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기칼럼]긍정적인 시민운동을 위한 제언
[최정기칼럼]긍정적인 시민운동을 위한 제언
  • 최정기
  • 승인 2004.08.12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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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전남도청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을 만난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필자는 “속된 말로 어떤 집단이 요즈음 가장 잘 나가는가?”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 공무원 말이 DJ 시절 이후 노무현대통령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가장 잘 나가는 집단은 시민단체 출신이라고 답을 하였다.

그에 따르면 시민단체 출신들과 참여정부는 서로 코드가 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실질적으로 관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며, 각급 행정기관에서도 자기 분야의 시민단체를 사실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관료사회의 주요 직책에 진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의견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 말을 하는 공무원의 태도에서도 약간의 비아냥을 느꼈다면, 필자의 선입견 때문일까? 하지만 필자는 자칫 경직될 수 있는 관료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의 전문성이 행정행위의 전문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일단 바람직한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사망했을 때 외무부가 보여준 어이없는 행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외무고시로 대변되는 외무부 충원구조의 경직성에서 한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민단체가 갖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모습이 반드시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관료도 아니고, 시민단체 구성원도 아니지만, 사회운동을 전공으로 하는 필자는 비교적 시민단체의 활동과 관련된 비판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은 놀랍게도 시민단체가 비민주적이며 권위적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비판은 시민단체 구성원이 너무 많은 부문에 개입하고 있어서 그의 전문성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이 근거없는 것일까?

필자는 시민단체에 대한 일반인들의 비판이 근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민단체가 비민주적인 조직으로, 심지어 권위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구성원들이 아직도 권위주의시대의 운동논리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부정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에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현재 시민단체의 주된 구성원이고, 따라서 특정 사안이 발생하면 상대를 부정하는 운동행태가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이다.

부정의 논리를 대표하는 것이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여기서의 자기 의식은 다른 의식들과 대립함으로써만 확립된다. 즉 주인은 노예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개념이며, 노예 역시 주인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나아가 노예는 주인을 부정해야만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논리는 역사적으로 피지배자의 해방논리로 사용되어 왔다. 반면 니체가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논리는 대조적이다. 니체는 노예는 주인을 부정해야만 자유인이 될 수 있지만, 주인은 그 자체로 자유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노예가 부정의 논리에 의해서만 자유로운 반면 주인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재권력이 사라지고 난 오늘날, 시민운동의 코드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운동이어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민주, 인권, 평화 등의 가치가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이는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삶의 조건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전문성의 부족은 시민단체의 열악한 조건에 기인하는 것으로, 앞으로 여러 가지 수준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특히 한 사람이 많은 부문을 감당하는 구조는 시급히 바꿔야 할 것이다.

/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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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ra 2004-09-27 10:33:23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수긍하기 힘든점이 있습니다.
80년대에 운동조직이 권위적이었다는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헤겔의 논리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적'과 대치상황이라는 아주 급박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90년대나 00년대의 변모에 대해서 말들은 하지만, 사실 시민단체의 상황은 열악합니다. 대중은 '시민'이 아니라서 '참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민단체의 상황은 말은 "시민"(브루주아"단체임에도 실은 '시민'이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구조적인 상황을 도외시한체 '니들이 권위적이다'라고 말할수 없는것입니다. 즉, 시민단체가 헤겔의 주인노예변증법의 테제를 받아들여 실천해서가 아니라 돈없어서 잘 안굴러가고 권위적이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보는것이 보다 현실적인 맥락에서 말되는 소리라는것이지요.
시민단체에 대한 '학자'들의 태도에 저는 오히려 관심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제언'을 위해서는, 좀더 '긍정'적이며 구체적인 제언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이미 '브루조아'적인 시민단체보다는 운동으로서 굴러가는 역동성에 렌즈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왜 브르조아적인 시민단체에 '주인'의 태도를 요하시는지 저로서는 번짓수 잘못찾은 주문이란 느낌이 듭니다...

안티시민단체 2004-08-22 22:26:45
다음은 오마이뉴스에서 외교안보를 담당하고 있는 김태경 기자가 최근 발간된 <월간 인물과 사상> 9월호에 기고한 <노 정권과 시민단체들, 유착 혹은 상생?>이라는 기사의 全文이다.)


노 정권과 시민단체들, 유착 혹은 상생?

나는 올해로 기자 생활 10년째다. 이 기간을 모두 이른바 ‘진보 언론’이라 불리는 회사만 다녔다. 그 동안 여러 분야 취재를 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문제점을 다뤄본 적은 없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이른바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곳에서도 이런 주제를 다룬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진보언론한테 시민단체는 ‘비판의 무풍지대’였다.

