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닷컴]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기자편
[기자닷컴]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기자편
  • 이광재 기자
  • 승인 2004.05.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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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 고려해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직업... 그래도 써야한다.

기자는 사실로 말한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모두 기사화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의 가치 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때의 판단은 기사가 미칠 파급도 포함된다. 행정과 언론의 부적절한 동행을 기사화했을 때, 시민들에게 가뜩이나 불만스러운 행정과 언론에 대한 불신만 키우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 누가 봐도 빤한 문제를 대하면서도 ‘과연 이걸 써야할지, 말아야 할지’ 머리를 몇 번이고 긁적이는 게 ‘기자’이기 이전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부정(不正)을 부정(否定)함으로써 긍정으로 바꾸는 게 개혁이고, 그 길의 맨 앞자리에 서야 하는 게 기자의 사명이라했다.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의 동시공석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행정부시장과 일부 기자들이 ‘골프회동’을 즐겼다. 특히 전남도지사는 장례일정 중이었다. 전남도청과 조선대 장례식장에는 연인원 5만명이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줄을 잇고 있었다.

100일 가까이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비상체제 속에서 열심히 일한 부시장 등 공무원들과 이들의 활동을 열심히 취재한 기자들의 노고를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골프의 대중화’를 주창하는 이들의 하소연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들의 현실 인식이다.  눈과 귀가 시도민에 맞춰져야 함에도 이들의 그것이 시도민과 동떨어져 있다는 게 사실이고 문제다. 과연 이들에게 ‘공인’ 또는 ‘공기’의 역할을 맡길 수 있느냐는 회의를 들게 한다.

옆집에 초상났다고 우리집까지 따라 울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평상시라면 문제 안될 일인데 시장 유고 때문에 억울하다 말한다면, 이들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박시장에게 돌려 서둘러 사퇴하라고 촉구하는 게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웃의 슬픔에 옷깃을 여미는 게 일반 시민들의 정서이고, 시장의 유고를 고려해 행정의 작은 실수를 애써 눈감는 ‘고민하는 기자’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들이 이럴 수는 없다. 이것이 기자의 가치판단이고, 기사를 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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