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대학서열, 없애야 교육이 선다
[투데이오늘]대학서열, 없애야 교육이 선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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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수능시험이 끝난 후 수험생을 둔 집안 풍경이 가관이다. 입시지옥의 긴 터널을 벗어난 해방감은 잠시일 뿐 대학 서열과 학벌사회가 수험생들 앞에 버티고 있다. 이때 희비가 엇갈린다는 말로 얼버무리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다. 모든 수험생들은 1점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애를 썼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언제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가 있을 뿐이다. 언제나 기쁜 쪽은 극소수이고 슬픈 쪽이 압도적 다수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총체적 모순이라고 부를 만큼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비단 교육학자가 아니더라도 그 모순의 결절점은 대학입시제도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역대 정부가 대학입시제도 개선 정책에 골몰해 온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입시의 방법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대학본고사를 폐지하고 수능시험제도를 도입했으나, 일부에 그쳤던 학원 및 과외의 소비자는 더욱 확산되었고, 공교육의 공동화를 저지하기 위해 고교내신제도를 도입했으나 사교육을 완화시키기는커녕 내신과외를 새롭게 등장시켰다.

수험생앞엔 이젠 서열과 학벌의 벽

대학입시의 본질은 강고한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무한경쟁에 있다. 모든 대학이 고착화된 서열체제속에 있는 한 학생은 한 단계라도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입학하려 하기 때문에 입시위주 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까지 입시개혁이 효과를 거둘 수 없었던 것은 대학서열체제를 그대로 둔 채 경쟁의 방법만 바꾸려 했기 때문이었다. 일렬로 된 대학서열체제에서 한 단계라도 위 서열의 대학에 모든 학생들이 입학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무한경쟁이 없어지겠는가? 대학서열체제가 해체되지 않고서는 대학입시제도로 표현되는 교육의 총체적 모순이 해결될 리 만무하다.

‘대학서열체제’를 해소한다는 것은 모든 대학의 서열을 없애고 평준화하자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이다. 모든 대학이 평준화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여러 대학들은 다양하게 특성화되고 서로 경쟁할 수 있을 때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의 경쟁력도 올라갈 것이다.

‘대학서열체제’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 대학입시제도를 통해 신입생의 수준- 내신성적과 수능점수로 표현된다-에 의해 서울대, 연고대, 수도권 소재 대학, 지방 국립대학, 지방 사립대학, 전문대학 순으로 대학의 서열이 고착된 것을 말한다.

이 대학서열체제 속에서는 학생들은 단 한번의 대학입시로 인생의 등급이 매겨진다. 이 때문에 중등학교는 오직 대학입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전인교육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된지 오래이다. 교사들은 학원이나 과외공부하러 내빼는 학생들을 붙잡아 두기가 민망하다. 대학입시의 관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입학할 때의 서열에 따른 졸업장을 보장받는다.

대학에서 학과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간판이 보장된 명문대 학생들이 고시에 매달리는 것을 탓할 수도 없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좋은’ 대학에 취직만 되면 열심히 연구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좋은’ 대학교수로 행세할 수 있다. 대학서열체제 하에서는 대학들간에 진정한 경쟁이 일어나기 힘들며, 교육의 경쟁력 또한 올라갈 수 없다.

범국민적 대학 서열체제 폐지운동을

대학서열체제는 비단 교육문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학벌주의는 국민들의 가슴속에 빗나간 우월감과 절망적인 열등감을 재생산하고 있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동원한 점수 따기 경쟁은 계급재생산의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의 서열화는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서민들의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대다수 부모들의 초과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근본적인 해결방안 모색과 결단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발벗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10월 11일 ‘WTO 교육개방 저지와 교육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가 출범하여 대학서열철폐 운동에 나섰다고 한다. 교육의 총체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교사, 교수,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이 주체로 나서야 할 때이다.

/안진 (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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