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여성의 복수
[투데이오늘]여성의 복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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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나라 여자 1명이 낳는 평균 출생아수인 합계출산률이 2000년의 1.47명에서 2001년에는 1.30명으로, 다시 2002년에는 1.27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단순재생산도 안되는 셈이다. 삼사십년전의 인구폭발에 대한 우려와 반강제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넘어 위기의식마저 든다. 아직은 노년인구의 증가로 인해 전체 인구의 감소로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머지않아 인구 감소가 예정되어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가부장적 가족제도로 인해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결혼한 여성들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것은 사회 전반의 가부장적 지배구조에 대한 '여성의 복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명시적인 이유는 아이를 키우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정이 좀 나은 경우는 아이를 잘 키우기가 힘들다고 한다. 아이 양육의 환경이 출산율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자녀양육 사회적 환경 '제자리'

1960년대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는 두 방향에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 하나는 저렴한 노동력을 끌어내려는 자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욕구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둘이 결합되어 이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있다. 아이들도 자신들을 보살피며 집에만 있는 엄마보다 사회활동을 하는 엄마를 더 자랑스럽게 느낀다고 할 정도이다.

여성의 이러한 사회적 진출에 비해 자녀양육의 사회적 환경은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양육의 책임이 가족에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엄마'의 책임이라는 인식은 아직 사회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있다. '수퍼우먼'이라고 불리는 유능한 여성은 파출부에게 도움을 받거나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 의지해서라도 그 책임을 다하는 여성을 말한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이 수퍼우먼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집에서 아이나 제대로 키우고 싶어도 가족의 생활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나가야 하는 맞벌이 여성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가족 내에서 남성이 양육의 부담을 나누는 것이 문제를 푸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더디기는 하지만 남성들의 가사노동 거들기가 늘어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힘들다. 남성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양육의 부담을 나누어 지면서도 사회활동을 하는 남성을 '수퍼맨'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수퍼우먼이 그렇듯이 수퍼맨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가족내에서의 자녀양육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할 때가 되었다. 사회학에서는 자녀 양육이 가족의 본질적인 기능의 하나라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과 같이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는 산업사회에서는 가족내에서의 자녀 양육은 여성에게나 남성에게나 점점 더 버거운 일이 되고 있다.

취학연령이 낮아지고 유치원에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고 유아원이나 탁아소가 아무렇지도 않게 된 것은 그러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한때 탁아소에 맡겨지는 북한 아이들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유아원, 탁아소를 학교처럼 사회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현실적인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여성' 돈벌이취급하는 자본 제어해야

게다가 가족은 사회계층간 격차를 확대 재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메카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자 가족과 가난한 가족의 양육환경의 차이는 좁혀지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 부자 가족은 과잉보호로 사람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마마보이'를 양산해 내고 있는 반면에, 가난한 가족은 어쩔 수 없는 방치로 상당수의 '문제아'를 사회로 방출하고 있다.

더 이상 자녀 양육을 여성에게만, 가족에게만 책임지워서는 안 된다. 자녀 양육을 돈벌이를 목표로 하는 보육시설에 맡겨놓아서도 안된다. 자녀 양육은 사회화되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의 양육이 사회화되면 '마마보이'도 사람구실을 하는 아이로 자랄테고, 탁아소를 왕래하는 아이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클 것이다.

이제 '여성의 복수'에 대해 (남성 지배의) 사회는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하는 여성을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는 자본의 힘을 제어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당장 해야 할 일도 많이 있다. 우선 기업은 돈벌이를 위해 여성들을 노동력으로 끌어낸 만큼 출산, 육아휴가나 탁아소 운영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유치원을 의무교육 안으로 끌어들이고, 사회복지 예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켜 유아원과 탁아소를 사회화하는 방안을 하루 빨리 강구해야 한다.

아이들은 사회의 미래이며 희망이다.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복수하려는 여성들을 외면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안진(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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