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스로 지방을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 지방을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4.10.04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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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원의분권이야기]

지난 주, 저는 저의 고향 들판에서 신기한 현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날이 어둑해지자 눈에 보이는 우리동네, 옆 동네 집들이 집집마다 환하게 불이 켜지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 살고 있었단 말인가. 그럼 내가 그 동안 지방이 텅 비었다고 비명을 질러온 것은 허구였단 말인가. 그러나 이내 저에게는 다시 쓸쓸함이 찾아왔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날은 추석날 저녁이었던 것입니다.

‘저들은 또다시 내일이면 고향을 떠나 서울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그래 이제 저들에게는 서울이란 돌아갈 곳이지 다녀올 곳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고향이야 말로 잠시 다녀오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런 생각에 저의 마음은 참으로 착찹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엉뚱한 생각도 하였습니다. ‘저들을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귀경금지 특별법을 만들자.’   

이번 추석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그대로 고향에 머물러 준다면, 아니 머무를 수만 있다면 우리의 고향도 이제 다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될 터인데... 이런 생각은 오로지 망상이며 저들은 어김없이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갑니다. 서울에 무슨 꿀단지라도 숨겨놓았을까요. 서울의 생활에 그렇게 보람이 있을까요?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참으로 조심스럽게 우리의 고향은 우리 스스로 버린 것이 아닌지, 그토록 지겨워하면서 버린 고향을 1년에 한 두번 사치스러운 감상에 젖어 고향, 고향, 그리운 내고향이라고 외쳐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깊은 시골에 사시면서 ‘혼자서만 잘살면 무슨 재미냐’고 일갈하시는 어느 농부 할아버지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 분께서는 고향사람들이 오로지 서울로 가기 위해 자신의 터전을 버렸노라고 슬퍼하셨습니다. 자신의 자식만은 절대로 농사짓게 하지 않겠노라는 농부들, 자신만은 절대로 농사짓지 않으리라는 젊은이들이 서울로 서울로 몰려간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의 문제는 곧 농촌의 문제요, 농촌의 문제가 곧 서울의 문제라는 그 할아버지의 주장에 공감이 갑니다. 물론 그 할아버진들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찾아 떠난 그 절실함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지방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제 우리 지방민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되찾아야 합니다. 서울은 우리가 가야만 할 곳이 아닙니다. 지방은 우리가 떠나야만 할 곳이 아닙니다. 서울도 지방도 도시도 농촌도 그저 우리가 사는 곳일 뿐입니다. 그 모두가 똑같은 우리의 국토가 아닙니까? 서울에서 사는 사람, 지방에서 사는 사람, 모두가 그저 우리 국민입니다.

우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 지구를 사랑해야 합니다.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류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세계를 사랑해야 합니다. 인류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사는 대한민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사는 터전인 바로 이곳 지방, 고향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사는 터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이웃과 가족, 그리고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지구만을 사랑하고 세계만을 사랑하고 서울만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을 멸시하고 지방을 멸시하고 자신을 멸시합니다. 이제 고향을 사랑합시다. 지방을 사랑합시다. 우리 자신을 사랑합시다.

/이 민 원 지방분권운동가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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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 2004-10-05 21:00:05
    .
    우리는 어떠 어떠한 조건하에 공통으로 처해있다, 또는 공통기반이 있다,
    고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 이게 사랑의 당위론이죠.
    그러나 그 사랑의 당위론은 생존(生存,survival)과 생활(生活,life)의
    방법론이 다름으로 인해 많은 경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당위가 되죠?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는 까닭은 새삼스럴 것도 없이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시대 구조의 부의 분배율이 농업과 다른 산업 간에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세상을 겪게 되기 때문이죠.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비바람 헤쳐가며 열심히 농사를 지었더니
    아니 글쎄 배추 한 포기에 1원에 받아간 놈들이 서울 가서 그걸 10원에
    팔아먹는 구조가 되어있는 걸, 도대체 농촌에 머물러 있어서는 그놈의
    유통구조라는 걸 바꿀 재간이 없는 노릇인 걸, 젊은 세대 사람들은 곧장
    직감적으로 체득하는 거죠. 누가 설명을 안해줘도.

    최종소비자가 기꺼이 10원을 주고라도 사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정작 생산자는 그중에서 1원을 먹고 중간에 있는 장사꾼들과 운전사들이
    죄다 달려들어 9원을 가져가는 세상 구조에서, 당장 닥치는 다음 문제는
    자식들 공불 가르치는 데 영 이게 도대체 충분한 여건을 마련해줄 수가
    없는 형편에 당면하게 된다는 현실이죠....

