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단소리]정직한 직업
[쓴소리단소리]정직한 직업
  • 문병란
  • 승인 2004.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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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란 [시인. 전 조선대 교수. 본보 발행인]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기록한 책도 있지만 사실은 태초에 노동이 있었다. 인간은 그 생명을 부여받으면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일을 해야 했다. 노동, 이 일이야말로 평생 계속되는 의무요 노역이었다. 이 삶의 수단으로서 평생 매어 살아야 할 생업이 곧 직업이요, 그 일하는 장소가 직장이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곧 노동과 직업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수천년 동안 이른바 1차 산업이라는 채취업인 농업분야에 의존 자연 속에서 모든 생필품을 구하였다. 지금도 가장 중요한 식량은 모두 자연 속에서 얻어오며 제 2차 산업인 제조업도 자연에서 얻어온 1차 산업의 수확물 농업 임업 수산업 광업 축산업의 모든 결과물을 가지고 가공하는 제조업, 이른바 경공업과 중공업으로 문명발달의 근간을 삼아왔다.

 그러나 차츰 문명과 문화가 진보하고 인간의 삶이 복잡해지면서 재생산이나 발전을 위한 지식과 기술의 공급을 위한 교육, 분배를 위한 경영, 유통 등 이른바 제3차 산업이라는 서비스업 지식정보가 중요한 몫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세기 중반 60년대까지도 80%에 해당한 사람들이 거의 채취업에 종사하는 형편이었으나 차츰 2차 산업인 제조업 쪽으로 옮아가기 시작하다 이젠 68% 이상이 유통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1차 산업분야인 농어촌엔 거의 10% 미만으로 그 점유율이 바뀌고 있다. 교사, 교수, 유통업, 서비스업, 관료, 의사들이 급증하면서 후기산업 사회는 노동하는 사람보다 그 결과물을 처리하고 생산을 돕는 서비스업에 몰려 있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하나 봉건시대 우리나라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서열이 분명해 1차산업, 2차산업, 3차산업 어느 분야에 종사하여도 천한 직업이었다. 관료, 벼슬하는 것 이외엔 천시 당하였다. 가죽으로 신을 만드는 갖다 바치는 양반에게 신을 지어 올릴 때도 그 얼굴을 쳐다보아서는 안 된다. 하물며 대감이나 임금의 용안은 감히 우러러볼 염도 못 갖는 처지였다.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모든 장인(匠人)들, 백정, 도공, 상인 모두 천시 당했고 농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객주와 거간 사이에 행해진 소개업 흥정도 이젠 거액이 오고가는 중개업으로 성업이며, 손에 물 한 방울 때 한점 묻치지 않고 컴퓨터 키 속에서 이익을 챙기는 지식 정보가 돈 되는 세상이다.

 우리나라의 최신 직업 사전에는 7천개의 직업이 분류되어 있다 한다. 그 7천가지 중에는 자동차 조립기 조립공이나 합성필라멘트업도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법으로 세금 없이 유통되는 포르노 비디오 출현하는 배우도 밤의 그늘에 번식하는 매춘업도 직업일시 분명하다. 20대의 실업률, 대학이 직업안내소 역할마저 못하는 취직난 시대, 모두 기피하는 3D업종도 차례가 안 온다면 김두한 주먹장사 야인시대의 인기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알 것이다.

 현대의 정치, 그것은 국민에게 평생직장을 만들어주는 고용창출을 위한 교육과 기업의 유기적 고급 유통업, 서비스기능의 원활한 기능을 제일의 적 목표를 삼는다. 정치, 경제, 지식, 정보, 모든 분야가 노인층에서 젊은이들에게로 이양되어가는 새로운 첨단시대이다.

곳곳에 노증되는 천민자본주의의 모순이나 상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재화는 검은 손들에 의해 움직이며 직업윤리나 부도덕성은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여 날로 성어붕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20대, 30대의 세력이 만든다. 그들의 정의와 양심이 그만큼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반기 1월부터 4월까지 해외 도피성 유학자금이 5조가 빠져나가 LA의 땅값이나 아파트 값을 올린다는 뜬소문(?)은 7천가지 직업이 있는 신자유주의 한국의 장래를 낙관할 수 없게 하는 것 같다.

과연 이 땅에서 인기 있는 정직한 직업은 무엇일까.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장했던 연암(燕岩)선생의 소설에 나오는 왕십리 똥푸는 엄행수를 '예덕선생'이라 찬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화원 모집에도 대학졸업자가 모이는 현실을 냉철히 응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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