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빈 둥지 시기 어머니들의 준비
[투데이오늘]빈 둥지 시기 어머니들의 준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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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대사회로 올수록 기대수명은 늘어남과 동시에 출산률이 떨어지면서 부부만 함께 가족생활을 누리는 '빈 둥지' 시기가 더욱 앞당겨지고 있다.

한자녀 가정이나 아예 무자녀 가정이 늘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빈둥지 시기에 대한 성인부부의 대비는 자녀출산과 교육 못지 않게 중요한 가족계획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한참 사회적 활동이 왕성한 장년기인 40대 중반에 필자가 마음의 준비 없이 빈 둥지를 경험하게 된 것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하면서부터였다. 또, 자녀들의 결혼이 아니라 자녀들의 대학진학으로 사실상 빈 둥지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자녀의 진학으로 빈 둥지에 남는 여성들

부부애보다는 자식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게 강한 한국 중년여성들의 경우엔 빈 둥지의 쓸쓸함과 자녀의 독립으로 인한 심리적 상실감이 서구사회의 여성들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이 자식의 교육에서의 성공을 위해 장년기의 열정을 쏟기 때문에 빈둥지시기 전후의 단절을 심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직업적인 성취를 양보하지 않으려고 매순간 갈등하면서 인색한 엄마노릇을 해온 필자가 혼자 누리게 된 밤 시간과 새벽시간의 충만함보다는 공허함을 느끼면서, 자식에게 더 많은 것을 바쳐온 전업엄마들의 마음은 어떠할까를 생각해본다.

굳이 필자가 여기서 전업주부라는 표현대신에 '전업엄마'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자녀를 둔 대부분의 한국의 기혼여성들이 자녀교육의 전문관리자로 젊음을 보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어머니들은 가정에서 자녀양육과 교육을 전담하며 자신의 생애를 자녀의 교육주기에 맞추어 빈둥지 이전의 생애를 보낸다. 자녀교육활동의 정점을 이루는 대학입시를 위해 직장을 떠난 경우도 적지 않다.

취업모이든 전업모이든 한국어머니들의 일상생활과 활동의 관리는 철저하게 자녀에게 종속되어 있고 식민화되어 있다. 과거에는 살림 잘하는 것이 주부로서 최고였지만 이제는 애 잘키우는 것이 최고가 되었다.

'애를 잘 키운다'는 것은 그 자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지만 우리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변질되어 인성교육을 잘시키고 아이의 잠재력을 키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 잘하는 아이, 궁극적으로 명문대에 진학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모성의 평가가 아이 성적과 명문대 진학에 의해 판가름난다.

자신의 성공이 어머니의 성공이라는 압박감으로 인해 수능시험장에서 빠져나가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한 딸, 명문대 입학의 꿈을 앞둔 자식의 교통사고를 대신 뒤집어 쓴 어머니의 모습은 일그러진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아닐까.

자식뒷바라지라는 모성역할의 정점을 이루는 대입수험생들의 어머니 역할을 보면 현대판 아니 한국형 '현모'의 역할수행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전통적인 현모가 덕성과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였다면, 현대판 현모는 성적 잘 올려주는 과외교사나 학원에 대해 잘 알고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하며, 자녀의 시간과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차로 실어 나르는 기동력 있고 영악한 어머니이다.

어머니들의 일상생활의 시간 구성은 모두 자녀에게 맞추어져 있고 때로는 기본적 생리적 욕구까지 포기해야 한다.

새벽 1시경에 오는 자녀를 위해 밤잠을 참아야 하며 등교준비를 위해 새벽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힘든 여정이 과연 건강한 모자관계, 부모자식관계에 바람직한 것일까. 문제는 입시교육의 도구로 전락한 모성의 역할로 인해 오히려 둘 사이의 친밀성이 상실되고 관계가 도구화된다는데 있다.

자녀를 어느 대학에 입학시켰는가에 의해 모성역할의 총평이 내려지고 부모노릇의 성공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한 해의 끝에서 성찰의 시간 함께 하고파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자녀 둘을 위해 20여 년 계속해온 전문직을 떠나려고 하는 선배의 모습, 인생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간관계 특히, 자식과의 관계의 성공이라는 어느 선배의 말이 어느 때보다 마음 깊이 새겨지는 때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필자와 같이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는 중년여성들에게 자식교육의 성취와 그것이 자신의 삶에 주는 의미 대해 성찰의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빈 둥지 시기의 공허함에 대해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자신의 모두를 바쳐야하는 어머니 노릇이 아닌 대안적인 어머니 노릇은 어떤 것인지, 어머니 노릇이 한창인 시기에 잠깐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봐야 되지 않을까.

/안진 (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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