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한국전쟁의 진실을 밝혀야 할 이유
[투데이오늘]한국전쟁의 진실을 밝혀야 할 이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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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전쟁이 한창중이던 1950년 말을 전후해서 우리지역 주변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은 종전 50년이 된 지금 우리에게 한국전쟁의 진실을 밝히고 역사를 바로써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주민 700여명을 도로공사를 하러간다며 마을 가운데에 있는 동산으로 모았다. 군인들은 15살 미만의 아이들과 45살 이상의 어른들을 따로 모아 마을로 내려가 남은 집에 불을 지르라고 보냈다. 200여명이 남았다. 장교인 듯한 사람이 "군인이나 경찰가족은 앞으로 나와"라고 했다. 이후 "엎드려" 라는 장교의 구령과 함께 기관총 3정과 M1 소총이 불을 뿜었다.

한참 뒤 인솔장교는 "살아남은 사람은 하나님이 돌봐주신 것이니 모두 살려주겠다"고 소리쳤다. 이 소리를 듣고 50여명이 일어났다. 그러자 장교는 다시 사격명령을 내렸다. 장교는 또다시 "이번에 살아남은 사람은 진짜 하나님이 돌봐주신 것이니 빨리 동네에 가서 불을 꺼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10여명이 일어나 동네를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그들의 등을 향해 기관총이 다시 불을 뿜었다.

비무장민간인 무차별 학살

위의 얘기는 12월말부터 이듬해인 51년 1월까지 국군이 공비(?)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전남 함평군 월야면에서 자행한 수백명의 비무장 민간인 학살의 한 장면에 대한 증언이다. 이보다 조금 전인 11월 말쯤 해남군 마산면 붉은데기에서 벌어진 민간인학살에서는 철사로 손을 묶어 끌고 간 민간인들을 포개서 엎어놓고 총에 착검을 해서 마구 찔렀다고 한다.

살아남은 가족들의 증언으로는 총이 아닌 칼이나 흉기로 난자당한 시신을 수습하기도 힘들 정도였고 학살장소의 주변에는 피가 도랑이 되어 흘렀다고 한다. 비공식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작전(?)을 벌인 국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는 함평군 월야면, 나산면, 해보면 등지에서 524명을 죽이고 가옥 1454채를 태웠다고 한다.

이는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참혹상을 묘사하거나 떠올리기는 일조차도 꺼려지는 민간인 대량학살은 군대의 입장에서 보면 적의 근거지를 초토화한다는 군 지휘부의 작전계획의 실행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가해자이자 학살집행자인 군인은 무공훈장을 평생 안방에 걸어놓고 살아온 반면에, 희생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죽임을 당했으면서도 죽임당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빨갱이 부역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붙을까 두려워 숨을 죽이며 살아왔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위세를 떨쳤던 이승만 정권과 역대 군부독재정권 하에서는 밝혀질 수 없었던 한국전쟁의 진실들이 이제는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학살의 진실규명이 중요한 것은 비단 역사 바로 알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의 몇몇 전쟁전문가들은 한국에서 금년 7월에서 10월 사이에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략하고 목적을 달성하고 난 후 다음표적으로 북한을 들먹여 온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진상규명, 또다른 전쟁예방위해 필요

더구나 우리는 전쟁을 끝낸 게 아니고 이번 7월로 꼬박 정전 50년이 된다. 끝나지 않은 전쟁은 언제 다시 돌발할지 모를 일이다. 어제는 비무장지대에서 남북한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것이 비록 가볍다고는 하나 미국의 끊임없는 자극과 비방에 분을 삭여야 하는 북한의 도발인지 우발적 사고에 불과한 것인지는 민간인인 우리로서는 아직 진실을 알 길이 없다.

국내의 극우적인 정치인들이 시절을 만났다는 듯이 미국의 전쟁계획을 교묘하게 지지하고 나서는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전쟁의 공포가 언제 현실이 될지 모를 일이다. 전쟁의 양상은 달라질지 모르지만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이해라는 전쟁의 동기는 5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에서 보았듯이 전쟁에서 얻는 자와 잃는 자는 누구일 것인지 너무도 자명하다.

학살의 진실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어떤 이름으로든 전쟁, 특히 강대국의 교언요설에 휘말린 동족간의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진실은 단순하다. 한국인들은 어떤 형태로든 전쟁을 원치 않는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은 전쟁목적에 동원되며 민간인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군의 작전이 우선시된다.

우리는 쓰여진 역사를 통해서만 역사적 사실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실제의 역사를 알 길이 없지만, 그것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사실을 밝히고 부분적인 사실들이라도 찾아내고 당시의 전체의 사회모습에 맞추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힘겹게 역사적의 진실을 알려고 하는 더 큰 이유는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안진(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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