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근래에 도시발전전략으로 문화수도로 표현되는 선진적 문화도시, 그리고 민주인권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이 두가지 목표는 서로 경쟁적이거나 배타적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실은 이들이 취사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종합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 두 영역을 아우르는 기초는 바로 1980-90년대의 치열했던 5월문화운동이다. '1980년의 광주'를 정신적 원천으로 삼아 전개된 오월문화운동은 매우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주목할만한 문화적 작품들을 생산해왔다.
워낙 문화운동이라는 영역은 한국 민주화운동이 만들어낸 중요하고도 특이한 성과이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영역이기도 하다. 문화운동이론을 제외한다면, 문학, 노래, 그림, 연극, 영상 다큐멘터리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얻은 성과와 노하우는 전국의 어느 도시보다 광주가 가장 풍부하다. 어쩌면 이 문화운동으로 인하여 지난 20여년간 광주는 광주답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보면 5월문화운동은 우리나라 전체의 문화운동을
이끌어간 키잡이였고, 나아가 한국 현대문화를 일방적 소비문화로 떨어지지 않도록 견인하면서, 우리에게 어떤 삶이 바람직한가를 제시하는
방향잡이였다.
민주화를 달성하지 못한 나라들에게는 하나의 전범을 제공하는 역할도 했다. 예컨대 5월의 노래는 세계 여러 나라 민주화운동단체들이 부르는 보편적 운동가요가 되었고, 5월의 그림이나 연극들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5.18 정신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 광주가 안고 있는 하나의 문제는 이런 중요한 5월문화운동의 성과를 한데 모아 정리하고 연구하는 기구나 제도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광주시나 비엔날레 재단, 또는 민간 문화재단 어디도 이 소중한 5월문화운동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곳이 없다.
5.18 문화관이 건물로써는 존재하지만, 기능으로써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그것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다른 곳에는 없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또 하나, 광주가 갖고 있는 문제는 세대간 경험의 단절현상이다. 5월의 경험은 소중하게 간직되어야 할 뿐 아니라 세대적으로 재생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5.18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문화를 읽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젊은 세대가 문화에 접근하고 읽어내는 방식에 맞추어 5월정신이 재해석되지 않으면, 세대간 간격은 더 벌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말로써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형식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전남대 5.18연구소는 제주 4.3연구소와 함께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에 걸쳐 "역사적 기억과 문화적 재현"이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움을 열었다. 이 심포지움은 1980-90년대
문화운동의 자료를 한자리에 모으고 이를 이론적으로 탐구하려는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심포지움은 제주와 광주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의 현장을 서로 묶어주어 실질적인 지역간 연대를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심포지움의 과정에서 많은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문화운동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문화운동이 매우 강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평론가와 이론가가 부재한 광주의 상황에 대해서도 인식을 같이 하게 되었다.
우리의 음악운동을 이론적으로 주도해온 노동은 교수는 드디어 광주에도 음악 연구자가 나오게 되었다고 감격해했다.
비록 홍보에 문제가 있어서 이 심포지움에 대한 시민 참여자가
별로 많지 않았지만, 정말 뜻깊은 학술행사였다고 생각된다. 겉으로만 거대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실속 있는 내용을 추구해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광주가 선진 문화도시 또는 민주인권도시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시민들이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이다.
/정근식(전남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