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패러다임의 변화와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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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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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박광태 시장의 취임 1년에 부쳐>

패러다임.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이, 1962년 <과학혁명의 구조 >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한 시대가 공유하는 총체적인 가치관이나 사고의 틀'을 뜻하는 말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이 시기 광주시의 환경은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지만, 광주시는 아직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해 11월 8일 광주시 기자회견장. 박광태 광주시장은 상당히 들 뜬 표정이었다. 2003년 국가 예산 확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취임 이후 중앙부처와 정치권을 부지런히 방문해서 얻은 성과였다. 그동안 닦아 온 김대중 정권의 인맥을 활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광주시는 올해 지난해와 달라진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예산 확보를 위해 만나는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당연히 예산확보 전망도 불투명하다. 왜일까. 그만큼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예산확보 달라진 상황에 당황

우리는 경상도 정권이 우리를 차별하는 상황에서 반세기를 살았고, 국민의 정부 5년은 '형님!, 동생!'을 구가하며 살았다. 그동안 대통령이란 존재는 각종 건의를 '받아들이고' 시혜를 '베푸는' 대범한 존재였지, 토론을 하자며 자질구레하게 '따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앙정부의 공무원들까지 걸핏하면 토론을 하자고 한다. 95%나 지지해줬으니, 그런 복잡한 절차없이 좀 화통하게 밀어주면 어떤가. 그러나 이제는 그런 불만에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알 듯 모를 듯한 사이, 세상이 변했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니까, 금새 이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산업기반이 낙후되어 있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부의 투자를 끌어오기 위한 진지한 모색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문화수도'라는 대통령 공약의 뒷덜미를 잡고, 너희(중앙정부)가 기획단도 만들고 너희가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광주에서 문화산업이 잘될 수 있다'는 만용(蠻勇)보다 '문화산업의 타당성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뻔뻔함이 더 어이없었다.

광주시의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시장을 비롯한 고위공무원들은 더욱 그렇다. 문화수도를 위해 실천해야 할 일을 단 며칠만에 수 십 가지를 만들어내는 기민함은 놀라웠다. 그러나 구슬이 세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던가? 그 수 십 가지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실천과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젠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대통령이 정부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겠다고 하자, 연구소를 비롯한 중앙기관 이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연구소가 온다는 이유만으로 산업이 발달할 수 있다면, 대덕연구단지 근처에 우리나라 최대의 산업단지가 조성되었어야 한다. '왜 그렇지 못했는가'에 대한 고민과 해결이 없다면, 연구소의 이전은 그저 연구소의 이전에 그칠 뿐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1월 28일, 당시 노무현 당선자가 광주의 광산업 전문가들과 벌인 토론회. 노대통령은 광주의 과학자와 고위 공무원들에게 '세계적인 과학자를 데려 오면 지역경제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다. 일순간 그들은 머뭇거렸다.

그리고 내놓은 답변은 '다른 연구자들이 그들의 연구를 보고 배운다'는 것이었다. 이 답변에 대통령은 흡족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질문은 되풀이 된다. 그 몇몇의 연구자들이 배운다는 것은 경제발전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광주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래야 '클러스터'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

저임금을 발판으로하는 '조국근대화'시대에는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합리적인 판단,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 선을 넘어야 만불시대를 지나 2만불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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