대한 매도나 제거 노력보다는, 건설적인 논쟁을 통하여 꾸준히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자신부터 내부에 있는 권력에의 의지를 털어내고, 초심으로 회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때 완전한 사랑의 어머니로서의 민주화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설 것이다.

/박몽구 (시인.문학박사)   poetpar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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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등산 2005-03-06 18:59:12
    박몽구시인, 지나온 시간속에 선배시인으로 기억되는 분인데..
    오랜만에 좋은 글로 뵙니다.
    살다보면, 이리저리 뒤엉켜 살길 찾다보면 조갑제 같은 인물도
    나오나 봅니다.
    오늘 어등산에 올라 맑은 봄기운을 느끼고 왔는데 우리사회가
    좀더 인내하고 배려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갑제에 대해서도 좀 더 진지한 비판이 있다면 그도 사람으로
    동아설 수 잇지 않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