나는 <오마이뉴스>의 외교ㆍ안보 담당이다. 지난해 9월 이후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를 계속 추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단체들의 파병반대 의지나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특히 지난 6월 23일 김선일씨가 피살된 뒤 벌어진 일련의 촛불시위에서는 문제가 심각했다.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하면 이른바 ‘주류’ 또는 ‘이름 있는’ 시민단체들이 현 정부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과감하게 비판하기보다는 미국 탓, 수구세력 탓 또는 정부 안의 친미라인 탓으로 돌리며 변죽만 울린다고 느껴졌다. 심하게 말하면 “노 대통령님, 파병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읍소형’ 운동으로 전락하고 있는 듯 보였다.

‘노 정권을 직접 겨냥하지 않으려는’ 주류 시민단체들

김선일 씨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파병반대 촛불시위에서 ‘노무현 정권 퇴진’을 내걸 것인가를 두고 시민단체들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집회 현장에서는 이 구호를 외치는 쪽과 이를 제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실랑이도 벌어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취재를 해보았다. 일단 내가 놀란 게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자면 시민단체 내부의 움직임이나 논쟁을 취재하기가 비밀 정보를 다루는 정부 관련부서나 기업체 기획조정실 취재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해프닝성 사건이었다. 세 차례에 걸친 토론으로 노 정권 퇴진 구호는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

“그런 논쟁 자체가 아예 없었다. 민지네(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네티즌 모임)가 노 정권 퇴진 구호를 주장했지만, 그들은 국민행동 참여 단체가 아니다. 참여 단체도 아니기 때문에 논평할 만한 가치도 없다.”(정대연 국민행동 기획단장)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논쟁은 상당했다. 6월 21일께부터 좌파 진영을 중심으로 집회 대오 안에서 또는 일부 단체의 유인물을 통해 노무현 정권 퇴진 구호가 등장했다. 350여 개 시민단체가 참여해 지난해 9월 23일 만들어진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국민행동)은 운영위에서 이 주장을 둘러싸고 세 차례 논쟁이 벌어졌다.

좌파 진영은 노 정권 퇴진 구호를 내걸 수 있다고 봤고 최소한 비판의 초점은 현 정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연(한국여성단체연합), 참여연대, 민언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민중연대 등은 노 정권 퇴진 구호에 반대했다. 일부 단체는 “노 정권 내부의 친미라인이 문제다. 노 정권 전체를 대상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토론 끝에 노 정권 퇴진 구호는 채택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논쟁 과정에서 한쪽은 “노사모나 국민의 힘 같은 보다 많은 대중이 참여하도록 하자,”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압력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폈다. “노 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고 지도부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 동력이 떨어졌다”고 좌파 진영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읍소형 추모집회로 오히려 대중운동 동력을 갉아먹었다,” “노무현 열혈 지지자들은 파병반대 집회에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노 정권 지지율이 20% 후반대인데 무슨 운동의 분열이냐”고 반발했다. “미국 탓, 수구세력 탓으로 돌리며 노 정권을 감싸기에 급급했다”는 비판도 터져 나왔다.

여연 최성미 국장은 “파병반대국민행동이 노 정권 비판에 미온적이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운영위원회에서 노무현 정권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입장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국장은 “지난 7월 1일 국민행동의 비상시국회의에서 처음에 운영위가 내놓은 안은 김선일 씨의 피살에 노무현 정권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었다”며,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사과냐, 노 정권이 구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니냐, 운동단체가 무슨 사과 요구냐고 내가 항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언성 높이고 싸운 끝에 사과라는 구호를 책임져라 라는 구호로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 노 정권 퇴진 구호를 내세울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순전히 운동의 기술적 측면에서 볼 때도 논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구호를 둘러싼 양쪽의 시각차가 이라크 파병의 이유, 노 정권의 성격, 시민단체와 현 정부와의 관계에 대한 시각차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다는 데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노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데 머뭇거렸다고 알려진 곳은 ‘주류’ 또는 ‘이름있는’ 시민단체가 많았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노 정권을 직접 겨냥하지 않으려는 시민운동 진영의 행태는 오래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4월 2일 서희ㆍ제마 부대 1차 파병이 국회에서 결정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서 연설을 하면서까지 의원들을 설득했다. 대북송금 특검 때처럼 그는 ‘수구세력’ 한나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1차 파병에 성공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국회 밖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지도부가 한나라당사 앞으로 가자고 했다”며 “파병 주범은 노 대통령인데 한나라당 핑계를 대려는 것이었다. 시민단체 지도부의 의식이 그대로 드러났던 행동이었다”고 비판했다.

