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 경매 브로커 판친다
살림살이 경매 브로커 판친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4.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낙찰후 채무자와 흥정 웃돈받고 되팔아/ 경매시간 공고 없어 일반인 응찰 봉쇄/ 브로커 담합 독식 자유경쟁 차단/ 형식은 '고물상' 동산경매 전문/ 평가액 산출 집행관 맘대로// 광주지법 본원에서만 하루 20~30건/ 사전담합 가능한 '호가제' 개선돼야// 카드 빚이 무섭다. 편리한 신용카드, 그러나 사용후 돈을 갚지 못하면 살림살이까지 노란 딱지가 붙여져 가차없이 경매로 넘어간다. 최근 각 신용카드사들의 무분별한 카드회원 모집으로 카드 사용자들이 빚을 갚지 못해 살림살이까지 경매처분 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광주 지역 카드사가 2월말 현재 광주지방법원에 가압류 신청한 건수는 무려 160여건. 외환카드 광주지점의 경우 2월에만도 가압류 80건에 경매신청 47건이나 된다. 이는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제사정이 다시 나빠지면서 필요한 생활비를 카드로 사용한 서민들이 많아 졌고 결과적으로 빚을 갚지 못해 경매처분을 받는 것. 그러나 일부 카드 사용자들의 과소비에 따른 경제파탄도 상당수에 이른다. 실제로 한 전문신용카드사에서 채권업무를 담당한 적 있는 이모씨(31)는 "백화점 등지에서 남편 몰래 카드를 사용해오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살림살이가 경매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카드사의 회원남발과 일부 사용자들의 과소비가 빚어낸 것으로 개인과 가정은 물론 국가경제 전체의 손실로 이어져 카드사용자들의 무분별한 사용이 결국 경제파탄을 가져온다"고 비판했다. 지난 2월초 건축업을 하는 김 모씨(37·광주시 북구 문흥동)는 거래처에 시멘트 대금 230만원을 갚지 못해 냉장고, TV, 장롱, 컴퓨터, 비디오 등 살림살이가 경매에 부쳐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김씨는 무엇보다 초등학교 5학년 큰 딸아이가 2년동안 사용하던 컴퓨터가 마음에 걸렸다. 이런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낙찰자가 "웃돈을 주고 다시 사겠느냐"며 흥정이 들어왔다. 결국 김씨는 처분가 60만원이던 컴퓨터를 20만원 더 얹어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카드빚으로 살림살이를 싸게 넘기고 곧바로 웃돈을 주고 되사는 일이 벌어진 것. 낙찰자는 동산경매를 전문으로 하는 일명 '브로커'였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이들 브로커가 독점하는 소액단위의 채권 채무관계에서 빚어지는 '살림살이 딱지(차압)' 처분, 즉 '유체동산 경매' 제도와 운영 때문이다. 광주지방법원 본원에서 이뤄지는 유체동산 경매는 현재 하루 평균 20∼30건으로 월평균 대략 400여건이 넘는다. 그러나 카드사들이 한꺼번에 집행을 신청할 경우에는 800여건이 넘을 정도이다. 경기가 상승세를 타면 채무액을 변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경매 신청건수도 함께 늘어난다. 99년에는 하루평균 50∼60건까지 증가세를 보일때도 있었다고 관계자는 전한다. 수십건의 유체동산 경매가 있던 지난 2월9일 광주지방법원 111호 유체동산 집행관 사무실은 채권자와 경매 관련자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게시판에는 수십 건의 경매공고문이 걸려있었다. 한푼이라도 더 건져야 하는 채권자와 살림살이가 넘어간 채무자의 애타는 심정은 두쪽의 얇은 '동산경매 공고'에 그대로 배어 있다. 공고문 앞장에는 경매일시, 경매장소, 채무자와 집행관의 이름이 적혀 있고 뒷장에는 압류물품, 수량, 평가액, 압류품 소재지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TV, 냉장고 ,에어컨, 장식장, 침대, 화장대, 식탁, 문갑, 서랍장, 옷, 청소기, 컴퓨터 등이 빽빽하게 칸을 메우고 있다. 채무로 겪어야할 삶의 상처들을 짐작케 한다. <경매 독식하는 브로커 브로커들에게 경매에 나온 물건들은 좋은 '먹이감'이다. 유체동산 경매낙찰을 주업으로 하는 이들 업자들은 법원 안팎에서 '고물상'으로 불리워진다. 실제 고물상 업자들도 있지만 경매응찰만을 주업으로 하는 이들이 더 많다. 이들은 서로 담합 과점입찰을 하며 사실상 '독식'을 하고 있다. 일반인의 경우 입찰정보를 제때 알수도 없고, '괜찮은 물건'이 나와도 참여기회가 사실상 봉쇄돼 있기 때문이다. 