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이 들어선 지, 우선 고개부터 끄덕이고 위기를 모면해 보자는 건지, 아는 체해서 폼 잡아보자는 건지, 남들 똥 씹는 심정을 즐기는 건지, 어떤 열등감을 커버하려는 작전인지, …. 그런 영화를 보고, “이 장면이 어째서 이러하고 저 장면이 어째서 저러하며, 이렇게 볼 때 이런 점이 있고 저렇게 볼 때 저런 점이 있다”는 진지함이 없다. 모르겠으면 공부를 하고 지도를 받아야 하는데, 공부할 책이나 강의는 뭔 소린지 알 수 없는 암호뿐이다.
고통스런 가시밭길이요, 지루하고 지루한 ‘다람쥐 쳇바퀴’이다.
그러니 씨네필이 많이 있을 리 없고 모아질 리도 없다. 소화불량과 지적 허영에 뒤틀린 매니아의 담배 연기만 자욱하다. 부활하라니! 부활할 건덕지가 있어야 일어서든지 자빠지든지 할 게 아닌가! 그 잘난 즈그들끼리 노는 마스터베이션이다.
“시대에 외롭고 이해 받지 못하는 예술갚라고 위로하든 말든, 그건 즈그들 맴이다. 현대미술로 죽을 쑤는 광주 비엔날레의 수렁을 또 하나 파고 있다. 광주는 하는 일마다 이러니, 한숨만 절로 나온다. 광주는 왜 그럴까?
광주영화제에 기대하는 바는 별로 없지만, 영화를 즐기다 보니 절로 눈길이 가고, 혹시나 가슴 벅찬 영화가 숨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제1회 제2회에서 보고 또 보았던 그런 영화였다.
[오타르가 떠난 후]가 그나마 조금 좋았다. 누가 그렇게 빗자루로 싹싹 쓸어 모아오는지는 모르지만, 즈그들끼리 마스터베이션하면서 닦아 놓은 길바닥에서 마구잡이로 쓸어와 “아나! 예술 처먹어라!”며 내던져주는 모양새가 기분 나쁘다. 서양의 눈으로 보면 예술성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그걸 예술로 소화하기에 앞서서 체질이 달라 배탈이 먼저 난다.
예술적 감흥은 배탈나고 재미는 하나도 없다. 이런 걸 “작품성이 있다”며 예술이라는 이름을 걸고 은근하게 강요하고 협박한다. 그게 먹물로 부어대는 물고문인지라 숨이 컥컥 막힌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먹물고문의 질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김영주[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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