노 정권의 운명과 ‘로드맵’을 걱정하는 시민단체

민언련 최민희 총장은 지난 6월 29일 <시민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파병은 일차적으로 큰 배경은 미국의 침략전쟁이라는 점이고, 또 미국의 한국에 대한 과도한 압력이 문제”라며 “노 대통령을 주된 타깃으로 하거나 노무현 퇴진 구호를 외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 국내에서는 외교부 내에 존재하는 친미라인, <조선일보>를 비롯한 친미 커넥션이 문제”라며 “노무현 정부가 퇴진해서 더 진보적 정부를 세울 수 있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그러나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에게는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 공정성을 무기로 삼는 시민단체가 어느 특정 정권, 그것도 그 진보성에 대해 갈수록 심각한 의문이 드는 정권의 운명과 ‘로드맵’을 걱정하는 게 과연 올바른가 하는 의문이 든다.★★

★★★ 만약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어떤 언론이 “노 정권의 비개혁적 행태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고 지적을 받았다고 하자. 그런데 이 회사의 편집국장이나 사장이 “노무현 정부가 퇴진해서 더 진보적 정부를 세울 수 있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그러나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면? 이는 그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심각한 의문을 던질 것이다.★★★ 시민단체나 언론사나 기본적인 자세는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북핵 문제와 이라크 파병의 빅딜이라는 순진한 착각

최 총장의 인터뷰가 전체 시민단체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강약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재 시민운동권 지도부 가운데 최 총장과 생각이 크게 다르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스럽다. “노무현이 하고 싶어서 이라크 파병 하나? 미국 압력과 정권 내부의 친미라인 때문”이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일단 이들의 생각대로라면 최남선ㆍ이광수와 같은 친일파들은 비판할 것도 없다. 그들이 친일 하고 싶어서 친일 했는가? 친일파 가운데 자발적으로 친일 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였다고 말한다.

또 노 정권의 내심은 시민단체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 이라크 파병을 비롯해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에서의 굴욕적인 자세 등 온갖 친미 행위로 미국의 환심을 사야(또는 신뢰를 얻어야)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의 양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정부는 갖고 있다. 이는 외교ㆍ안보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일 일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이라크 파병을 해야 한다는 것은 노 대통령 스스로도 여러 번 언급했었다.

현재 한국군 파병숫자는 3천600명으로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영국 1만2천 명에 이어 세계 2위다.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파병하는데 세계 2위 규모의 파병국이 될 수 있는가?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필리핀이 자국민을 살리기 위해 철수하고, 파키스탄ㆍ터키 같은 나라도 파병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 나라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한국보다 약했단 말인가?

더구나 이라크 파병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부의 생각은 순진한 착각에 불과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핵 문제는 동북아 전체 정세와 관련된 ‘전략적 문제’다. 그러나 한국군 수천 명이 이라크에 파병되는 것은 단순한 ‘전술적 문제’일 뿐이다. 한국군 수천 명이 파병된다고 현재 이라크 전체 상황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다. 어떤 나라도 전략적 문제와 전술적 문제를 맞바꾸지 않는다. 한국군 수천 명 파병으로 미국이 ‘전략적 문제’인 북핵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 관계자의 말이 정확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기 때문에 지난해 초 불거졌던 미국의 북폭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폭설이 없어진 것은 지난해 7월부터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라크 때문에 미국은 북한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지난 6월 26일 끝난 북핵관련 6자회담에서 미국은 일정정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노 정권은 “이라크 파병 결정 때문”이라며 대단히 고무됐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바뀐 게 없다. 리비아식으로 북한이 투항하라는 통첩뿐이다. 미국이 내놓은 안은 “3개월 안에 핵 사찰 다 받으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핵 사찰을 일부 진행하는 데 8년이 걸렸다”며 “3개월 안에 핵 사찰을 받으라는 말은 그냥 백기투항하라는 요구”라고 말하고 있다.

