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호남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선택
<주장> 호남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선택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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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정
   




호남은 이제 선택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어렵게 이룩해온 민주화를 이제 다시 한 단계 크게 도약시킬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지역패권에 안주해 민주화를 불철저한 상태로 머물게 할 것인가?



1980년 '광주항쟁'은 민주화 운동의 분기점이다. 그로부터 20여년 동안 광주는 민주화 운동의 성지(聖地)였다. 호남 민중은 민주화 과정 내내 선봉에 서왔고,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월등히 높은 정치의식을 자랑할 만한 호남 민중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정치는 달랐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노무현 정권 또한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떤 상황인가? 차마 믿고 싶지 않은 기이한 방향으로 한국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검토해야 할 많은 요소들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 치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글에서는, 급박한 상황을 고려하여 우선, 그 가운데 몇 가지를 골라 생산적 논의에 다소라도 보탤까 한다.

내년 5월이면 광주항쟁 25년째, 무려 4반세기를 경과한다. 내년 총선은 그 한 달 전이다. 그 총선을 반년 남짓 남기고, 며칠 전 호남 사람이 자식처럼 아끼고 키워온 민주당이 갈라졌다. 지금 이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렵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는데, 임박한 전투를 앞두고 적전(敵前) 분열함으로써 승리할 가망이 없어졌다고.

적전 분열이 불리한 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된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표면에서가 아니라 보다 깊은 곳에 분열을 불가피하게 한 연원(淵源)이 있다. 이를 외면하고, 심지어 왜곡되어온 결과 오늘의 분열을 초래했고 조장했다. 지난 총선과 그 공천을 냉정히 접근해 봄으로써 문제를 살펴보자.

2000년을 맞이해 세계가 온통 새천년이라고 요란했던, 그 해 4월 16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렀다. 그 직후부터 2003년 9월 중순까지 호남 국회의원은 100%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다. 이 겉모양의 화려함과는 달리, 호남의 국회의원들 가운데 새천년에 걸맞는 정치인은 보기 드물었다.

젊은 의원이 없다.

60년대 출생자는 호남에서 단 한사람도 없다. 반면에, 한나라당 서울지역에서 60년대 출생자는 4명이나 된다. 또, 같은 민주당이라도 서울지역의 경우 2명이 있다. 이런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당에선 호남에서의 정치신인 등장을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51년 이후 출생자라도 호남 민주당의원이 많은가? 아니다. 겨우 4명 뿐이어서 전남 52년생 1인, 전북 53년생 2인, 광주 56년생 1인이다. 게다가, 전북 1인은 무소속으로 당선된 경우이니, 겨우 3명을 공천한 꼴이다.
이 셋 가운데서도 또다른 전북 1인은 이미 의원이었으니 새로 공천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전북에서는 51년 이후 출생자가 단 한사람도 새로 등장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의미있는 공천은 단 한사람 전남 1인으로 압축된다.
이것이 지난 총선 때, 민주당 공천의 실상이다.

민주화 운동 출신자를 배제했다.

앞에서 거론했던 '젊은 의원이 없다'는 논거들은 모두 이 문제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도 호남에서 유력한 정치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투철하고 헌신적이며 사심없이 싸웠던 운동가일수록 철저히 배제당했다.

민주당 서울지역 의원들의 상당수는 민주화운동 출신자들이다. 60년대, 50년대, 40년대 출생자들이 즐비하다. 최소 10명은 운동권 출신이다. 도대체 왜 이런 격차가 일어났겠는가? 또, 60년대 출생자가 서울에서는 공천을 받기도 했고, 다수의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서울에서 중견정치인으로 커가고 있다. 그러나, 호남에는 없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이렇게 결말지어졌고, 철저히 자신의 경쟁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하도록 했다. 지난 총선에 국한된 것만도 아니다. 무려 20년이 넘도록 호남은 DJ 이외에는 키워내지 못했다. 민주화 운동의 성지가 민주화 운동가의 무덤이었다.
이런 결과, 쓸만한 인물들은 호남을 떠났거나 정치를 관망했다. 이런 식이었으니 신인도, 중견도 없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호남을 이끌 만한 걸출한 정치인, 지도자 감이 지금 있을 리 없다. 호남을 벗어나 전국으로 시야를 넓혀도 사태는 마찬가지다. 호남출신의 중견 정치인은 전국적 지도자로서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거나, 다른 지역 출신에 비한다면 함량 미달로 보인다.

또, 젊은 정치인 가운데서도 전국적 차원에서 큰 지도자로 성장할 만한 그릇은, 극소수가 눈에 띄지만 이들의 처지는 곤혹스럽다. 이들이 만약 내년 총선의 기회마저 놓친다면, 호남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노무현 씨를 호남인의 결단으로 대통령 후보로,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전례(前例)가 상당기간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호남과 호남인은 눈을 크게 뜨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향해 뛰는 인물을 키워야 한다.

호남 정치의 미래를 감당할 만한 그릇, 큰 지도자가 될 만한 신인이 호남보다 더 절실히 요구받는 지역은 없다. DJ의 후광도 없는 지금, 호남에서는 낡은 정치가 활개치는 '싸구려 장사꾼 정치'를 하고 있다. DJ에 대한 충성을 잣대로 들이대지 말고, 큰 그릇이 될 만한 인물을 키워야 한다.

통합신당과 민주당은 신구(新舊)세력의 대립일 뿐

위에서 살핀 경향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특히 전남이 가장 심하고, 광주 역시 심하다. 그나마 전북이 나은 편이다. 그리고, 이번 분당 과정과 결과에서 이 편차가 그대로 투영되었다. 우연일 리 없다.
통합신당에 전남 1인, 광주 2인을 제외하고 전남.광주 의원들 대다수인 16명이 민주당에 남았다. 전북은 반대로 신당에 6인, 구당에 4명으로 신당이 우세하다.

호남의 경우, 386세대만이 아니라 지난 민주화 운동 전(全)기간에 걸친 민주화 운동가들이 정치신인이다. 이 풍부한 인력 풀(Pool)에서 옥석(玉石)을 가려 뽑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잘 키워간다면, 그 동안 가장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을 배출하고 축적해온 호남이야말로, 가장 우수한 정치지도자들이 나올 것이다. 이들은 단지 호남지역의 새 정치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전국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

호남은 이제 선택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어렵게 이룩해온 민주화를 이제 다시 한 단계 크게 도약시킬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지역패권에 안주해 민주화를 불철저한 상태로 머물게 할 것인가? 호남이 또다시 '새로운 민주화 운동의 발원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시대의 조류로부터 밀려나 또다시 한국정치의 변방으로 몰락하고 말 것인가?

호남은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다. 호남 민중은, 그동안 위기 때마다 온나라를 놀라게 하는 선택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듯이, '새로운 민주화 도약기'를 열어제칠 것이라 생각한다. <디지털 말(www.digitalmal.com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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