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슬픈 한글날
[기고]슬픈 한글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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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만[곡성 겸면초교 교장]
해방이후 이어진 한글 수난의 역사
반민족적 한자병행론자들의 주장


몇 해 전에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리더니 올해에는 <한자교육진흥법안 >을 불쑥 국회에 상정했다. 공문에서 한자가 사라지고 교과서에서 없어져 한글로만 교육을 받은 한글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룬지 벌써 몇 해인데 느닷없이 이 무슨 해괴한 일인지 모르겠다.

지난 10여년 전에 UNESCO에서 범세계적인 문맹퇴치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연말에 문맹퇴치 공로자에게 준 상 이름이 <세종대왕 상>이었으며 시상일도 10월 9일 한글날이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인가. 한글과 한자 병행론자들이 벌인 이 번의 행태를 일부 언론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의 농간으로 보며 또한 한자교육학원과 한자교육지 판매상들의 로비로 짐작하고 있다.

한글전용법이 법률 제 6호로 1948년 제헌국회에서 만들어져 그 해 10월 9일 한글날에 공포된 뒤에도 한글의 수난은 이어져왔으나, 박정희 정권에서 공문서 한글 전용 등 과감한 한글정책으로 이제야 한글교육의 기틀이 잡혀간다 했더니,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 공동대표며 국회의원인 분이 얼렁뚱땅 발의를 하고 한나라당 국회의원 85명의 이름으로 공청회 한 번 거침없이 상정을 했다. 또 한차례의 한글날을 보내면서 심사가 매우 착잡하나, 그들이 주장하는 한자교육론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 공휴일이 아니라 평일인 10월 9일 한글날
첫째, 한자문화권이라는 허무맹랑한 논리다. 우리가 문자가 없었을 때 한자를 빌어 썼으므로 문화 유산이 한자로 남아 있어 한자를 모르고는 문화 유산을 정리할 수 없다. 그렇다고 국민 모두가 한자를 배워 문화 유산을 읽자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은 그리 하고 일반 국민들에게는 번역서를 읽히면 된다.

둘째, 20세기 초 중국의 대학자 루쉰(노신)도 한자의 폐단을 <한자가 망하든지 중국이 망하든 > 해야 한다며 한자 망국론을 말했는데 하물며 우리랴. 중국의 문맹률이 높은 건 한자 때문이며 3000자를 배우는 중국 학생들이 배우면서 잊는 망각률이 30%, 졸업 후 50%, 살아가면서 나머지 10%를 잊어 결국 한자교육은 10% 내외의 성과라 한다. 항차 한자를 국어로 사용하는 종주국에서 조차 한자 폐지론이 나와 간자체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한글이라는 세계 최고의 문자를 가진 한국이 한자를 배워야 한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셋째, 한자를 가르치면 효행, 예절교육이 저절로 된다? 참으로 허무맹랑한 소리다. 사자소학이나 논어 몇 줄 읽어서 사회가 정화된다면 한자를 국어로 사용하는 중국의 범죄율은 세계 최소이던가.

넷째, 지구촌시대에 외교적 또는 국제적 의사 소통으로 필요하다는 발상도 도무지 앞뒤도 모르는 소치다. 의사는 문자가 아니라 말로 해야 하니 한자가 아니라 중국어를 배워야 하고 설령 한자가 쓰임새가 있다 하더라도 한자 문화권이라는 일본은 약자화며 한국은 정자화 그리고 중국은 간자체를 개발하여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가 중국에서 일본에서 통용되리라는 생각은 애초에 틀린 생각이다. 년 전 중국 여행에서 화장실을 찾으려고 화장실, 측간, 칙간, 변소, 해우소 등 다 동원했으나 묻는 사람마다 고개를 저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들의 변소는 칙소였다.

다섯째, 그 외에 사소한 문제를 열거하면서 한자교육을 주장하는 분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지난 개화 초기에 우리는 영어줄이나 외는 사람을 지식인으로 대접했다. 따라서 조선시대는 한자라야 지식인 대접을 받고 양반 행세를 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네 학자님들은 외국 서적을 베껴 들어오면서 일부러 어려운 한자 용어를 만들어낸다. 법률 용어, 기술자들이 사용하는 일본어, 의사들이 상용하는 꼬부랑 글씨가 다 그 범주다. 어렵게 만들어 아는 체 해야 인정을 받는 시대는 갔다. 하기야 최만리 같은 사람은 세종대왕시대에도 한자처럼 문자가 어려워야 어리석은 백성을 통치하기 쉽다며 한글 반포를 반대했으니.

여섯째, 국어의 80%가 한자어이기 때문에 한자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맞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국어는 거의 대부분이 한자어다. 그러나 한글로 쓴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신문은 한글 전용이 된지 오래며 모든 인쇄매체가 한글로만 쓰였어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한자어 투성이인 문자정책을 다듬고 국어순화운동을 재개하여 북한, 프랑스, 도이치처럼 모국어 사랑을 계획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한자를 가르치는 정열로.

일곱째, 순수 한글의 부활이다. 내 고향은 전남 남해안 <운교雲橋 >인데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어른들은 <구름다리 >로 불렀다. 최현배 선생님처럼 <비행기>를 <날틀 >이라고 부르잔 말은 아니나 이제 국제어잡탕이 되어버린 한글이 토씨만 남기 전에 순수 우리말을 찾아 복원해야 한다.

"모국어 죽으면 민족도 죽는다"

여덟째, 한글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큰 문화유산이고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만큼 세계적인 자산이며 자랑스러운 모국어다. 예를 들어 우리 말로 <야 >라는 글자 표현이 영어에서는 를 첨가해야 하는데 비해 한글에서는 <아 >에 점 하나를 첨가하여 바로 <야 >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어떤 재미교포 수학자는 박사논문에서 한글 문자 형식의 선을 점으로 구성하여 암호화하면 슈퍼컴퓨터가 1천년을 풀어도 해독이 안 된다고 수학적 과학적 연구 발표를 했다.

아홉째, 아울러 사투리를 살려야 한다. 사투리는 언어의 문제이기 이전에 지역특성적 정서의 문제다. 감칠맛 있는 사투리를 표준어정책이랍시고 말살하는 무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마치 장승과 솟대를 미신이라고 내쳤던 어리석음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러한 한글이 죽어가고 있다. 영어, 한자, 일어에다가 요즘에는 컴퓨터 언어까지 한글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모국어가 죽으면 민족도 같이 말살된다는 일이 어찌 국어학자들의 몫이란 말인가.


/ 이천만[곡성 겸면초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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