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퐁피두센터 = 문화수도의 포기
[투데이오늘]퐁피두센터 = 문화수도의 포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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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호[광주대 언론홍보학부 교수]

정부 당국이 최근 문화수도를 명백히 철회하고 좀더 솔직해진 것은, 아쉽지만 차라리 다행스런 일이다. 겉으로는 문화수도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문화역량의 강화 정도로 생각하는 불일치가 그동안 광주지역의 혼돈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역의 의제가 혼돈과 갈등을 벗어나 좀 더 단순하고 명확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새롭게 제시된 아시아 문화의 메카와 퐁피두센터라는 용어는 문화수도의 구체화방안이 아니라 문화수도의 포기 또는 대체개념이다. 그것은 문화수도라는 용어가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문화관광부와 산하기관을 포함하는 문화정책결정권의 지방분산을 명백히 거부하는 것이다.

아시아 문화의 메카라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개념과 퐁피두센터라는 외형상 화려한 하드웨어로 문화수도론의 부담을 벗어 던지겠다는 중앙정부의 의도는 지역에 새로운 방식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용어의 전환에 직면하여 지역의 지도자들에게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체화하기 위한 청사진을 개발해야 할 책임이 주어졌다. 지도자들의 정확한 설계가 선행되고 주민들의 동의와 지원이 뒤따를 때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단단해질 수 있는 것이다.

추상적·화려한 하드웨어로 부담벗겠다?

지역문화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감당할 주체세력의 형성, 즉 지역 문화혁신체제의 구성이다. 주체가 제대로 서지 않고는 어떤 변화나 개혁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주체는 시민, 학교, 언론, 산업계, 관계, 정계가 망라되고, 진보와 보수, 관변과 비관변이 포함된 강력한 주체세력이 서야만 한다. 여기에 지역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고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 최고의 공동선을 찾아내고 합의해야 한다.

둘째, 주체세력은 장기적인 미래 지역 문화의 방향과 내용을 적절하게 구상해야 한다. 그 핵심적 과제는 미시적 운영방식보다는 문화생산의 기본 컨셉, 문화의 하위 범주 설정, 다양한 문화현상 중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적용될 영역, 문화와 정치.경제.사회 등 다른 영역의 관계 설정, 문화생산자와 시민들 사이의 관계 설정, 발전과 지속이 가능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문화생산역량 공급방안, 문화를 둘러싼 광주와 전남 그리고 타지역과의 적절한 관계 등이다.

셋째, 주체세력들의 집중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광주지역의 문화 관련 역량은 솔직히 말해서 완전 초보단계이다. 구체적이지 않은 총론만 무성하고, 실제로 각론과 대안을 개발하고 감당할 능력은 극도로 빈약하다. 관련자들의 치열한 자기고백과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선생이라던가. 문화에 관한 총론과 각론을 아우르는 지속적인 학습과 토론을 통해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좀더 구체화하고 대안을 개발해야 한다.

넷째, 시민을 문화생산의 주체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시민을 문화소비자로 말하는 속류들의 인식은 지역문화의 발전방향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문화는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향유의 대상이다. 시민이 스스로 문화생산과 일상생활상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기회들을 새로운 컨셉으로 창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문화의 미래는 주체세력 형성부터

지난 여섯달 동안의 문화수도에 관한 논의는 그렇게 비생산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문화가 예술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고, 지역의 문화를 둘러싼 구도가 명백히 드러났으며, 문화에 관한 본격적 담론 형성의 가능성이 엿보이게 되었다.

이제 통합이다. 그 통합은 무조건적 일치나 획일화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의견들에 내재된 이질적 요소들이 점차 역동적으로 통합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주체들이 모두 다 지역의 미래 개척과 문화경영의 주체임을 깨닫고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그 의견에 귀기울이면서 긴밀한 협력을 해야 한다.

/류한호(광주대 언론홍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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