남북 관계도 삐걱거리고 있다. 7월 들어 조문파동과 탈북자들의 대거 입국으로 남북 관계는 크게 경색됐고 장기화될 전망이다. 지난 7월 19일 평양방송은 ‘누가 길을 막았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남조선 당국이 (김일성 주석) 추모대표단의 북행길을 차단한 것은 죄악”이라면서 “노무현 정부가 6ㆍ15 공동선언에 도전하는 특검소동으로 못되게 굴더니 이제 와서는 천륜까지 어겼다”고 비판했다. 북한 매체가 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 한국을 이렇게 무시한 것은 이라크 파병도 한몫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과거사 문제를 언급 안 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중국은 대단히 신경질이 났다. 여기에 미국 말 한마디에 꼼짝도 못하고 파병한 한국 정부가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나왔다. 그러잖아도 오만한 중국은 한국이 아주 웃긴 나라로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잣대와 NSC에 대한 잘못된 인식

시민단체가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14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패러디 사진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 문제가 됐다. 그러나 여연을 비롯해 이른바 유명한 여성단체들은 이 문제에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일부에서 비판이 나오자 여성민우회는 16일에야 성명을 발표했다. 여연은 21일에야 기자 간담회를 열어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청와대의 잘못을 비판하면서도 “이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고 문제삼았다. 그러나 만약 패러디의 주범이 한나라당이었고 그 대상이 여당의 다른 여성 의원이었다면 이들이 그런 식의 자세를 보였을지 의문이다.

시민단체들은 노 정권이 친미적 행태를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정부 안의 수구 친미 세력을 든다. 반면에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가끔 공방전을 벌이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자주파로 인정된다. 이것도 실상과는 다르다.

지난 8월 2일 김선일 씨 피살사건 국회 청문회에서는 아주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주이라크 대사관의 김도현 외무관이었다. 그는 “냉전시대의 외교에서 벗어나서 외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 외교가 아직도 냉전체제의 구태에 빠져 있는 측면이 있는데, 미국의 변수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될 수 있는 외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관이 이렇게 자주적인 발언을 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런데 그는 “NSC가 탁상에 앉아 지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NSC의 대테러 매뉴얼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맹비판했다.

대체 김도현 외무관은 누구일까?

김 외무관은 지난해 초 북미3과에 근무하면서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에 관여했다.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굴복하는 한국 협상팀에 대해 그는 반발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한국 협상팀에는 외교부 북미국, 국방부 정책실, 그리고 NSC가 들어 있었다. NSC는 한국 협상팀에 대한 지휘책임도 지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이석태 공직기강 비서관(현 민변 회장)이 용산기지 이전협상의 문제점에 대해 조사했다. 당시 조사를 받았던 김 외무관은 북미국 직원들의 대통령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을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그 유명했던 북미국 직원들의 대통령 폄하 발언 파문이 터졌다. ‘진짜 자주파’인 김 외무관이 김선일 씨 청문회에서 NSC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NLL 월선 사건을 둘러싼 코미디 같은 풍경과 진실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월선 사건을 둘러싼 군과 청와대의 대립도 한편의 코미디였다. 당시 보수 진영과 조중동은 북한군의 잘못은 놔두고 왜 한국군만 비판하느냐고 반발했다. 그러자 일부 시민단체들은 “왜 허위보고 두둔하며 대통령을 흔드나(냐)”고 보수진영을 공격했다.

그런데 7월 24일 조영길 당시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해군작전사령관은 상급부대에 보고할 경우 사격중지 명령을 받을 것을 우려해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전날인 23일 청와대는 이런 사실을 보고 받고도 그냥 경징계를 내렸다.

즉 조중동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청와대도 허위보고를 두둔한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전에 허위보고 두둔한다고 보수진영을 맹공했던 시민단체들은 어찌된 일인지 조 장관의 폭탄 발언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북한 경비정의 NLL 월선과 보고 누락은 전혀 별개의 사건이었다. 15일 저녁 권진호 NSC 사무처장이 보고 누락이 있었다는 것을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어 16일 오전 NSC 회의에서도 정식 의제로 다뤄졌다. 그런데 이 사실이 바로 언론에 공개됐다. 일부 언론에는 정부 또는 여권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노 대통령이 군에 대단히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본다”며 “노 대통령이 대단히 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됐다.

여기서부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됐다. 조중동이 나섰고, 7월 19일 김희선 의원이 “준장에서 소장에 있는 사람들이 중령에서 대령으로 되는 과정에서 군부정권(하)에서 지도력을 키워온 사람들”이라고 한 발언은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박찬승 합참 정보본부장의 기밀 유출 사건까지 터졌다.

