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고]1년만의 답변-지역경제를 위한 전환(轉換)
[신년기고]1년만의 답변-지역경제를 위한 전환(轉換)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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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문화산업열광은 문화전문가가 없기 때문
'기술상업화' 개념 도입 적극 검토해야
새 시대 걸맞는 새로운 행정 보고 싶다


대통령의 질문

2003년 1월 28일. 당선이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한 노무현 당선자는 광기술원에서 광주지역 과학자들과 만났다. 박광태 광주시장을 비롯한 광주시의 정책결정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는, ‘세계적인 과학자를 광주로 모셔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자 대통령은 불쑥 이런 질문을 내놓았다.

“그런데 세계적인 과학자를 광주로 모셔오면 그것이 지역경제에 어떤 도움이 됩니까? ”
광주의 최고 정책결정자들과 과학자들은 일순, 답변을 머뭇거렸다. 준비된 답변이 없었다.

세계적 과학자를 광주로 모셔온다는 것이, 광주의 지역경제에 어떤 도움이 될까? 오늘은 이 질문에 답해 보고자 한다. 독자들도 이 질문에 대해 잠시 생각해 주기 바란다.

문화산업에 대한 몰이해(沒理解)

2003년 11월 9일 광주에서는 문화중심도시 육성 보고회가 열렸다. 대통령은 이 보고회에서 문화산업의 발전가능성을 강조했다. 조선 자동차 같은 우리나라 주력산업보다, 문화산업의 세계시장이 더 크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노라면, 광주가 금방이라도 세계적인 문화산업도시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런 내용이 왜 문화관광부 계획에는 빠졌을까? 뒤에 이창동문화부장관을 따로 만나 이 부분에 대해 물었다. 이장관은 문화산업육성은 다양한 문화인재를 길러낸 다음에 논의할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날은 언제인가? 문화인재 육성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인가? 우리 대(代)에 가능하긴 한 일인가?

2003년 초 한 방송사의 토론회에 참석했던 건축가 김진애씨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문화산업은 성공하기 힘든 산업이다. 정부가 문화산업을 지정하려 해도 광주는 이것을 거부해야 한다. 광주가 문화산업을 추진하려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김씨는 그 날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광주는 왜 ‘문화산업’에 열광하는가? 내가 찾은 답은 이렇다. 광주에 문화산업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산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그냥 멋모르고 떠들고 있는 것이다.

비(非)전문가의 논의

2003년 4월 8일 광주시청에서는 문화수도육성추진위원회가 열렸다. 여기에 모인 각계각층 대표들은 문화수도육성이라는 전문적인 문제에 대해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들을 했다. 문화재단을 만들자느니, 축제를 하자느니, 각자 아전인수격인 대책을 내놓았다. 광주의 ‘논의수준’을 절감하게 하는 자리였다.

더러 각계각층의 대표를 통해 전 시민의 역량을 모아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결할 일과, 전문가의 식견을 들어야 할 일은 구별해야 한다. 만약 4월 8일에 모인 사람들의 주장이 옳았다면 <문화의 전당 >을 중심축으로하는 문화수도 육성 방안에 대해 누군가 비판하고 나서야 한다. 그러나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다. 그런 쓸모없는 논의를 왜 했는지 모르겠다.

소위 전문가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광주가 문화수도가 된다니까 갑자기 문화행정에 대해 ‘전문가연(專門家然)’하는 교수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가 발표한 논문은 여기저기서 자료를 모았을 뿐, 자기 얘기는 하나도 없는 무용지물이었다.

문화행정에 대해 책 한 권, 논문 한 편 쓰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 분야에 대해 ‘발언’할 엄두를 내는 것인지 그 용기가 가상하다. 교수도 자기 전공을 벗어나면 그저 상식인일 뿐이다. 그런 수준에서 논의를 주도하려는 일부 지식인들의 태도가 광주의 논의 수준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계속되는 관주도 개발

비전문적인 논의의 결과는 어떤가? 개발독재시대를 이어받은 ‘관료 주도의 성과주의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시대는 바뀌었는데, 방법은 예전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시에는 중점육성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사업의 선정이 주먹구구식이다.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했는지 알려진 게 없다.

