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대선자금 ‘따옴표’ 보도 문제 있다
[투데이오늘]대선자금 ‘따옴표’ 보도 문제 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혁재[참여연대 운영위원장]

SK 비자금 수사가 돈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우리 정치의 냄새 나는 속살을 파헤치고 있다. 검은 돈이 선거를 타락시키고 정치를 부패시킨 것을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었지만 실상이 확인되면서 국민은 또다시 좌절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기회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측근의 비리의혹에 대통령직을 걸고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섰으며, 최병렬 대표는 ‘석고대죄’한다고 사과했고, 정계를 은퇴한 이회창 후보도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다.

이 기회에 지금까지 저질렀던 불법적 돈 거래를 검찰이 다 파헤치고, 정치권은 모든 걸 다 밝히고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개혁을 신속하게 추진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마도

이것이 대선자금 정국을 바라보는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정치는 돈에 대해 매우 뻔뻔했다. 불법정치자금은 필요악이라면서 계속 검은 돈을 받아썼고, 걸리면 재수가 없다고 투덜거리거나 정권의 음모라고 억지를 부렸으며, 불체포특권을 방패로 검찰 수사를 피해갔다.

정치권의 후안무치한 태도에는 언론도 일부 책임이 있다. 대선자금 관련 보도가 ‘따옴표 저널리즘’이라 불리는 중계방송식 보도이기 때문이다.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나 당사자들의 변명이 확인되지 않은 채로 보도되고 있다.

오보의 대표적 사례가 동아일보의 ‘굿모닝시티 연루 정치인 실명 보도’였다. 오보였음이 밝혀져도 ‘아니면 말고’ 식으로 그냥 넘어가는 바람에 국민은 대선자금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어렵다.

중계방송식 보도는 사건의 본질을 흐려버린다. 검찰수사의 공정성, 특검의 필요성을 둘러싼 지루한 정치공방을 단편적으로 보도하다 보니 정치권이 검은 돈을 어떤 기업으로부터 얼마를 받았고, 또 그 돈을 어디에 썼는가 하는 대선자금의 본질은 점점 보도의 핵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나만 잘못한 것도 아니다”, “현실이 어쩔 수 없었다”는 등 책임 떠넘기기, 변명하기에 급급한 정치권의 주장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면 따옴표를 쓴다 하더라도 결국은 정치인들에게 면죄부가 될 뿐이다.

보도기준에도 문제가 있다. SK 비자금을 한나라당은 100억원, 민주당은 25억원, 최도술 전 비서관은 11억원을 받았다. 일부 언론은 최도술 비서관의 11억원 수뢰사실을 1면 톱기사 제목으로, 한나라당 100억원은 작은 제목으로 달아놓았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비리도 당연히 수사해야 하고 노 대통령이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11억원을 도드라지게 내세워 100억원을 슬그머니 가려버리고 노 대통령의 비리를 강조하는 행위는 해당 정당의 정략이 될 수는 있어도 언론의 바른 태도는 아니다.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재벌들에 대한 보도태도도 문제가 있다. 일부 언론은 ‘경제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음을 들어 SK를 제외한 다른 재벌들에 대한 조사가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취재의 결과를 바탕으로 끌어낸 결론이라 볼 수 없다. 검찰 수사는 기업을 위축시키거나 혼내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검은 돈을 주고받는 부당한 정경유착을 겨냥한 것이다. 검찰수사가 시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경제악영향론’을 크게 내세우는 보도는 재벌의 압력에 밀린 증거일 것이다.

앞으로의 깨끗한 정치를 위해 필요한 정치개혁 이전에 지난날의 깨끗하지 못한 정치를 청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치권과 재벌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스스로 2002년 대선자금의 실체를 고백해야 한다는 국민여론을 언론은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

/손혁재(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