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청와대의 지역주의
[오늘과내일]청와대의 지역주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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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화려한 잔치가 끝났다. 오찬장에 초대받지 못한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을 제외하면 모두들 즐거워했다. 나를 포함해서, 모든 언론이 덕담을 쏟아내 놓았다. ‘이제 <문화수도 >가 열리는구나.’ 이 좋은 잔치를 특별히 폄하(貶下)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도 말하지 않기에, 한번 쯤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문화중심도시 광주 보고회>에 참석한 대통령 뒤로 몇몇 청와대 비서관들이 보인다. 문재인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보좌관, 서갑원 정무비서관. 그들은 과연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인가?

민정수석은 공직자 사정과 노동문제, 인사보좌관은 인사업무, 정무1비서관은 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비서들이다. 모두 국가의 막중대사(莫重大事)를 다루는 자리다. 그런 이들이,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대통령 측근이라고 해서, 자기 업무와 상관없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것이다. 정치권의 혼선과 검찰 수사, 노동자 파업 등으로 국민들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이다. 이런 때 대통령 비행기를 얻어 타고, 단풍구경이라도 나선 것인가?

대통령과 참모의 혼선

이날 대통령은 오찬장에서 정찬용 보좌관을 ‘실세’라며 소개했다.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정보좌관이 인사업무 외에 지역현안도 잘 처리 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거기에 힘입은 것일까? 나흘 만에 광주를 다시 찾은 정보좌관은 지역현안에 대해 공공연하게 논의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사보좌관의 범위를 넘어선 처신이다. 국정을 다루는 청와대가 업무분장도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것인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정보좌관은 11일 인사토론회에서 참여정부가 ‘밀실인사’를 ‘시스템 인사’로 바꾸었다고 했다. 그러나 광주에서 보여준 청와대의 행태는 ‘시스템’이 아예 붕괴된 모습이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호남수석’ ‘영남수석’을 두는 것은 어떤가?

노무현 대통령과 참모들의 관계를 보면 뭔가 뒤죽박죽이다. 이번 보고회에서 대통령은 두 가지 점에서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의 핑계를 댔다. 하나는 빨리 오고(문화수도 계획발표를 하고)싶었는데, 장관의 준비가 늦어서 늦게 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통령이 ‘문화수도’라고 하는 데, 장관이 ‘문화중심도시’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전남대에서는, 대통령이 미국에 다녀 온 사이, 참모들이 공직자 윤리규정을 대통령 생각과 다르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런 참모는 물러나게 해야 한다. ‘민주적’이라는 것이 혼선이나 방종을 뜻하지는 않는다. 토론이 자유롭다고 해서 결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정한 일을 참모들이 무시한다면, 누가 대통령의 말을 따르겠는가? 자기 참모들도 듣지 않는 대통령의 말을 국민이 듣겠는가, 야당인들 존중하겠는가?
또, 대통령이 참모의 핑계를 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마땅찮은 모습이다. 참모의 잘못도 리더의 책임인 것이다.

너무나 정치적인 대통령

이번 보고회에서 대통령은 ‘문화중심도시’라는 용어와 ‘문화수도’라는 용어를 혼용(混用)했다. 그리고 광주에서는 ‘문화수도’라고 쓰도록 부추겼다.

사실 ‘문화수도’만큼 선동적인 정치적 수사가 흔치 않다. 문제는 광주가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 ‘문화수도’를, 법적.행정적인 의미로 이해했다는 데 있다. 말썽이 되자 대통령은 5.18 전남대 강연에서 ‘문화중심도시’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것을 지난 7일 보고회에서 다시 한 번 뒤집은 것이다. 개념이 갈리면 생각이 갈리고, 생각이 갈리면 행동이 갈린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다시 ‘문화관광부 이전’같은 소모적인 논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인간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는 법, 대통령은 너무 정치적이었다. 제주에서 강금실장관을 칭찬한 것도, 광주에서 정찬용보좌관을 치켜세운 것도, 문화중심도시로 애써 정리된 용어를 다시 ‘문화수도’로 흩뜨려 놓은 것도, 지역민심을 얻으려는 ‘대통령의 정캄일 것이다.
이런 식의 얄팍한 정치로, 당장 지역 민심을 조금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노짱’을 뽑으면서 우리가 기대했던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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