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민주 수호'아닌 '새로운 구성'으로
[투데이오늘]'민주 수호'아닌 '새로운 구성'으로
  • 최정기
  • 승인 2004.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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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기[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탄핵정국’으로 연일 나라가 시끄럽다. 참으로 오랜만에 일반시민들이 정치적 사안을 주제로 한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치권대로 탄핵을 주도한 한-민-자 공조세력이건, 반대한 열린 우리당이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온갖 주장과 갖가지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들중에는 비교적 설득력있는 주장도 있지만,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대응이나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의 설명도 있다. 필자는 그중 대극을 이루는 두 담론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탄핵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들은 미쳤다”는 담론이다.

탄핵을 바라보는 두가지 담론

먼저 탄핵이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탄핵에 대한 반대여론에 맞서서 그나마 한-민-자 공조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논리적 이유이다. 물론 대한변협에서 조차도 이번 탄핵이 절차상 위법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주장 역시 논쟁의 여지가 크다. 한 발 양보하여 이번 탄핵이 절차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우리는 1930년대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태인학살이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법의 집행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즉 역사적 경험은 ‘법치(法治)’도 중요하지만, 그 법은 항상 정의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국민투표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절차상으로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고, 내용상으로는 일반인들의 상식수준에서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그 탄핵소추는 이미 정당성을 잃은 행위인 것이다.

이에 반해 모 일간지 칼럼 제목인 ‘당신들은 미쳤다’는 국회의원들의 탄핵소추 의결을 비정상적인 행위로 규정한다. 여기서 ‘미쳤다’는 표현이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일단 논외로 하자. 문제는 이번 탄핵소추가 ‘미친 짓’으로 보일 만큼 국회의원들에게 유례없는 행위인가하는 점이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을 이해는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국회의원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탄핵소추 결정이 비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라 숙고한 결과이며, 정확하게 자신들의 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 나라의 국회사를 보면 일반인들의 상식 수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 이루어진 수 많은 사례들을 접할 수 있다. 이번의 탄핵결정은 헌정 사상 최초로 여당이 국회의원 재적 ⅓에도 못미친 결과이지, 당리당략에 충실한 국회의원들의 유별난 행태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1990년대 사회과학계의 주된 논쟁점은 한국이 과연 민주화되었는가였다. 많은 학자들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우리 나라는 유례없이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라고 말한다. 일반인들 역시 “세상 좋아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민주화도 여러 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직선제와 지방자치제를 제외하면 민주화의 제도적 성과가 없다. 단지 ‘전·노’로 표현되는 대표자 몇 몇에 대한 형식적인 사법처리로 만족하였을 뿐이다. 복수심의 충족에 만족했을 뿐 민주주의의 제도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필자는 이러한 민주화의 결과가 오늘날 ‘탄핵정국’을 가져온 역사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인적 제도적 청산 수반돼야

탄핵정국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분노는 매우 크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적 분노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 방식으로 사태가 정리될 것이다. 그러나 그 해결방식이 일부 국회의원을 교체하는 것으로, 또 탄핵된 대통령의 지위와 관련된 결정으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지위가 아니라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요소들을 민주적인 질서로 바꾸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적 청산 뿐만 아니라 제도적 청산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서 현재의 구호는 민주주의의 ‘수호’가 아니라 ‘새로운 구성’이 되어야 한다.


/최정기(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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