경락받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해 유체동산 경매업에 뛰어든 김모씨(34)는 "잘만 잡으면 하루 300만원 이상 거뜬히 벌 수 있는 사업에 낯선 외부인 참여는 당연히 강한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다"며 "발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광주지법 정자홍 집행관은 "특정인에게 반복 낙찰되는 것은 없다"며 "오히려 채무자에게 너무 많은 인원들이 들이닥쳐 미안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집행관 따라붙어 시간체크 뒷거래 의혹 불투명한 '경매시간 통보' 운영도 동산경매에서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경매공고는 특정경매에 대해 시간이 정해져 공고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수십건이 넘는 경매건을 포괄적으로 '10:00∼18:00'까지 한다는 것으로만 표기돼 있다. 때문에 오전 10시 경매에 들어갈지 또는 오후에 할지 사전에 알 수가 없다. 경매에 참여하고 싶어도 집행관이 채권자에게만 알려주는 경매 시간대를 놓치면 경매참여는 사실상 어렵다. . 이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며 경매를 독식하도록 만들고 있다. 한팀에 3∼5명씩 움직이는 이들 브로커들은 미리 '돈 되는 물건'을 골라 경매일 집행관 곁을 따라붙어 채권자에게 불러주는 시간대를 체크, 경매에 참가한다. 이러한 브로커와 집행관의 밀착(?)은 일부 경매과정 보이지 않은 뒷거래로 이어지고 있다는 불신과 의혹까지 낳고 있다 이처럼 경매 실시시간 불투명성은 지난 2월28일에도 확인됐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본보 취재팀이 '시간배정'장면 사진 촬영을 위해 30여분 이상 집행관 사무실에서 기다렸으나 이뤄지지 않아 이유를 묻자 집행관 사무실 한 직원은 "오늘은 사무실이 복잡해 법정에서 했다. 법정(부동산경매)이 열리면 사무실에서 하고 안 열리면 법정에서 한다"며 "경매시간은 이미 채권자에게 통보돼 더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자홍 집행관은 "집행관 업무가 집행과 경매를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에 특정시간을 미리 정할 수 없으나 시간공고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며 "인터넷을 통한 시간공고도 이후 전산시스템이 갖춰지면 운용이 가능한 제도"라고 밝혔다. 광주지법 한 관계자도 "가능하면 시간공고가 사전에 정해지거나 인터넷 등에 미리 공개되면 일반인들의 경매 응찰기회가 많아져 채권·채무자 모두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락물건의 70% 웃돈얹어 되판다 브로커들은 낙찰받은 물건을 해당 채무자에게 '웃돈 흥정'을 통해 되파는 수법으로 돈을 벌어들인다. 업계주변에서는 "경락 물건중 약 70%가 경락가격에 최고 절반 이상의 웃돈이 얹혀진채 다시 팔린다"며 "채무자 입장에서는 새로 살 때 드는 비용과 손때 묻은 살림살이에 대한 애착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대부분 다시 구입을 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 다. 그러나 채무자가 사지 않겠다면 경락가격의 약 10% 마진률을 얹혀 중고업자에게 넘긴다. 실제로 지난 2월초 보증 때문에 경매를 당한 정모씨(43. 광산구 월계동)도 "경매가 끝난 후 즉석에서 곧바로 경락가 160만원에 웃돈 20만원을 얹어 3년된 피아노 등 10종류의 살림살이를 다시 구입 할 수 있었다"며 "이날 응찰자는 3명뿐이어서 2분도 안돼 순식간에 경매가격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정씨는 응찰자들에 대해 "이 계통의 전문적인 업자들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느꼈다"며 "가족이 직접 경매에 참가하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그러면 가격만 더 올라간다' '차라리 업자에게 웃돈을 주고 다시 구입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듣고 포기를 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매는 응찰자가 응찰가격을 법정안에서 비공개로 적어내는 '서면입찰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유체동산경매는 압류물품이 있는 장소에서 응찰자 끼리 공개적으로 가격을 직접 부르는 '호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일명 '베팅'이다. 