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기칼럼] 양은 냄비와 무쇠 솥
[최정기칼럼] 양은 냄비와 무쇠 솥
  • 최정기
  • 승인 2004.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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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국회를 생산적인 국회로 바꾸는 제도적인 고민할때

나는 라면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것도 내가 직접 끓여 먹는 것을 좋아한다. 부엌 일을 함께 하려는 의도인지 모르지만 처도 내가 끓인 라면이 가장 맛있다고 추겨세우며, 아이들도 아빠의 기를 살려준다.

그러나 내 자신은 현재의 라면맛이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기억에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남아있는 것은 군대에서 먹었던 것이다. 아마도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대에서의 기억을 제외하면 연탄 아궁이에 양은 냄비를 얹어놓고 끓여먹었던 어렸을 적 라면 맛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도 라면 끓이는 데에는 양은 냄비만한 것이 없다. 요즈음은 양은 냄비 구경하기가 오히려 힘들고, 또 양은 냄비를 구하더라도 기억 속의 맛을 볼 것 같지 않아 그냥 아쉬움을 반찬삼아 라면을 먹는다.

민주화에 기여한 '양은냄비'

그런데 언제부턴가 양은 냄비가 정치권을 빗대는 ‘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양은 냄비론’이 그것이다. 아마도 양은 냄비가 쉽게 끓었다가 빨리 식는 것처럼 국민들이 어떤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면 쉽게 달아올랐다가 일정 시기가 지나면 또 금방 잊어버리는 것을 비아냥거리는 것일게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 나라가 그나마 이 정도의 민주화를 이룩한 데에는 국민들의 민감한 정치적 감수성이 큰 작용을 했다고 생각한다. 특정 사안이 발생했을 때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즉각 직접민주주의를 방불케하는 논쟁과 대응이 나타난다.

그러한 관심과 열정이 그 사안의 해결과정에서 최소한의 합리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그러한 사안을 곰삭이면서 우리 사회의 작동 시스템을 바꾸는 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무쇠 솥이 밥을 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 없는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

지난 몇 달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궈놓았던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보는 이에 따라 결과에 대한 해석이 다르겠지만, 16대 국회와 비교해본다면 열린우리당의 비약적인 성장과 민주당의 몰락, 한나라당의 군살빼기와 민노당의 제 몫 찾기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나라당과 민노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비중만큼 의석수를 차지하였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선거의 최대 사건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교차하는 희비쌍곡선이다. 그리고 그러한 쌍곡선은 열린우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너무도 형편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무엇보다도 일반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정치를 정치가들 사이의 계산으로만 생각하는 태도가 민주당의 오늘날을 초래한 요인이었다. 그러한 요인이 양은 냄비처럼 우리 국민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여 정치지형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무쇠솥 같은 국회를 기대한다

이제 양은 냄비가 할 일은 다했다. 남은 것은 무쇠 솥의 역할이다. 방탄국회나 탄핵정국을 가져온 무능력하고 이기적인 국회를 생산적이고 역동적이면서도 무엇이 정의인지 고민하는 국회로 바꾸는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국회 제도의 개선은 아마도 새로운 국회의 개혁의지에 대한 리트머스시험지가 될 것이다. 또 이라크 파병문제도 있다. 정부·여당은 이 문제의 법적 절차가 끝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적 수준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이라크 파병은 섣부른 선택이었다.

그것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인류사의 정의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국익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사용하면 안된다. 단기적인 이익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면 이익이 아닐 수도 있으며, 또 정의의 문제는 이익의 문제와는 지형을 달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라크의 팔루자는 1980년의 광주를 방불케 한다는 외신보도도 있다. 파병에 대한 보다 철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현안들이 다양한 의견수렴과 함께 열린 마음으로 논의되는 국회, 고소하고 맛있는 밥이 익어가는 무쇠솥과 같은 국회,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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