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화사한 색감으로 그려낸 우아한 에로티즘
[스캔들]-화사한 색감으로 그려낸 우아한 에로티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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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영화칼럼니스트]

   
▲ 스캔들
이 영화는 상당한 대박이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관객을 음모와 추리로 영화로 빨아들이면서, 끊임없는 눈요기와 관음증으로 흥미를 돋운다. 잠깐씩 그리 어색하지 않은 풋웃음을 자아내는 양념도 곁들여져 있다. 게다가 고급스런 음식을 정갈하게 대접해주는 것 같은 흐뭇한 우아함도 준다. 그러니 상당한 대중적 재미에 상업적 고상함까지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우연히 인터넷에서 만났다. [정사]에서 이미숙의 지긋이 누르는 연기로 흔치 않은 불륜을 깔끔하게 다듬어 놓더니, 이번엔 귀족적인 퇴폐미를 화사하고 우아한 에로티즘으로 그려냈다. 정성들인 맛깔스런 섹스를 즐겼다.

그걸 화사하고 우아한 색감과 조형으로 돋을새김 해내는 갖은 풍치와 소품은 정성이 깊게 배어있다. 정갈스런 색채미와 단아한 조형미를 한껏 뽐내었다. 진한 갈색의 서양 바로크 무게감이 흐르는 첼로의 음색에 청아하고 깔끔한 양금소리를 곁들여 우리 전통음조을 살려내는 음악적 내공도 결코 범상치 않다. 퇴폐적 사치스러움이라고 매도하기에는 높은 품격을 갖추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숙성된 만남 반가워
꾸밈이 덜하고 좀 더 간결하고 단정한 영상 좋아
껍데기는 조선시대-알맹이는 서양의 음모적 심리극


미술과 음악이 영상에 깊이 어우러졌다. [와호장룡]의 배경음악이 첼로로 중국 전통음조를 살려내는 게 참 신선했는데, 혹시 거기에서 힌트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앵그르 누드화와 신윤복 춘화를 함께 섞어서 표절한 첫 장면은 영화로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이 산뜻하게 만났다. 요즘 들어 이렇게 동양과 서양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시도가 많이 숙성된 것 같아 반갑다.

임권택 감독의 고정 파트너 정일성 촬영감독은 우리나라 풍물을 처연하게 아름답도록 보이려고 작심해서 영상을 잡아낸다. 그지없이 아름답지만 그렇게 작심하고 달려드는 게 항상 눈에 거슬렸다.

이 영화에서도 그게 있다. 그러나 꾸밈이 덜하고 좀더 간결하고 단정하다. 아직 정일성님의 역량을 따라잡지는 못한 것 같지만, 머지않아 그를 한 걸음 앞서는 재능을 보여줄 수 도 있겠다는 기대가 들었다. 좋은 일이다.

이미숙은 연기의 달인이다. 이제는 그녀가 어떤 역할을 맡든 그녀가 출연한다는 자체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영화 속의 그녀가 나를 볼 리 없겠지만, 그녀를 대면하는 나는 오금이 저려온다. 이미숙만한 배우가 누가 또 있을까? 전도연도 항상 보통내기가 아니다.

배용준은 연기를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카사노바처럼 건들거리는 그의 표정이 너무 상투적이었다. 야외 장면은 관광홍보 영화처럼 아름다운 풍치만 찾아서 모으고 모아서 짜 맞춘 어색함이 있었다. 시나리오가 허술하고 틈틈이 좀더 다듬었으면 좋겠다는 장면이 있다. 마지막 5분은 없는 게 더 나았겠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를 소재로 하였지만 조선시대의 본 모습을 잘못 그리고 있다. 조선시대의 기본 미감은 화려미가 아니라 소박미이다. 그 소박미가 어찌나 지극한지, 지금 우리 눈에는 먼지 펄펄 나게 초라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용의 눈물] [명성황후] [여인천하] [장희빈]에서 조선시대는, 오늘날의 새로운 해석이라기보다는 이미 잘못된 색안경으로 그려지는 일이 허다하다. TV나 영화를 즐기면서 그런 걸 긴장해서 가려낼 것까진 없지만, 그게 요즘 사람들 입맛에 맞추는 장삿속에서 비롯되었다는 건 알고 먹어야겠다.

이 영화는 그것도 아니다. 이 영화의 껍데기는 조선시대이지만 알맹이는 서양의 음모적 심리극이다. 선전물에 이재용 감독의 이런 말이 있었다. “어느 날 바로크음악을 듣다가 문득 서양 클래식음악이 한국 사극의 배경으로 나오면 어떤 충돌이 생길지 궁금해졌다.”

그렇다! 겉옷은 조선시대 풍물이지만, 속옷은 음모적 심리극이고, 알몸은 서양 절대왕정 프랑스 귀족의 퇴폐적 향락이다. 그러나 바로크적인 장중이라기보다는 로코코적인 퇴폐이다. 이걸로 조선시대의 상류층 생활을 엿보았다고 생각하면 아주 잘못이다. 그냥 야릇한 재미와 깔깔한 미감으로만 이 영화를 보라! 빨리 대박의 대열에 줄을 서서 화제꺼리에 소외당하지 말라!

/김영주(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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