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더욱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제 사랑을 받아주십시오!’라는 고백을 들을 때면, 상대가 어떻튼 누구나 행복감에 뿌듯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고백이 하나에 그치지 않고 복수로 주어진다면, 말할 나위도 없이 그 행복감은 하늘을 찌를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동시에 여러 곳에서 이런 식의 ‘짝사랑 고백’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고민의 근원이기도 하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있고, 고백의 당사자들이 별로 신통치 않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또 ‘오지랖 넓게’ 이쪽저쪽 기웃거리다가는 좋지 못한 평판이나 듣기 십상이기도 하다.
호남에 넘치는 사랑가 그러나
4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정치 일번지라는 광주와 호남에 ‘사랑갗가 넘치고 있다. ‘옛 정’에 호소하기도 하고, ‘한 번 밀어줬으니 계속 밀어줘야 한다'고 애원하기도 하고, 이제는 ‘사랑의 대상을 바꿔야’ 한다고 읍소도 하면서, 모두가 생사를 걸고 있는 듯 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일 것이다.
첫째로는
무엇보다도 지역의 높은 정치적 감각과 역사적 정당성 때문일 것이다. 호남의 선택은 지역적 이기주의나 연고에 매달리기보다는 역사와 민족의 미래를
더 고민하는 투표성향을 보여왔다.
다음으로는 현실적 요인으로 호남표의 결집력 때문일 것이다. 일부는 이런 결집력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 파괴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세 번째로는 호남의 결집이 미치는 수도권 및 전국적 영향력 때문이다. 선거판에서 흔히 ‘바람’과 ‘조직’이라고 이야기 할 때, 그 바람의 진원지가 호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호남은 그동안 짝사랑의 쓰라린 배반도 적지 않게 경험해보았다. 아쉬울 때는 팥죽 단지에 생쥐 달랑거리듯 드나들지만, 사랑의 대가를 받은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을 바꿔버리는 일을 자주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수록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꺼려하고, 그래서 ‘사랑갗가 더 높게 자주 불려지는 지도 모른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사랑은 자기희생과 타인에 대한 모심일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지역은 수많은 희생과 고난을 겪어왔고, 그 과정에서 소외당하고 핍박당하고 왜곡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아’보다는 ‘대아’를 생각했고, ‘이익’보다는 ‘손해’를 감수해왔다. 수많은 짝사랑에 속으면서도, 더 큰 사랑으로 승화되기를 기원해왔다.
지역위한 선택의 지혜
발휘를
이 과정에서
이제는 더 이상 ‘짝사랑’에 속지 말자는 목소리도 높아져가고 있다. ‘챙길 것은 챙기고’, ‘받을 것은 받는’ 자세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것이라는 의식도 자리를 잡아가도 있다.
갈수록 낙후되어 가는 지역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런 주장이나 의식은 오히려 필요하고 타당하다는 견해도 강해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우리 지역은 이미 ‘코가 석자를 넘어 다섯 자 이상 빠져 있는’상태이다. 경제적 어려움, 인구의 급감, 농어촌의 피폐는 이미 한계치에 이르렀다.
이런 현실에서 어떤 판단이 올바른 것인지 고민은 깊어가고 있고, 이 때문에 ‘사랑의 고백’에 대한 대답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하게 ‘명분과 실리’ 사이의 고민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택의 폭을 넓게 할 수 있는 제반 조건들의 성숙이 문제인 것이다.
두 달여 앞으로 남은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우리 지역에게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그 지혜를 어떻게 모아서 발휘할 것인가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김하림(광주전남문화연대 대표, 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