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저는 저의 고향 들판에서 신기한 현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날이 어둑해지자 눈에 보이는 우리동네, 옆 동네 집들이 집집마다 환하게 불이 켜지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 살고 있었단 말인가. 그럼 내가 그 동안 지방이 텅 비었다고 비명을 질러온 것은 허구였단 말인가. 그러나 이내 저에게는 다시 쓸쓸함이 찾아왔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날은 추석날 저녁이었던 것입니다.
‘저들은 또다시 내일이면 고향을 떠나 서울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그래 이제 저들에게는 서울이란 돌아갈 곳이지 다녀올 곳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고향이야 말로 잠시 다녀오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런 생각에 저의 마음은 참으로 착찹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엉뚱한 생각도 하였습니다. ‘저들을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귀경금지 특별법을 만들자.’
이번 추석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그대로 고향에 머물러 준다면, 아니 머무를 수만 있다면 우리의 고향도 이제 다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될 터인데... 이런 생각은 오로지 망상이며 저들은 어김없이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갑니다. 서울에 무슨 꿀단지라도 숨겨놓았을까요. 서울의 생활에 그렇게 보람이 있을까요?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참으로 조심스럽게 우리의 고향은 우리 스스로 버린 것이 아닌지, 그토록 지겨워하면서 버린 고향을 1년에 한 두번 사치스러운 감상에 젖어 고향, 고향, 그리운 내고향이라고 외쳐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깊은 시골에 사시면서 ‘혼자서만 잘살면 무슨 재미냐’고 일갈하시는 어느 농부 할아버지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 분께서는 고향사람들이 오로지 서울로 가기 위해 자신의 터전을 버렸노라고 슬퍼하셨습니다. 자신의 자식만은 절대로 농사짓게 하지 않겠노라는 농부들, 자신만은 절대로 농사짓지 않으리라는 젊은이들이 서울로 서울로 몰려간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의 문제는 곧 농촌의 문제요, 농촌의 문제가 곧 서울의 문제라는 그 할아버지의 주장에 공감이 갑니다. 물론 그 할아버진들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찾아 떠난 그 절실함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지방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제 우리 지방민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되찾아야 합니다. 서울은 우리가 가야만 할 곳이 아닙니다. 지방은 우리가 떠나야만 할 곳이 아닙니다. 서울도 지방도 도시도 농촌도 그저 우리가 사는 곳일 뿐입니다. 그 모두가 똑같은 우리의 국토가 아닙니까? 서울에서 사는 사람, 지방에서 사는 사람, 모두가 그저 우리 국민입니다.
우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 지구를 사랑해야 합니다.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류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세계를 사랑해야 합니다. 인류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사는 대한민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사는 터전인 바로 이곳 지방, 고향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사는 터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이웃과 가족, 그리고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지구만을 사랑하고 세계만을 사랑하고 서울만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을 멸시하고 지방을 멸시하고 자신을
멸시합니다. 이제 고향을 사랑합시다. 지방을 사랑합시다. 우리 자신을 사랑합시다.
/이 민 원 지방분권운동가 광주대 교수
말로만 지방 분권이 되나요.
그렇다고 앉아서 당하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실은 인정을 해야지요.
이교수도 아마 실력만 갖췄다면 여기 광주에서 있고 싶은 생각은 아닐겁니다.
지방분권을 전국의 평균적 사고 보다는 지방 나름 데로의 열세를 극복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진정한 분권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