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규남(圭南)의 동국전도(東國地圖)와 만국전도(萬國全圖)
[투데이오늘]규남(圭南)의 동국전도(東國地圖)와 만국전도(萬國全圖)
  • 시민의소리
  • 승인 2004.03.2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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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전대사대부고 교사, 문학박사]

  “나는 일찍이 우리나라 지도에 뜻을 두고 비변사와 규장각에 소장된 것, 오래된 집안에 좀먹다 남은 것들을 널리 수집하여 증정하고, 여러 본들을 서로 참고하고, 여러 책들에 근거하여 합쳐서 편집하여 김백원(古山子)에게 물어 그것을 만들게 하였다. 가리켜 증명하고 입으로 전해주기를 수십 년이나 하여 비로소 한 부가 만들어 졌는데 모두 23권이다. 이것은 세상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자산이다. 지리가 있는 곳에 따라 권형(權衡)이 있다.”

  병조판서와 강화도조약 체결 때 판중추부사를 했던 신헌이 김정호가 제작한 동여도에 대한 내용을 ‘대동방여도서’에 적은 글의 일부이다. 고산자는 피나무에 <동여도>를 양각으로 새겨 초간을 1861년 완성하는데 바로 <대동여지도>이다. 이 지도는 그간 자세하고 정확하며, 한 평생을 걸고 제작했다는데서 지리분야 대명사로 회자되었다. 사실 세계지도학사까지 걸작으로 평가한 것은 국토정보를 모두가 공유하게 인쇄보급용인 목판화로 만들었다는 점과 분첩절첩 방식을 채용하여 열람 효율성과 실용성이 높은 지도이기 때문이다.

  고산자의 위대한 업적에는 신헌의 지적처럼 많은 자료가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중 신경준, 위백규, 황윤석과 함께 ‘호남4대실학자’로 일컬어지고 있는 화순 출신 규남 하백원(河百源1781~1844)이 그린 <동국지도>와 <만국전도>를 들 수 있다. 본디 동국지도는 한세기 전에 살았던 정상기가 축척을 사용하여 제작한 전국지도로 조선의 모습을 알린 대표적인 작품이고, 만국전도는 마테오릿지 신부 지도를 본 따 그린 것이다. 

  규남의 동국지도는 1811년 이후의 지리정보를 보안하여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지도첩은 가로 24.5㎝ 세로 37㎝ 높이 3㎝인데, 펼쳤을 때 69㎝와 107㎝ 크기로 모두 10폭이다. 전국도는 백두산부근이 크게 강조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신경준의 산경개념을 도입했으며, 고산자 지도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도별도에서 전라도 지도를 살펴보면 광주와 화순간 무등산과 판치(너리재), 영산강의 사호강과 영산포, 섬진강의 보성강 줄기에 낙수진을 바른 위치에 선명하게 표시했으며, 역과 봉수터는 있는 곳마다 기호도 사용했다.

  1821년에 제작된 만국전도는 보존상태가 좋고, 당시 세계지리정보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입장을 확연하게 보여준 국내 유일본으로 꽤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여겨진다. 가로 132㎝ 세로 80.5㎝ 크기인 이 지도에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그 북서쪽에 사막표시, 중동의 홍해와 중국 황하는 바탕색이 적색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 땅은 백두산과 탐라 울릉도 를 똑똑하게 나타나 있고, 추자도와 흑산도까지도 작은 원으로 그려져 있다. 지방은 팔도 의 첫 자가 각각의 방향에 기록해 놓았다.


  무등산 규봉 남쪽이 고향이라는 의미를 지닌 규남은 소쇄원에서 물염정으로 가는 길에 자리잡은 두메 옴팍지 동네인 이서면 야사리(들모실) 193번지에서 진주하씨 하진성과 장택고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송시열 5대손인 송환기에게 배웠다. 23세 진사시에 합격한 뒤 여러 분야에 걸쳐 1만여권의 책을 구해 읽었다.

집은 가난했으나 같은 마을 석파 나경적의 도움과 영향을 받아 실학에 관심을 모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53세 이후 금부도사, 형조좌랑, 석성현감을 하다 토호의 모함으로 보령현에 유배, 10년간 독서에 힘써 학업을 청해오는 자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1843년 석방되어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규남문집>에는 현실 개혁과 대응에 무능한 선비의 문제점을 통렬히 비판한 대목과 함께 농.공.상도 모두 가치 있는 학문이라면서 공리공론의 유학에 휩쓸리지 말고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학문을 닦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책에는 지식인의 도리는 백성들의 의식주를 편리하게 하고, 의식을 근대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하선생의 생각이 서려있다. 

  오늘날 양수기와 같은 자승차와 벽시계와 닮은 자명종도 발명했던 하백원은 광주 월남동 주남마을 산77번지 묘(卯)방에 영면해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앞날을 진단했던 규남의 얼을 깊이 성찰해볼 때가 지금인 것 같다.


/김경수[전대사대부중 교사,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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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이름 2004-04-03 09:10:27
    저는 지도자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地圖와 자(尺)를 가지고 세상을 보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땅 즉 자연의 이치를 알아 세상을 살피고
    자를 들어 세상을 디자인 하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겠습니까?
    규남 선생 역시 지도와 자를 가지고 있었기 세상의 빛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와 자를 가진 현명한 사람, 찾아 봅시다.
    우리 스스로도 지도와 자를 가지고 인생을 디자인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