게다가 육성사업 수가 매년 5개에서 7개로 늘었다 줄었다 한다. 이러고도 중점육성사업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계 어느 곳에도 이렇게 많은 산업을 육성하는 데 성공한 도시는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광주시 관계자들은 왜 이 많은 산업을 걸머지고 있는 것일까? 아마 자신들이 내려놓으면 해당산업의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산업은 행정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전하거나 실패한다. 또 이런 문제는 경제계 사람들이 관료보다 훨씬 전문가다. 이제 ‘행정’은 새로운 시대에 맡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콜센터 성공의 의미

광주시가 최근 성과를 내고 있는 콜센터 유치는 새로운 행정의 역할에 시사점을 던져 준다. 그들은 값싸고 안정적인 인력을 찾아 광주로 왔다. ‘기업은 좋은 여건을 만들면 온다’는 평범한 얘기를 증명한 것이다.

시장(市場)에서는 ‘좋은 여건’이 ‘적극적인 유치활동’보다 훨씬 큰 흡입력을 발휘한다. 그것이 ‘시장의 질서’이다. 그렇다면 기업을 ‘유캄하기 위해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기업을 ‘유인’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광주가 육성하려는 중점산업이 아니어도 좋다. 부가가치가 높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이면 족하다. 흑묘백묘론과 다름 아니다.

기술상업화(Technology Commercialization)

‘그렇다면 어떻게 기업을 유인할 것인갗 그 답변은 대통령의 1년 전 질문과 닿아 있다.
이제 미뤄두었던 대통령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대통령의 불의의 일격(?)에 멈칫거리던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과학자가 오게되면 그와 함께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배운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과연 광주의 지성들이 대통령에게 내놓은 답변은 옳았는가? 만약 그 연구자들이 자기의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고장으로 떠난다면 - 지금 실제상황이 이렇다 - 그래도 지역경제에 기여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이 인재육성의 길일지언정 지역경제 발전방안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질문에 합당한 답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 답은 기술상업화(Technology Commercialization)라는 개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기술산업화라고 해도 크게 다른 말이 아니다. 그들이 개발한 새로운 기술을 ‘시장(市場)’에 내다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지역경제에 기여 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이미 세계적인 발전도시에서 검증된 것이며, 미국 하버드대학이 모범사례로 인정한 것이다.

이 개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문가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과학자만큼이나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 전문가는 개발된 기술이 가까운 시간 안에 상업화할 수 있는 지를 판단해야 한다. 또 개발된 원리나 기술을 시장에 맞게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실용화하지 못하면, ‘경제적’일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부동산투자전문가는 양성하면서도, 기술상업화 전문가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부족하다.

창업보육센터

기술상업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창업보육센터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창업보육센터를 만들면 이 지역에서 개발된 기술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에서 개발된 기술도 찾아오게 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연구자의 입장이 되어 보자. 신기술을 개발한 연구자는 그 제품을 만들어 팔 때까지 수많은 준비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먼저 이 기술이 사업성이 있는 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생산자금을 구해야 하고, 회사도 설립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고, 정말 수많은 서류를 만들어야 한다. 평생 연구에만 몰두해 온 연구자라면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창업보육센터라면 이런 일들을 모두 대행해주어야 한다. ‘지도’나 ‘상담’이 아니라 ‘대행(代行)’이다. 사람은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 편히 연구에 전념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절차는 - 마케팅을 포함해서 -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맡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 대기업에 그 기술을 파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M&A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일단 기술을 판 뒤 그 회사 소속원이 되어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다. 자기는 연구에 전념하고 마케팅을 포함한 다른 업무는 기존 회사 조직을 통해 실현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런 거래가 드물다. 그래서 신기술의 산업화가 더디다. 지역 행정이 이 역할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미 광주에도 몇 군데 창업보육센터가 있기는 하지만, 사무공간을 빌려주는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한다. 예산부족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그동안 광주가 산업육성에 쏟아 부은 수 조원에 비하면 비용이랄 것도 없는 미미한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

행정이 그동안 경제발전을 주도하려 했다면, 이제는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역할을 바꾸어야 한다. 광주시가 먼저 계획을 세우고 성과를 위해 추진하는 하향식 방법은 이제 버려야 한다. 모든 논의의 기준을 ‘기업’에 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관련 연구소나 협회 같은 것들도 스스로 내세우는 성과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업을 지원한 실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또 광주를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좋은 환경과 좋은 교육시설 같은 것들이 기업유치의 핵심전략이 될 수 있다. 광주시가 추진하는 중앙행정기관 이전도 이런 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들이 살고 싶은 여건을 만들면 애써 유치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또 그러지 않고서는 유치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전문화와 분권화가 동시에 진행된 사회, 새해에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행정을 보고 싶다.

/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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