    이민원 님도 지금은 대학교수라는 그럴싸한 명함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아하게 사랑 타령을 하고 앉아서도 - 남의 집 저녁에 불 켜진 거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 먹고 사는 데 별로 지장은 없고, 꼬리곰탕도
    못 해먹을 쥐꼬리 만한 월급이지만 그래도 어디 나가면 많이 배운 양반이
    되어서 사람들한테 머리 숙인 인사를 받고 사는 재미가 있어서 그럭저럭
    사는 보람이라도 있으시겠지만, 뼈 빠지게 일해서 1원 벌자고 - 가끔은
    전체 밭떼기 소출 몽땅 다 팔아봤자 트럭 운임도 못건지는 해괴망칙을
    몇 차례 반복해서 겪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나야 이렇게 살지만
    다시는 자식들에게는 이따위 농사짓는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하게
    되기 마련이지요....

    서울에 가면 이쁜 아가씨들 나오는 술집도 많고, 타지에서 올라온 이쁜
    샥시감도 많고, 먹고 사는 데 별로 요긴할 것같지도 않은 노래 춤 잘해서
    어디 테레비 방송국에 뽑히면 1원 버는 게 아니라 100 만원씩도 벌고,
    부모 잘 만나서 얼굴이 좀 반반하게 생기고 연기 학원에 좀 다니다가
    눈 딱 감고 옷 한번 벗으면 몇 "억"원씩도 생기고.... 이게 이게 세상이
    도무지 요지경 같은 세상이 되어버려가지고설나무네는

    고추멍석 위에 내리 쬐는 햇볕을 한웅큼 쓸어 두 손에 받아 올려서는
    거기 손바닥 주름 고랑을 타고 흐르는 세월을 들여다 보고 바람아 너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돌아가니를 노래하고 자연과 인생과 우주 삼라의
    섭리를 감상하는 낭만의 깊이 어쩌고 하는 따위 하고는 이게 전혀
    사는 방식이 도대체가 다른 겁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분권의 권(權)은 권력, 권세, 권한, 능력, 힘, 돈,
    영향력, 재주, 말빨 .... 뭐 이런 걸 서울에다가만 다 모으지 말고
    지방에다가도 나눠주라는 요청, 청구, 항의, 주문, 선전포고 등을 함의한
    개념으로서의 분권이라는 용어입니까 ?

    누가 나서서 1원 짜리 배추 한 포기를 7원에 팔수 있게 하고 서울에서는
    그걸 8원이나 9원에 사먹을 수 있게 하는 장치를 개발해야 그게 말빨이
    서게 되는,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용어가 되는 건 아닐는지요?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푸른 물 눈에 보이네 ~ 하는 멋진 가곡을 부르는
    음악대학 교수나 서울시립합창단의 성악가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거가
    아니되는 사안인 것같은데....

    이민원 님께서 생각하시는 대안은 행정수도를 충청도로 옮기면 그걸로
    인해 구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방을 사랑하며 광주에 와서
    사는 효과가 날 것이라고 믿으시는 건지요... ?

    제 생각에는 차라리 행정수도를 전라남도 어디 경치좋은 무등산 자락 한
    기슭 명당 자리로 이전해서 내려오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적극적인
    고향사랑 논리를 개발하시는 게 더 효과적인 사랑법이 될 것같아서요...

    보름 동안 열리는 올림픽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 세계 각 나라의 도시들이
    서로 저마다 자기 도시에 유치하려고 혈안이 되어 경쟁하고 자기 자랑하고
    광고 마케팅 뇌물 접대 미인계 향응 다 동원하느라 난리 법석인데...

    왜 광주 전남은 멍청도 보다 여기가 더 낫다고 적극적인 수도유치 공세를
    취하지 않는 건지, 전 그걸 참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걸 도무지 안해봤기 때문에...
    전라남도가 충청도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열등의식 때문에 .. ?
    아니면, 낫긴 더 나은데 싸울 자신이 없어서 ...

    이것이 현실 문제입니다.
    지방을 버리고 떠나가는 현실을
    지방으로 돌아오는 현실로 만들기 위해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싶겠네요.

    낭만주의 당위론은 이제 고만 접으실 때도 되지 않았나 해서요 ...

    ...

    관광객팬 2004-10-05 21:51:59
    이민원 교수의 지방분권에 평소 의견을 달리 한 사람입니다.
    말로만 지방 분권이 되나요.
    그렇다고 앉아서 당하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실은 인정을 해야지요.

    이교수도 아마 실력만 갖췄다면 여기 광주에서 있고 싶은 생각은 아닐겁니다.
    지방분권을 전국의 평균적 사고 보다는 지방 나름 데로의 열세를 극복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진정한 분권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