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바람난 가족과 함께 무너져 가는 ‘먹물가족’
[바람난 가족]-바람난 가족과 함께 무너져 가는 ‘먹물가족’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바람난 가족
원래는 볼 생각이 별로 없었던 영화였다. 맨 처음엔 포스터로 만났다. 문소리의 홀랑 벗은 몸과 그 자세가, 벌건 대낮에 “나~∼까질 대로까진 여자야! 놀고 싶은 놈은 x들어 봐!”라고 말 건네는 것 같아 낯뜨거웠다. 천박했다. 비스듬히 놓인 사각형 검은 가리개가 천박함이 끝까지 가는 걸 겨우 막아섰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모두 알게 되는 것이 섹스이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싸가지 하나도 없는 동네에서 그 형 그 친구에게 귀동냥으로 들었고, 까까머리 시절에 좀 일찍 '까진' 놈들이 훔쳐보는 싸구려 소설과 주간지 성인만화에서 눈 동냥으로 보았고, 여성중앙 여원 주부생활에 실린 부록과 몰래 코너를 슬쩍 시간동냥해서 발그레해졌다.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같은 옐로페이퍼는 말할 것도 없고, 남들은 폼 나는 예술이라지만 발가벗은 글과 그림과 사진은 나에겐 모두 예술이 아니라 포르노였다. 나에게 섹스를 가르쳐 준 최고 스승은 에로영화이다. 그래서 폭발하는 젊음을 에로영화 사냥으로 풀어냈다. 돌이켜보면, 젊은 청춘은 점수기계를 향한 고문교육과 건강한 욕망의 음습한 배설말고는 기억나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개 같은 청춘’이었다.

그러니 [색즉시공]이나 [몽정기]를 보면, 조금은 유치하고 과장이 지나치다 싶으면서도, 끝내는 그 때 우리들의 그 일들을 그대로 보는 듯해서, 낄낄대며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철없던 그 시절을 향한 짙은 그리움이 배어있다. ‘가난에 묻힌 천박함’을 그리 혐오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 질펀한 천박함에 진주알처럼 박힌 소박함이 숨어있기에, 그걸 만나는 정겨움도 상당하다. 때론 그 천박함에서 눈물겹도록 울컥한 설움이 복받쳐 오르면서 가슴이 멍멍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술집여자를 맘껏 함부로 다루지 못한다. 느물거리는 욕망 사이로 갑자기 서글픈 슬픔으로 밀려와 기분이 엿 되어 버리는 일도 많다.

소박함도 정겨움도 보이지않는 천박함에
시나리오 에로틱 화면까지 온통 잔재주뿐


[바람난 가족]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보고 나서 기분이 떨떠름했는데, 이번 [바람난 가족]을 보고 나서는 기분 잡쳐버렸다. 선전물에 “항상 주류사회의 가치를 뒤집는 도발적이고 대담한 작품들로 관객과 평단의 논란을 일으켰던 문제작 감독”이라는 글귀가 역겹다.

선전물은 온통 관음증을 자극하여 “돈 좀 벌어 보자!”는 술수로 넘쳤다. 그건 그들이 작심하고 만든 선동이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한겨레신문 도 한 면 전체를 마당 삼아 덩달아 춤추었고, 문소리가 진행하는 교육방송의 '시네마 천국 '도 3주에 걸쳐 자리를 바꿔 앉으며 거들고 나섰다.

한겨레신문이나 씨네21의 영화이야기에 문제점이 많다. 시네마 천국의 영화이야기는 제법 괜찮기는 하지만,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야 어떻든, 그래도 얼마쯤의 ‘양심 있는 지성’을 추구하는 매체마저 이런 짜고 치는 화투판 ‘야바위놀음’에 함께 놀아나면, 이 땅이 통째로 지겨워진다.

지성과 예술을 가장한 야비한 놀이판이 보여주는 이런 천박함은 “가난에 묻힌 천박함”보다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진짜 저질’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에로영화는 [애마부인]이나 [보카치오69] [젖소부인]처럼 시궁창에 빠진 싸구려 에로영화보다 훨씬 나쁘다.

이 영화는 대중의 약점을 잡아 어줍잖은 사회의식으로 포장하여, 감독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면서, 돈도 벌어보려는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시나리오 대사 그리고 에로틱 화면까지 온통 잔재주뿐이다. 문소리가 그 잔재주에 휩쓸려드는 게, [오아시스]에서 보여준 고생스런 장애인 연기마저 의심스러워졌다.

관객들은 그저 홀랑 벗은 여배우들의 몸매나 훔쳐보는 재미는 알아도, 돈벌고 싶어서 억지로 만들어낸 리얼하지도 기발하지도 못한 연애담으로 짓이겨 찢어발겨진 ‘처참한 가족’에게 분노할 줄은 모르는 것 같다. 여기에 잘못된 먹물들의 폼 나는 문화예술놀음도 한 몫 단단히 거들었다. 기분 참 더럽다. oo xx!

이런 더러운 영화나 비난하면서, 매화타령 부르며 좋은 놈으로 살아남는, 내가 싫다.

/김영주[영화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