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단소리]인공기와 대구 U대회
[쓴소리단소리]인공기와 대구 U대회
  • 문병란
  • 승인 2003.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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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구에선 세계 대학생들이 모여 국제 올림픽 경기를 치르고 있다. 88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 개최와 같이 큰 경사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그 참가국을 상징하는 100여개 나라의 깃발 중 인공기가 게양되어 펄럭이고 있어 이채롭다.

6·25같은 쓰라린 국난을 겪은 이 땅에서 인공기가 휘날리는 것은 큰 변혁에 가까운 획기적인 사건이다. 그러기에 그 깃발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처지와 연령과 사상에 따라 그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U대회를 앞두고 보수단체가 북핵문제 등 북한 정권 비판 시위를 벌이면서 인공기를 소각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화형하는 극단적 행동을 보여 대구 U대회 불참선언까지 갔다가 노대통령의 사과로 수습되어 다시 참가하게 되었다. 불참이 보도되자 대구는 그 안색이 어두어졌고 실망에 잠겼다.

다시 수습되어 선수와 임원이 오고 그 예쁘고 별난 매력을 지닌 여성 응원단이 오자 대구 전체가 밝아지고 그 환영일색도 놀라웠다. 우파 도시로 알려진 대구의 큰 변신으로 호남지방이 놀랄 정도였다. 경기장의 뜨거운 민족화합 열기도 대단했고 북쪽 선수나 응원단 있는 곳은 매진, 매진, 환영의 물결로 다른 나라 선수, 심지어는 우리 선수단까지도 소외감을 느낀다고 보도했다.

우파의 도시 대구의 놀라운 변신

그런 보도가 있은 다음날 보수단체들이 북한 인권문제며 이것저것 요란한 구호를 내걸고 시위를 벌이며 탈북자돕기 단체(?)들이 경기장 분위기를 정치색으로 흔들어 놓았다.

뒤질세라 북한 기자단들이 지도자 모독발언에 대하여 항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른바 반북적 우파 단체와 북한 기자단, 친북적 운동단체들이 서로 뒤섞여 치고 팬 격투 한 마당, U대회 참가로 옥신각신한 서울 시위의 제2라운드였다.

6·25의 앙금이 다 가시지 않은 세대가 살아있고 몸조심하면서도 그 기회를 엿보아오던 우파진영은 북핵문제를 들어 이른바 진보를 표방한 남북한 화합을 내세운 6·15세대의 약진에 제동을 걸고 등장한 새로운 대결구도가 전개된 셈이다.

이른바 언론이나 학계에서 요란을 떨고 있는 보혁갈등의 심화현상이다.
북한 선수단이나 응원단을 맞이한 대구의 두 표정. 환호와 과잉 친절로 비칠 정도의 환영분위기와 몸싸움까지 벌인 북한 규탄 시위 현장의 살벌한 장면 중 어느 것이 진실인가. 아니, 어느 것이 2003년 8월 현재 우리 민족의 바람직한 자세인가.

우리는 45년 전 6·25당시나 반공을 국시로 내걸고 분단을 독재정권 유지의 방법으로 악용하여 수많은 민주인사를 관제 공산당으로 억압하던 군사독재시절을 극복하고 이제 모처럼 남북 화해와 공존을 위한 새로운 민족사적 대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대구의 성숙한 환영의 자세와 대구 시민의 북한 선수단이나 응원단에 보내준 동포애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었다. 그 대구의 하늘 아래 인공기가 훼손되지 않고 펄럭거린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원정간 외국인까지 낀 탈북자돕기 단체들의 그 지나친 애국열정은 U대회, 전세계 기자와 선수들, 그리고 정치적 해결을 위해 지금 6자회담을 개최하려는 시점에서 찬물을 끼얹는 불화의 노정은 유감스럽고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북핵문제, 남북화해의 지난한 몸짓

역사는 나름대로 순리에 따라 그래도 진보의 법칙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지금 어느 누구도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6·25같은 힘의 논리가 전개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북핵문제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느냐 안 갖느냐의 단순한 무력대결 논리가 아니다.

남북한이 상호 동반자 관계를 재인식하고 공존의 원리에서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데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문제이다. 북한 정권을 흔들어 붕괴시키거나 미국의 큰 힘으로 폭격하여 궤멸시키는 전쟁의 논리를 막기 위하여 민족자결의 원칙에서 남북이 화합하는 어려운 화해의 몸짓이다.

6·15공동선언 정신에 입각하여 경제적으로 북한을 돕고, 금강산 관광을 하고, 남북한 단일팀을 구성하고, 남북한 체제나 지도자를 존경해 주는 것은 민족애가 핵무기보다 더 위대함을 실현시키고자 함이다. 민족애가 뭉친다면 남한이든 북한이든 반드시 핵무기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문병란(본지 발행인·시인·전 조선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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