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동아시아 민간인학살 현장을 다녀와서-실종과 죽음의 땅에서 희망을 …
[기고]동아시아 민간인학살 현장을 다녀와서-실종과 죽음의 땅에서 희망을 …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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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충남[CBS광주방송 프로듀서]
   
▲ 지난19일 전민특위의 전남 함평군 불갑산 자락의 유골발굴 현장
지난 9월부터 CBS광주방송에서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학살 문제를 4개월째 기획 방송하고 있다.

좌우 대립과 전쟁의 와중에서 이념이나 사상, 전투와 무관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 곁에 아직도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
해남 땅끝에서 완도, 함평, 여수, 순천, 광주에 이르기까지 어느한 곳 상처 입지 않은 남도 땅이 없었지만 아직도 진상 규명의 미래는 흐리기만 하다.

20세기를 거치며 전쟁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고, 그래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다른 나라의 진상규명과 해결 노력을 알아보게 됐다.
독일이나 동유럽 사례보다는 , 서구 자본주의의 이식 과정에서 비슷한 식민의 역사를 간직하고 고통을 함께한 동아시아의 사례가 보편적 아시아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내전과 정치적 분쟁으로 1987년부터 1991년사이에 6만여명이 실종되거나 학살된 스리랑카를 거쳐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를 목적지로 정했다.

역설의 희망던지는 스리랑카와 캄보디아 현실

지난 11월 하순 6시간 가까이 비행한 뒤에 도착한 스리랑카는 이제 막 우기가 끝나고 한국의 건조한 여름 같은 날씨가 계속되는 곳이었다.
타밀족과 싱할족의 내전, 그리고 스리랑카 내각 정파의 권력 다툼 와중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6만여명이나 실종되거나 학살되었다. 정치적 반대자, 야당, 노동운동가, 지식인층, 정부에 협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표적이 되었다.

스리랑카에서는 이후 실종자 유족회를 중심으로 실태조사와 진상규명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1991년 이후 실종자에 대한 조사와 집계로 3만여명이 미흡하나마 보상을 받았다.
스리랑카 실종자 가족들의 오늘이 있기 까지 광주 5. 18 기념재단과 아시아 인권위원회의 도움은 큰 힘이 되고 있다.
고통의 연대와 희망의 나눔이 현실화된 모습을 스리랑카에서 볼 수 있었다.

한밤중에 찾아온 경찰, 군인들에게 갑자기 남편과 아들을 빼앗기고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스리랑카 사람들과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가족을 잃은 한국 유족들은 동일한 역사의 길을 걷고 있었다.
진상조사를 위한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가 꾸려지고, 일부에 대한 실태조사와 금전적 보상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당시 가해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고 진상규명의 길은 요원한 듯하다.

영국 식민지 수탈의 역사에 이어, 내전과 정치적 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스리랑카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역사는 한국의 민간인 희생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스리랑카의 성공과 실패의 사례는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적 경로에 반면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캄보디아 또한 식민의 역사를 딛고, 크메르루즈 정권을 거치며 수백만에 이르는 민간인이 학살된 곳으로 유명하다.

프놈펜 시내에 위치한 뚜슬렝 감옥에는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고문기구 그리고 실제 유골이 전시돼 있다. 프놈펜에서 멀지 않은 근교에 위치한 찡아엑은 킬링필드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에서도 실제 유골, 그리고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지역을 볼 수 있다.

1975년부터 1979년 사이 수백만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된 캄보디아는 강력한 핵폭풍을 맞고 기력이 빠진 나라와 흡사하다. 젊은이, 지식인등 한 세대가 사라진 캄보디아에서 생산과 창조의 모습은 비포장 도로의 먼지에 싸여 찾아볼 수 없었다.

공무원과 경찰의 한달 임금이 25- 30달러 수준이고, 사법부까지 부패의 고리가 뻗쳐있고,산업기반이 미약해 실업자가 넘치고 세계 최고의 문맹률을 기록하는 현실이다.
숙소근처 식당에서 만난 10대 소녀는 새벽 6시에서 밤 10시까지 점심시간을 빼고는 거의 18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캄보디아의 오늘 현실이다.

아직 재판에 회부중인 킬링필드의 가해자들은 여전히 처벌될 기미가 없어보였다. 재판은 계속 미뤄지고 있고 여전히 훈센 총리 정부 요직에 있는 크메르루즈 연루자들이 진상규명과 처벌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처벌을 위한 캄보디아 NGO들의 분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식민 청산과 반민족 행위자 처벌이 이뤄지지 못하고, 좌우 냉전의 그늘을 이용하는 세력이 권좌에 현존하는 한국과 캄보디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처참한 유골과 전쟁의 참화를 여전히 박물관과 현실속에 고스란히 간직한 캄보디아에서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이런 답답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새로운 사실하나를 발견했다.

고통스런운 학살의 과거위에 참을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지탱하며 진실을 찾고 있는 운동가들과 NGO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에서 구조의 개선을 위해 힘쓰는 한국의 운동 현실을 보면 (물론 과거 우리도 그런 분투의 길을 걸어왔지만...) 삶의 치열함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 같다.

스리랑카와 캄보디아의 현실은 광주, 한국의 젊은이, NGO, 정부당국자에게 많은 가능성과 희망을 준다. 우리가 해야할 일을 알려주고, 가야할 곳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 사례와 관련해 뭘 배우려면 유럽이나 미국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이것은 언론사의 무슨무슨 기획시리즈나 특집 방송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우리 자신의 강박률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서구식 자본주의 교육이 항상 선진 모델을 유럽이나 미국에서 배워야 하는것처럼 강권한 것은 아닌지….

연대와 나눔의 지구화가 우리의 살 길

하지만 이제 아시아로 눈을 돌려, 고통스런 현실에서 희망을 찾아보면 어떨까?
힘겨운 과거의 그늘에서 헤어나, 배우고, 민주주의를 키우고, 인권을 찾아나서는 동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젊은이, 언론, NGO가 해야 일이 너무나 많다.

그들의 역사와 삶을 보노라면 너무 힘들어하지도, 너무 실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해야할 일, 가야할 곳, 나누어야 할 희망이 있어서…. 다시 봄의 파종을 기다려야한다.

카쉬미르에서의 5만명에 이르는 민간인 희생, 네팔에서의 1996년이래로 7천명의 희생, 정치적 억압과 구류, 증거없는 구금과 사형... 바로 지금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연대와 나눔의 지구화가 자본의 지구화를 막는 우리를 살리는 길일지도 모른다.

/조충남[CBS광주방송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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