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IS , 정직한 대면이 해법”
“NEIS , 정직한 대면이 해법”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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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로서, 또 어린이 교육자로서 NEIS 사태를 보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하다. 기왕의 문제와 앞으로의 과제를 구분하지 않고 마구 뒤섞여 제기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난장에 의지와 무관하게 휘말리고 만 꼴일진대 누군들 착잡하지 않으랴.

지금 NEIS와 관련하여 쟁점이 되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제기되는 것 같다. 개인정보 수집 차원, 정보 집적 차원, 시스템 운용 관리 차원 등. 편들기에 앞서, 친소관계에 휩쓸리기에 앞서 이 세 가지 문제를 정면에서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개인정보 수집 차원의 문제. 한 마디로 NEIS와 C/S 시스템 간의 차이를 찾을 길이 없다. 아니, 되레 NEIS가 낫다. NEIS에 등재되는 정보량이 C/S 때보다 줄기도 했거니와, NEIS에 등재되는 정보도 새로이 수집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주장하는 개인정보 수집에 따른 인권과 프라이버시 문제도 NEIS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수십 년 묵은 기존 관행의 문제일 따름이다. 따라서 개인정보 수집에 따른 자기정보통제권 문제도 현장 교사에 의한 잘못된 관행의 개선을 통해 이루어질 문제이지, NEIS를 반대해서 해결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둘째, 개인정보 집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법 기술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법적용의 모호성), NEIS와 이전 시스템 간의 차이는 그리 드러나지 않는다. 되레 C/S 등 이전 시스템이 비효율적이고 보안상 문제가 더 심각했다면,
NEIS는 효율성과 보안상 문제를 좀더 해결하고 정보화에 따른 생산성도 추가로 높일 수 있게 준비한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C/S 시스템이 비록 학교 안에 있기는 하나, 그동안 관행적으로 시, 도 단위의 외주 과점업체에 의해 원격 관리되어온 사정도 외면할 일이 아니다.

NEIS와 무관하게 C/S는 이미 사실상의 집적성과 공공연한 불법관행의 온상이었던 것이다. NEIS는 그에 따른 보다 진화된 대안적 시스템일 뿐인 것이다.

편들기·친소관계 탈피문제 정면으로 직시
자기정보 통제권 교사 잘못된 관행이 문제


셋째, 시스템의 운용 관리 차원에서도 NEIS가 C/S보다 기술적 우위에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국가에 의한 개인정보 악용 우려가 제기되고 있을 따름인데, 이 또한

적절한 지적만은 아니다. 이 문제는 시스템 아키텍쳐 문제 외에도 궁극적으로 국가권력의 민주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 민주적이지 않을 때, C/S는 물론 수기자료일지라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제 아무리 기술적으로 대비하고 감춰봐야 국가권력이 민주적이지 않다면 모두가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겨야 한다. Big Brother를 우려한다면, 교사로서 먼저 교육과정의 민주화와 교육행위의 민주화에 더욱 정진할 일이고, 그리하여 사회와 국가의 민주화에 구체적으로 이바지하면 될 일이다.

아직도 여전한 교육현장의 체벌과 뇌물관행, 학부모 배제 관행은 교육현장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비교육적이고 인권 침해적이며 프라이버시를 무시하는 현장인가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꼼수와 불공정성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길 기대하는가?

강조하거니와, 전교조의 주장은 법적 모호성 문제를 제외하고는 NEIS보다는 기존의 잘못된 교육관행과 더욱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법적 미비점은 협의를 통해 개선하면 될 일이지 결사반대할 사안은 아니다.

더욱이 인권과 프라이버시, 자기정보통제권 따위의 제 민주적 권리는 교육부의 노력이나, 단지 시스템 아키텍쳐일 뿐인 NEIS 따위로 해결될 수 있는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현장 교사의 능동성과 건강한 문제의식이 살아날 때만 발달하고 확장될 수 있는 가치를 시스템 아키텍쳐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한다. 선의에 옳은 내용성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잘못 가기 십상이라는 뜻이다. 전교조가 당초의 선의에 값하는 가치로운 노력에 힘쓰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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