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단소리]권위주의의 퇴조와 사회적 혼란
[쓴소리단소리]권위주의의 퇴조와 사회적 혼란
  • 문병란
  • 승인 2003.05.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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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일간지의 정치면 사회면을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지럽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직설적 표현이 정가를 어리둥절케 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선후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각계 각층의 요구사항과 집단적 주장이 무성하다.

이 모든 현상이 민주화로 가고 있는 통과의례적 절차인가, 혼란인가. 월드컵 4강 신화 달성만큼이나 노무현 서민 대통령 탄생은 정가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민족적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취임 100여일을 지난 현재, 그 희망들이 조금씩 변색하면서 여기서 저기서 실망의 소리들이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화음정치'가 아니라 '잡음정치'가 걱정을 가져다 주고 정가를 어지럽게 불협화음의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편작(扁鵲)이 열이오자 내병을 어이하리' 이 말은 정철의 <사미인곡 designtimesp=2035>에 있는 싯구이다. 명의 편작이 열명이 와도 님그리는 상사몽을 못 고친다는 고황(膏)의 경지에 든 연군의 정을 비유한 말이다.

'고황'은 흔히 못 고칠 정도의 고질병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나라의 정치현실도 재갈공명이 열명이 와도 해결하지 못할 고황의 경지가 아닌가 걱정이 된다.

그러면 이 모든 심각한 난국이 어디서 초래된 것일까. 필자는 한마디로 말하여 50년 누적된 '분단병'이 그 근원이자 고황의 경지에 든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이 땅을 억누르고 있던 안보제일주의라는 독재적 권위주의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과 함께 퇴조하면서 분단처방에 의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어 모든 불행의 근원인 이 분단병의 고황 상태를 치료해야 된다는 민족적 통일운동이 본 궤도를 찾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사회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며 보혁갈등이 심화되었다. 50년 누적된 분단병, 그것을 빙자한 권위주의가 차츰 퇴조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한 참여정부에 와서는 더욱 가속도가 붙어 그에 따른 합병증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혼란으로 비쳐진다.

취임무렵 일어난 대구지하철 참사, 분단병의 근원인 미국 부시 대통령의 대북한 강경책 선회와 함께 북미간에 합의된 제네바 협정 불이행으로 등장한 핵개발을 위한 원자로 재가동에 따른 이른바 북핵문제 대두, 화물노조의 파업과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정치적 파장, 5·18묘역 한총련 시위와 한미정상 회담 저자세 외교문제, 전교조와 대한교총의 교육정책에 대한 갈등으로 전개된 교육대란….

여기서 총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서민경제의 어려움과 개혁의 실종이 염려되는 노무현 정부의 방향타는 사뭇 흔들리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태생학적으로 여당인 민주당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연고를 개혁하여 새로운 여당을 만들겠다는 신당창당의 성급한 승부수는 좌초의 위기감마저 느끼게 한다. 거기에다 전남북지역 95%의 당선표와 함께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구여권의 정치자금 부정부패와 맞물려 연일 구속 소동을 빚고 있는 구시대 부조리 청산작업… 이런 것들이 한거번에 터지면서 역량부족과 그 해법 미달의 정치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필자는 이 모든 난국의 근원을 분단병이라고 진단하고 싶다.

이제 다가오는 6월은 흔히 호국영령의 달이라고 한다. 현충일이 있고 휴전협정 40년째를 맞는다. 6·25라는 한국전쟁은 3년간 한반도에서 2차대전 전비에 버금가는 화약을 쏟아부으면서 수백만의 전상자와 도시를 파괴하여 초토화 시켰다. 그러고도 휴전선은 38선 그 자리 비슷한 곳에 능구렁이처럼 자리잡고 아직도 우리의 목줄을 그 독이빨로 노리고 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와 함께 부시 대통령과 가진 한미정상회담은 시기적절했고 성공적이었다고 하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저자세 외교라는 주장도 있고 남북관계엔 미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과 관련된 무력응징에 손을 들어준 듯한 공동성명의 문구를 트집잡아 북측에서 '남쪽에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는 엄포발언은 북한에 경협에 의하여 쌀을 올려 보내야 하면서도 남북관계의 먹구름이 분명하다.

이 모든 난국의 병인이 바로 분단이며, 독재가 등장한 배경이 바로 6·25같은 분단에 의한 이데올로기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황의 경지에 든 이 분단병을 고치지 않고서는 전신마비라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무서운 병이 시작된 6월을 맞이하여 민족적 화해의 처방을 찾아낸 편작만이 이 땅의 병을 치료할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 문제를 일순위에 두고 그 위기 탈출의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에 안정이 오고 거기에서 모든 갈등이 풀리는 '화음정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병란(본지 발행인·시인· 전 조선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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