따라서 참가하는 응찰자끼리 서로 담합할 경우 응찰가를 사전 조정 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난해까지 동산경매를 전업으로 했던 이모씨(31)는 "돈 되는 좋은 물건을 자기가 꼭 낙찰받고 싶으면 상호경쟁을 피하기 위해 교통비 명목으로 10만원 정도를 다른 업자들에게 건네 사전조율을 거쳐 독점 낙찰을 받는다"며 "담합대상 물건은 주로 개인 채무 물건이 많다"고 밝혔다. 이 경험자는 브로커팀에 대해 "광주지역에 대략 3∼5개팀이 전문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경력도 3년에서 10년 이상으로, 조직은 친구관계 및 선후배 등으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물건주인이 있는 경우에는 70%정도가 다시 웃돈을 주고 구입하고 있으며 웃돈 흥정이 끝나는 기간은 대개 3차례에 걸쳐 1개월내 이뤄진다"고 밝혔다. 흥정가격도 "경락가격과 물건에 따라 정해져 통상 30∼50만원선이 대부분이며 100만원을 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흥학 광주지법 민사집행과장은 "웃돈구입에 따른 부당함을 문의하는 전화가 가끔씩 걸려오고 있다"며 "일부 업자들의 경우 형식상 고물상 허가를 받아 놓고 실질적으로는 동산경매를 전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 담합의혹에 대한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광주지법 정자홍 집행관은 "웃돈 구입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으나 집행관 업무와는 관련이 없는 부분"이라며 최근 이루어진 동산경매 낙찰자 명단 공개 요구에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는 공개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또 호가제에 대해서는 "하루 여러곳에서 경매가 이뤄지는 업무 특성상 진행이 빨라야 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측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경매물건 평가액 산출도 부동산은 각 물건마다 감정평가사가 참여하지만 동산의 경우 일부 고가물을 제외하고 대부분 집행관이 전권으로 평가액을 결정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따라서 물건에 따라 '평가액 고시 기준표'에 의한 가격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2월 경매를 당한 채무자 김모씨(35.광주시 북구 문흥동)는 "아무리 강제집행이라고 하지만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경매 당일 언제 온다는 구체적인 시간정도는 알려줘야 한다. 또 채무자가 법적으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 해줘야 한다. 압류물품에 대한 평가액 산정도 어떤 기준으로 이뤄졌는지 또 압류물품의 총 금액이 얼마인지도 전혀 몰랐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정자홍 집행관은 "사용자에 따라 물품의 가치가 다양하다는 특성 때문에 가치평가에 어려움이 있으나 물품의 제조연도와 시중중고 가격 등을 참고하여 평가를 하고 있다"며 "감정평가사에게 이를 대행할 경우 경매시한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채권자의 비용수수료 부담이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또 경매 기일통보에 대해서는 채권·채무자 모두에게 "우편으로 '동산경매기일통지서'를 보내고 경매기일 오전 9시30분까지 집행관 사무소에 출석하여 경매 예정시간을 담당부에 문의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막강권한 - 집행관 집행관은 법에 의해 제도적으로 경매물건에 대한 평가액을 스스로 정하는 것은 물론 강제집행을 행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집행관 업무를 일반 법원직원 및 검찰 사무직원들의 '노른자위'로 통한다. 이런 의혹의 시선에 대해 김흥학 민사집행과장은 "일부업자들의 담합에 의한 낙찰 개연성은 충분하나 집행관들과의 결탁 의혹은 없다"고 밝혔다. 장자홍 집행관도 "동산경매 응찰자들이 30∼40개팀이 넘을 정도로 많아 누가 누구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라며 의혹에 대한 시선을 부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