군 전체와 청와대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당시 군은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졌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군사쿠데타라도 날 분위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한 소식통은 “한국군 장성 가운데 지금 쿠데타를 할 만한 배짱 가진 사람도 없다”며 “그러나 당시 군 내부 분위기는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상태로 사실상 통제불능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해군작전사령관이 ‘상급부대에 보고하면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릴 것 같아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시쳇말로 정권에 ‘개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 내부가 이런 상태가 되자 청와대는 의도적인 보고누락임을 알고도 경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노 대통령은 처음부터 진노한 적이 없는데 청와대의 일부 세력들이 마치 대통령이 화가 난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군 전체를 몰아세웠다가, 나중에 사태가 커지자 뒤로 슬그머니 빠졌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결과적으로 장관은 경질됐는데 정작 보고누락의 장본인인 해군작전사령관은 끄덕 없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그리고 청와대는 체면만 망가지고 말았다.

‘시민운동의 미래에 대단히 좋지 않다’

지난 ○○일(국방부가 자이툰 부대의 출발 일자를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기한다) 자이툰 부대가 ‘야반도주하듯’ 이라크로 떠났다. 국방부는 사실상 보도 자체를 하지 말라는 포괄적인 엠바고를 요구했다.

출발 사실을 보도한 곳은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중의 소리> <한겨레> 등에 불과했다. <오마이뉴스>는 2일 시민단체의 항의 시위를 보도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오마이뉴스>에 전화를 걸어 기사의 일부 수정을 요구했고, 청와대는 한술 더 떠 기사 자체를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오마이뉴스>는 이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서는 정부의 보도통제에 대해 별다른 비판이 나오지 않았다. ‘주무 단체’ 격인 민언련은 “국방부에 문의해보니 출발시기, 이동경로 등에 대한 보도 협조를 요청한 것이라고 말해 따로 성명을 내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보도통제를 요구한 기관인 국방부에 문의하면 그들이 보도통제임을 인정할 것인가? 국방부뿐만 아니라 직접 보도 당사자인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닐까? 더구나 <오마이뉴스>는 지난 3일 <출국 사실 보도 안 하면 뭘 보도하나?>라는 기사를 통해 정부의 지나친 보도통제를 비판했다.

★★ 8월 4일 민언련은 자이툰 부대 파병관련 <조선일보> 사설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조선일보> 사설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보도통제를 한 정권의 행태는 별로 비판하지 않으면서 <조선일보>만 때리면 될까? ★★

여러 사건에서 보듯이 시민단체의 태도는 지나치게 정권 옹호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송금 특검부터 시작해 ‘수용소 발언’ 등의 친미행각, 부안 방폐장에 대한 폭력진압, 노동자 분신사건 때 “분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폭언, 김선일 씨의 피살과 이라크 추가파병,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번복, 일본에 과거사 문제 재론 안 하겠다는 약속 등 조중동 및 수구세력과 함께 한 사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노 정권의 개혁성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나온 지 이미 오래됐다.

그런데 왜 시민단체들은 현 정부에 대해 그렇게 온정적인 것으로 비쳐질까?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는 아마도 현 정권의 여러 인물들이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과거 김대중 정권 때 시민단체와 정부 사이가 우호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는 정책을 둘러싼 연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전 정권에서도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입각이 있었지만 그것은 개별적인 행동이었지 지금처럼 조직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일부 시민단체와 노 정권 사이에는 이심전심의 교감 같은 게 보인다”며 “이것은 시민운동의 미래에 대단히 좋지 않다. 자칫하면 김영삼 정권과 유착했었다는 비판을 받았던 모 시민단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간계급 운동의 전형적인 한계라는 비판도 있다. 어쨌든 시민단체 지도부들의 속마음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올해 11월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될 때 또는 파병 한국군 가운데 사상자가 나올 때, 그들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지금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기자 약력

김태경 : 95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ㆍ국제부ㆍ경제부 기자를 거쳤고, 2003년 4월부터 <오마이뉴스> 외교ㆍ안보 담당 기자로 있다.(오마이뉴스 기자, gauzari@ohmynews.com)

정교원 2004-08-16 05:12:52
지금 우리 사회는 식미지도 아닌 7,80년대에 독재항거란 잇슈를 내걸고, 저항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던 이들이 집권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속된 말로 투쟁을 끊으면 금단현상이 생기거나 정신적 공황에 빠지게 되고 그래서 대통령이란 신분에도 불구하고 어디 싸울 것 없나? 누구를 재물로 삼을까 하는 영원히 주인의 자리에 앉지 못 할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이게 7.80년대 민주화란 피켓을 들고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햇던 무리들의 민주화된 행동이라면 안타까운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