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사은품 보다는 '보배로운 나라'를
현란한 사은품 보다는 '보배로운 나라'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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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잡지 발행하는 '보배로운 나라' 정형영사장/ 현란한 사은품보다는 정서적 자극 주고파/ 96년 창간후 매월 학교 도서관에 무상배포/ 웹진(www.bo-na.co.kr) 개설 청소년 호응 커// '보배로운 나라를 건설하겠습니다' 광주시 동구 충장로3가 정형영씨(48) 사무실에 들어서면 벽면에 걸린 액자의 문구가 먼저 손님을 반긴다. 그래, 보배로운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정씨는 여성토털패션전문점 (주)보배로운 나라의 대표이사. 그가 하는 일과 '○○나라를 건설한다'는 표현과는 쉽게 닿지 않는다. 그의 첫 마디. "길에서 거지를 만났을 때 불쌍하다 생각하고 보면 돕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 거지를 더럽다고 보면 피하게 되지요." 같은 세상이라도 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한 시각의 차이에서 세상을 보는, 세상을 사는 방법이 서로 달리 표현된다. 대부분 부모들은 자녀에게 의사가 돼라, 변호사가 돼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무엇이 돼라, 되어야 한다는 강요보다 부모 스스로 어떻게 행동하느냐, 어떻게 사느냐가 그 자녀에게 바로 중요한 가르침이 된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나를 지탱한다"며 이를 "진정한 고객사랑"으로 연결시킨다. 그가 하루하루를 엮어가는 철학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보배로운 나라에는 수백 종의 여성 생활용품이 3개층 매장(연건평 250평)을 꽉 메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머리핀에서부터 신발까지 여성에게 소용되는 물건은 빠진 게 없다. 주변에서 "우리 딸은 보배로운 나라에서만 물건을 사겠다고 고집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학생에서부터 대학생까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10∼20대 여성이 주고객이다. 이들과 만나 장사하고, 돈도 벌면서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을 찾았다. 청소년용 월간 교양잡지 '보배로운 나라'를 1996년 1월 창간하여 지금도 매월 5천부를 찍어 매장은 물론 학교, 도서관 등에 무상으로 배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보배로운 나라 웹진(www.bo-na.co.kr)도 개설해 청소년의 호응을 얻고 있다. 매장-오프라인-온라인을 연결하여 본격적인 청소년 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잡지 발행과 웹진 운영은 돈 되는 것이 아니다. 가톨릭 신도인 그는 평소 묵상, 기도하는 생활을 향유하며 육체적인 활동보다 정신, 영혼의 내면세계를 추구한다. 매장을 찾는 청소년들에게 사은품이나 선물을 제공하여 고객으로 유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순간적인 유혹이나 자극에 그친다. 그런데 정신적인 자극은 영원하다. 그 방법으로 잡지 발행을 생각했다. 글로 표현해 낸 사유의 세계는 정신적으로 영원한 자극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의 삶이고, 그가 추구하는 문화다. 기업은 궁극적으로 이윤추구가 목적임을 감추지 않는다. 솔직히 고객사랑은 생존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내 고객이 있기에 돈을 벌었고, 나와 고객 사이에는 판매원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 그래서 그는 직원사랑도 소홀하지 않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직원이 60명이나 된다. 그래서 그에겐 고객 섬김, 직원사랑이 철학이다. 그의 직원사랑 방법은 교육과 연습. 매장 개점 전 매일 오전9시20분부터 10시30분까지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교육하고 연습시킨다. 이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책을 사서 나눠주고 읽혀 독후감 발표하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하는데 1회성 독서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1권의 책을 10번 이상 반복해 읽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 책은 자신이 직접 고른다. 고객 접대의 기본 소양, 실천사항 등을 가르쳐 상품력, 관리력, 판매력, 지도력을 모두 갖춘 직원만들기 연습도 시킨다. 좀 혹독한 훈련 아니냐는 질문에는 "나를 위한 게 아니다.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모두 함께 가자"는 것이라고 말을 맺는다. 실제로 직원들도 흔쾌히 수용하고 있다. 물론 이런 과정에는 나름대로 목표가 있다. 2010년까지 연간 매출 2조원 달성과 전국에 100개의 체인 매장을 갖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목표 달성 또한 자신만의 욕심채우기, 부자되기가 결코 아니다. 앞에서 짚었던 청소년 고객사랑은 말할 나위 없고, 그의 주변에서 보이는 불우이웃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신의 본심이 왜곡 전달된다는 우려에서 돈으로 그 수치 밝히기를 끝내 거부했지만 IMF전에는 후원금 및 기부금이 월평균 500만원에 달했다. 이달부터는 광주시민연대의 국제NGO지원사업 가운데 '캄보디아청소년을 위한 무료교육센터'에 매월 100달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월100달러면 주민 30명이 1개월 먹고산다는 말을 듣고 선뜻 해외 지원까지 나선 것이다. 아무리 번만큼 쓴다고 해도 이런 그의 삶의 내면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성장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아버지가 원수였습니다"라고 다소 험한 표현을 썼다. 그의 고향은 전남 함평군 월야읍. 부친은 월야의 지주였다. 지주의 8남매 중 막내아들로 남부럽지 않게 성장했을텐데…. 부친은 평소 양반 상놈 구별하는 세상은 없어야 한다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안 살림을 그냥 퍼주다시피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부자 살림이라해도 당해내지 못하고 가산 탕진 지경에 이른다. 막내로 태어난 탓에 그가 성장한 당시에는 집안 형편이 학교에 보낼 처지도 못되고 만다. 결국 그는 15살 때 리어카 행상부터 시작해 풍상을 겪으면서 성장, 고학으로 야간 고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그에겐 아버지가 원수로 생각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성공은 물질이 아니다. 아버지의 삶의 방식, 아버지의 꿈을 내가 이루어 드리겠다"는 생각에 미친다. 지금 이를 실현하고 있는 과정인가 보다. '보배로운 나라' 또한 아버지 함자의 한자말을 그가 풀어낸 것이다. "내게는 60명되는 내 식구를 인도할 의무가 있다. 내가 타락하면 그들도 내 본을 따를 것이다." 그래서 타락하지 않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산다. 끊임없이 독서한다. 장사를 잘 하게 된 비결을 독서량이라고 말한다. 20년전 시작한 의류판매가 이제 빌딩을 갖춘 주식회사로 성장했다. "21세기는 문화가 승패를 좌우한다. 과거 물질의 크기로 평가되던 장사꾼도 앞으로는 그가 갖고 있는 문화나 가치로 평가되는 시대가 온다." 성장기 청소년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화다. 이를 보급하고 전파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보배로운 나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자신의 사는 방식을 "봉사도, 사회 환원도 아니다. 살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보배로운 나라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봐 달라"고 주문한다. 보배로운 나라 전화는 (062)224-7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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