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큰스님과 대선자금
[기고]큰스님과 대선자금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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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변호사.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지난 2월까지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조인출신으로 현재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으로서 광주 광산구에서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이근우 변호사가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시민의 소리'는 새 정치를 꿈꾸는 입지자들의 원고를 받습니다. 특히 '정치신인'의 활발한 기고를 기대합니다.

이 시대에 '참사람'은 없는가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인 선지식(善知識)이며 임제(臨濟)의 정맥을 잇고 있는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큰스님이 입적했다.

천진무구한, 가히 국보급 미소로 '참사람'을 설파하며 선풍을 크게 진작시킨 큰스님. 나라가 불법 대선자금을 둘러싸고 혼미한 이 때에 좌탈입망(坐脫立亡), 홀연히 열반에 든데 대한 아쉬움은 너무나 크기만 하다.

지난 70년대부터 주창해온 '참사람 운동'은 무명(無明)과 욕망의 장애를 벗어버리고 분별과 아집을 타파해 '참나'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당나라 때 고승인 임제의 '무위진인(無位眞人)'을 근본으로 한다. 즉 욕망 때문에 타락하고 멸망하게 된 것을 참사람의 입장에서 평화와 자비심으로 구제해야한다는 가르침이다. 이기적 욕망으로 인해 세상이 온통 싸움뿐이라며 개탄하던 노장은 모두가 자기의 참모습을 깨달을 수 있고 또 하면 되는데 눈앞의 일에 얽매여서 하지 않으니 볼 수 없다며 올바르게 살려는 마음을 내는, 발심(發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라꼴은 어떤가.
소위 나라를 경영한다는 위정자들의 작태는 참사람은 그만두고라도 가히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는다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 모든 짐(불법 대선자금 등)을 지고 감옥에 가겠다'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발언에 국민들은 기가 막힐 뿐이다. 어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한낱 '내기'를 걸 정도로 그 위상이 보잘것없는 자리란 말인가. 여기에 한나라당은 우리는 '솔직히' 시인했으니 이제 10분의 1 이상을 밝혀 하야를 시키겠다고 기세를 올린다. 이에 노 대통령은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이 발언은 (최병렬 한나라당대표가) 수사의 불공정성을 제기한데 대해 불법선거자금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박한 말'이라며 '기본 취지는 이를 계기로 모두 반성하고 정치개혁에 나서자는 것이었다'고 진화에 나섰다. 본질이 강조되지 않은 것에 대한 유감표명을 한 것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뒷맛은 영 개운치가 않다. 도대체 '10분의 1'은 무엇에 근거한 잣대인가. 이 것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도덕성의 최하한선이란 얘기인가. 정공법이라는 '창(槍)'을 들고 나온 이회창씨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초 두 아들의 '병역비리'가 불거졌을 때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지금의 '책임론'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도마뱀이 꼬리 자르듯 수차례나 말 바꾸기를 하던 그에게 진심을 기대하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참사람'이 되기에는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모습들이다.

지위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한데 모여 깨달음의 경지를 논하며 법거량(法擧揚)하는 무차선회(無遮禪會). 지난 1912년 방한암스님이 금강산 건봉사에서 한 것을 끝으로 98년 86년 만에 백양사에서 무차선회를 갖고 활발발(活潑潑)한 선의 경지를 펼쳐 주목받았던 서옹 큰스님의 쩌렁쩌렁한 할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닌지.

각박한 세태를 바라보며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각해 본다.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는 것. 아주 단순하면서도 실행하기가 어렵다. 내안에 아집(我執)이 의외로 강하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아집으로 인해 상대방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팽팽한 대립각을 세울 때 타협의 여지는 사라져 버린다.

작금에 벌어지는 파행정국도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한쪽은 감추려하고 한쪽은 들춰내려 한데서 비롯된다. 떳떳하다면 솔직히 밝혀야 옳지 그게 어디 그냥 지나칠 일인가. 아무리 세월이 약이라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그 상식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딱하기만 하다. 내년 총선에서 만큼은 단단히 본때를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이근우[변호사.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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