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단소리]정답과 오답
[쓴소리단소리]정답과 오답
  • 문병란
  • 승인 2003.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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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대입 수능고사 성적 발표를 며칠 앞두고 언어 이해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에 정답과 그에 유사한 또 하나의 정답이 인정되어 혼란과 차질을 빚고 있다.

 본래 4지 선다식이나 5지 선다식이 대량 생산적 편의주의에 의하여 마련된 객관식 출제 방식으로 하나의 정답을 두고 그와 엇비슷하면서도 틀린 유사답과 오답을 뒤섞어 그 이해나 추리력을 측정한다는 것이다. 시험이란 합격시키기 보다 떨어뜨리기 위한 의도가 더 강한지 모른다. 아리송한 연막을 쳐서 가려내기 어렵게 한다는 것이 너무 지나쳐 그 유사함이 오히려 같다는 쪽으로 인식될 때 선의의 항의가 등장할 것이다.

 금번 문항의 경우 본래의 정답이 60% 유사답이 40%라고 하니 그대로 밀고 가도 최선답이란 융통성이라면 실력 측정에 하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열린 민주 사회를 지향하여 조금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구제해야 된다는 휴머니즘이 그 강한 발언권을 갖고 있다. 이것도 권위주의의 퇴조라 하여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혹여 제3의 유사답 찾기 악취미가 잇따라 그 시비가 천파만파 파장이 일지 않을까 걱정된다. 왜냐하면 인생이나 학문이란 것도 알쏭달쏭한 것이 많고 그 주장이나 학설도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하나의 답을 감추어 놓고 학생들을 애먹이려는 그 출제자의 조금은 악의적인 유사답이 두 개의 정답을 만들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그 경우 최선답이란 선다식의 특징을 살려야 할 것이다. 시비에 말려 더 이상의 차질이 없기를 바란다.

 본래 인생이나 학문에 정답과 오답을 매긴다는 게 문제인지 모른다. 한 예로 에디슨은 어릴 때 1+1=1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누구나 다 아는 2라는 정답이 있는데 그 아이는 엉뚱하게 1이라고 했다. 산수의 개념으로선 틀리지만 그 오답은 훗날 그를 위대한 과학자 발명왕이 되게 한 천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쩌면 초보적인 산수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이론수학이나 철학적 수리의 무한한 숫자의 신비를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또 인생에 대하여 산수 같은 정답은 나올 수가 없다. 정답이나 모범답안을 많이 맞춘 학생이 반드시 오답의 낙제생이나 열등생보다 사회나 인생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 P>  오답 쪽에 더 많은 인생의 가능성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모범답안만 척척 가려내는 우등생, 그러나 그는 때로는 백면서생이거나 기껏해야 교단에서 교사 노릇을 할 것이다. 오답의 철학, 오답의 인생론, 오답의 숨은 사회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정답만 따지는 인생이란 편협하거나 재미 없을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실력자 정치가도 오답의 천재가 아닐까.

모범답안 우등생이 인생 우등생 일까

이렇게 말하면 어떤 학생에겐 인생의 운명이 걸린 1점이나 2점이 장차 인생의 승격에서 어떤 편차로 나타날지 모르는데 무슨 뚱딴지냐 나의 다변에 핀잔을 주겠지만, 모범답안만 쥐어주는 편협한 오늘의 교육, 5지 선다식 같은 아리송한 세상살이가 참으로 역겨운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에 고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제자가 전국 수능고사 모의문제를 보여주며, 어떤 출제자에 의하여 예시된 나의 졸시 <직녀에게 > 그와 짝을 이룬 김수영, 김지하 제씨의 시와 묶어서 낸 문제를 한번 풀어보라 하였다.

 나도 수년간 그런 지도를 했고 어느 면 그런 교사로 유능하다는 평도 들었지만 그 복잡한 기호와 물음과 알쏭달쏭한 5지 문항을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스토아학파는 마침내 가는 머리털을 둘로 쪼개는 방법을 연구해야 후련했다고 한다. 결국 그런 것이 미분일 것이고 우주과학이 아닐까. 하지만 머리털을 꼭 둘로 쪼개야 할까.

 나는 근자에 <오답>이란 시를 써서 문예지에 발표했다.「오늘, 나의 운명은 / 바야흐로 선택의 기로, / 하여가를 부를 것이냐 / 단심가를 부를 것이냐 // 내가 고른 오답은 / 내 가는 길을 막고 서서 / 자꾸만 돌아서 가라고 / 두 눈 부라리고 있다(나의 졸시 오답의 3, 4연)」모범 답안을 고른 사람들은 인생을 좀더 쉽고 편하게 살지 모른다. 그러나 오답을 고른 사람들은 의자도 합격도 차지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스승삼아 돌아가는 고행을 택하거나 고통과 싸울지도 모른다.

 여기에 또 하나의 오답의 매력 열등생의 매력이 있다. 오답을 고른 사람들이여, 힘내라, 낙담하지 말고 재도전하라.

문병란(시인·전 조선대교수·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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