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천고의 비루함을 한번 씻어내고자
[투데이오늘]천고의 비루함을 한번 씻어내고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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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호남학진흥원 전문위원. 광산중 교감]

1969년 중앙의 한 일간지가 발표한 그 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의 제목은 「개를 기르는 장군」이었다. 군사문화의 폐해를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바닥에 깔고 병촌안의 현상을 시니컬하게 파헤쳐 놓았다.

주인공인 장군과 나 사이에 장군이 기르던 개 '쫑'이 연결되는 관계를 풍자적인 문체로 갈겼는데, 남편을 승진시키기 위하여 온갖 수모를 감내했던 아내와 계급장이 삐까번쩍 빛나는 참모들 사이에서 주눅들어 지내는 장군이 개를 기를 수밖에 없는 내면 세계를 예리하게 파고든 것이다. 작가 김동선은 유럽의 개는 애정의 대용물이 되어 인간을 고독으로부터 방어한다는 점을 일찍이 간파한 것 같다.

정·관가 오가는 말 분통터져

우리의 속담에 '복날 개 맞듯'이라는 말이 있다. 한여름 들일에 찌든 농부들이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개장국을 해먹는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88올림픽 때 우리의 개장국문화를 놓고 시비거리가 된 적도 있었지만, 동서의 문화 차이를 모르고 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축이란 인류가 처음부터 잡아먹기 위해 사육해왔다. 소나 말은 농경이나 교통수단으로도 이용하나 그 육질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타 집짐승은 우리에 가둬 기르는데 반해 개는 놓아먹이다 보니 사람의 입살에 자주 오른다는 점만 다르다. 상추밭에 똥 싸고, 노상방뇨에다 시도 때도 없이 고래고래 짖어대는가 하면, 흉년에 죽 쑤어 개 좋은 일 하는 건 다반사였다.
요즘에야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 속에 냉장고 넣는다지만.' 어쨌거나 사람답지 않으면 개만도 못하다고 그러고, 남의 앞잡이 노릇하는 사람을 보고는 주구(走狗)라고도 한다.

예컨대 일제의 주구, 해방공간에서 미군정에 빌붙고 단독정부 주장하던 양키의 앞잡이, 군사정권 아래에서 워커짝 빨던 개 등등 하 많다. 그렇다고 개를 마냥 비하하는 눈으로 보아온 것만은 아니다. 더러는 '견공(犬公)의 윤리'를 예찬하는 분도 있고, 봄볕이 간지러운 묏기슭이나 흰눈이 듬뿍 쌓인 벌판에서 개들이 엎치락뒤치락하여 어우러져 노는 양을 구경하고 섰노라면, 그것은 정히 생의 환희라고도 썼다. 극찬에 가깝다.

요사이 노무현 정부, 정·관가에서 오가는 소리(말)를 듣고 있노라면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지껄이는 당치 않은 말을 뭐라고 하던가. 인격이 모자라선지 아니면 아직도 군사문화의 타성을 벗어 던지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고관대작이라는 분들이 난마와 같이 얽힌 국정을 푼다면서 '총대를 메겠다', '악역을 맡겠다'고 하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린가. 막힌 데는 뚫고 꼬인 매듭은 풀어서 국민에게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하면 되는 것이다.

'깽판'은 또 뭔가. 그러니 공당의 정책의장이라는 사람이 국가원수의 외교를 '등신외교'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지 않는가. 모든 게 상대적이라는 걸 몰라서 그러는가. 그들이 멍멍멍하는 꼴이 부시의 면면을 닮아가는 것 같아서 우려도 되지만, 정치란 애시당초 경륜과 철학이 빈곤해 가지고는 안 되는 분야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참여정부라는 간판은 발상의 이론적 배경과는 달리 국민의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역사에서 우리 살길 찾을 때

조선후기 진경시대를 열었던 정조의 국정지표는 부실화락(戶戶富實人人和樂)이었다. 민주주의도 좋지만 치국의 요체는 백성을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하는 일인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살길을 우리의 역사에서 찾을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일찍이 茶山 선생(1811)은 강진 귤동에 유배되어 있을 때 흑산도에 귀양살고 계시던 중형 정약전 선생과 서간으로 학문을 논하다가 문득 '짐승의 고기는 전혀 먹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써보냈다.

'이것이 어찌 생명을 연장하는 도(道)라고 하겠습니까? 섬 안에 산개(山犬)가 천 마리 백 마리뿐이 아닐텐데 제가 그곳에 있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삶는 것을 반드시 거르지 않겠습니다. 5일마다 한 마리를 삶으면 하루 이틀쯤이야 생선찌개를 먹는다 해도 어찌 기운을 잃는 데까지 이르겠습니까. 들깨 한 말을 이 편에 부쳐 드리니 볶아서 가루로 만드십시오.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육친의 뜨거운 정이 느껴진다. 이 무렵 다산은 10년에 걸쳐서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10권을 펴내고 기력이 쇠진한 상태에 놓였으나 마음공부로는 저술보다 나은 게 없다는 신념으로 학문에 전념하였다.
천고(千古)의 비루함을 한 번 씻어내고자.

/정규철(호남학진흥원 전문위원. 광산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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