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광주는 정녕 자정능력을 잃었는가
[오늘과내일]광주는 정녕 자정능력을 잃었는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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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지난 해 제주도에 갈 기회가 있었다. 직업 탓일까. 푸른 바다보다, 깨끗하게 뻗은 도로가 더 먼저 들어 왔다.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동안, 광주에서는 그 흔한 도로보수작업장 하나 볼 수 없었다. 같은 나라 같은 땅, 같은 업자가 만들고 같은 공무원이 감독할 터인데, 왜 제주는 광주와 이렇게 다른가.

그 이유의 일단이 지난 2일 광주시청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광주시가 그동안 부실공사를 한 업체를 한 곳도 처벌하지 않은 것이다. 부실공사가 적발돼도 처벌받지 않으니 부실공사의 천국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과 내일>은 지난 해 말부터 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러나 ‘광주’는 잘못을 바로 잡지 못했다. 결국 국정감사장에서 터져 전국적인 망신을 당했다. 사람 사는 세상, 남이 안보는 곳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조차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개되고 난 뒤에도 바로 잡히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다. 지금 광주가 그렇다. 공무원들이 터무니없는 논리로 자신들의 과오를 변명해도 통하는 곳, 이것이 2003년 오늘, 광주의 자화상이다.

부실과 변명이 통하는 광주의 자화상

광주시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다들 공무원들에게 휘둘릴 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영문 모른 채 끌려 들어간 건설분쟁조정위원회는 공무원들에게 모르고 당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광주시의 고문변호사라는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들인가? 변호사라면 누구보다 ‘법의 가캄를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일부는 잘못된 해석을 내놓아, 이 일련의 과정이 꼬이게 만든 빌미를 제공했다. 모르고 한 일이면 법률가로서 자질이 없는 것이고, 알고 저지른 일이면 직업윤리를 저버린 것이다.

광주시의회는 어떤가? 부실공사, 부실행정을 지적하는 일은 민주노동당 소속 한 여성의원에게 맡겨졌다. 다른 의원들은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광주시가 지하철공사기간을 편법으로 연장해 주고 지체상금 250억 원을 눈감아 주었을 때, 공무원들을 집중 추궁하던 시의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회의를 정회 한 뒤 15분 만에 돌아 와, 갑자기 질의를 중단했다. 도대체 쉬는 시간 15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뭔가 더 알아 볼 것이 있다는 게 그 시의원의 질문 중단 사유였지만, 그로부터 9개월, 아직까지 질문을 다시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 결과, 광주지하철건설본부는 한차례 더 공사기간 연장을 해주었고, 그렇게 눈감아 준 지체상금은 280억 원으로 늘었다. 학생운동을 했다는 소위 386 세대 시의원이 보인 행태다. 한 때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의 이런 행태를 보노라면 ‘정말 광주는 자정능력이 있나’ 라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온다.

광주신세계백화점 1층은 시민을 위한 도시계획시설이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상품 전문판매장으로 변했다. 도시계획시설에 외국상품 전문판매점이 들어 선 것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할 것이다. 전국의 도시계획 관계자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광주에 사는 나는, 이곳이 참 부끄럽다.

광주시민협의 대표를 만나 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지 물었다. 그리고 예상 밖의 기상천외한 답변을 들었다.
“불법인 줄 안다. 그러나 신세계백화점을 공격하면, 다른 백화점이 덕을 보게 된다.”

대답이 이쯤이면, 대화를 계속하는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신세계백화점이 현지 법인이기 때문에 공격하면 안 된다는 게 시민단체 대표의 논리였다. 광주에 외지기업보다 현지기업이 훨씬 많을 터, 이 논리대로라면 광주는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이것이 지역사랑이라면 빗나가도 한참은 빗나간 사랑이다.

그들이 그렇게 멈칫거리고 있는 동안, 광주의 도로는 누더기가 되고, 금방 지은 건물은 비가 새고, 시민공간은 기업의 판매장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시민들은 부조리를 충당하기 위해 세금이란 이름으로 호주머니를 더 털어야 한다.

목청높이기앞서 '생활속의 정의' 세우라

가끔 세상일에 목청 높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예전에 눈감아 온 일들이 떠올라 시니컬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남은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이렇게 외친다.

“그대, 광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이 땅에 정의를 세우라. 정치개혁이니 통일이니 목청 높이기 이전에, 지금 이곳에서 ‘생활 속의 정의’를 세우라.”
그것이 광주를 위한 참사랑일 것이다.

/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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