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천심인 벱여”라는 말을 어린 시절에 들은 적이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이삼일 뒤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마을
어귀 가게에서 막걸리를 자시면서 했던 말이었다. 시골 고향에서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이니까, 아마도 1960년대 민주공화당 시절의 국회의원 선거
무렵이 아닌가 싶다.
며칠전 선거로 인해 학교가 휴교하여 친구들과 들로 산으로 쏘다니느라 좋기만 했던 나에게, 심부름차 갔던
가게에서 얼굴이 제법 불콰해진 동네 어른 한 분이 목소리 높여 하신 말씀으로, 어린 귀에는 낯설기만 했으나, 그동안 고향을 대표했던 공화당소속
국회의원이 선거에서 떨어지자, 이변이 일었다고 부모님들이 식탁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과 오버랩되면서 그 말이 뇌리에 깊게
남았다.
민의의 광장과 촛불시위
어린 시절 동네 어른에게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오른 것은 최근의 탄핵정국과 전국적인 촛불시위를
보면서이다. 탄핵안을 발의하고 찬성한 의원들도 민의를 대표한다는 형식적 과정을 거쳐 선출된 사람들이고, 반대한 의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전국을 휩쓴 촛불시위는 탄핵안 가결이 결국 민의를 전혀 수렴하지 않은 정치적 행위였음을 입증해주었다. 즉 민심의 소재를 제대로 읽지 못한
대의기구의 행태에 대해, 민심은 직접 광장에 나가 민의의 소재를 밝혀준 것이다.
맹자는 “하늘의 보살핌은 우리
백성의 보살핌으로부터 하며, 하늘의 들으심은 우리 백성의 들으심으로부터 이니라”라고 하면서 하늘과 백성의 관계를 설정하였다. 즉 하나의 절대로서
인간만물의 근원이자 규범인 하늘은 결국 ‘백성’의 눈과 귀로 그 자신의 의사를 나타낸다는 말이라 보여진다. 그래서 ‘민심이 천심’이라고 공자와
맹자 같은 유학자들이 일찍이 이야기했고,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속히 탈바꿈한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민심과 천심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TV는 물론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매체의 발달로 최근 사회에서는 여론의 형성과 전파가 신속하며
정확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민심’을 알기란 예전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다. 그런데도 왜 천심인 민심을 읽지 못하였을까 하는 점이 또 하나의
궁금증이다.
탄핵안 처리에는 약 5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의 정당성을 판결하는
시간은 180일(헌재의 판단에 따라 연장도 가능하다)로 규정되어 있다. 대통령의 파면을 헌법의 의거해 판단하는데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259,600분에 비교하면 50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백성을 향해 눈.귀 열어야
속전속결로 ‘해치운’ 것은 그들의 눈과 귀가
‘하늘인 백성’에게 쏠려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맛’과 이익, 당리당략에 쏠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성도 인간이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먹고 살기에 바쁜 백성들은 그 모든 일을 잊어버릴 것이고, 그 틈을 타 자신들의 기득권은 여전히 유지되거나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들이 ‘눈과 귀’를 자신에게만 돌리고 있는 이유인 듯 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안타까운 것은 망각의 동물인 인간이 때로는 철저한 ‘기억’의 동물이기도 하다는 점일 것이다. 눈과 귀로 알아버린 진실을 인간은 쉽게 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무서운 하늘도 언제나 백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고, 백성의 귀로 세상을 들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김하림[광주전남문화연대대표, 조선대 중국어과 교수]
김하림[광주전남문화연대대표, 조선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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