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스페이스]망령의 유희(遊戱)
[오픈스페이스]망령의 유희(遊戱)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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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기[국제화재단 상임이사. 전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

한동안 잠잠해졌던 시도통합논의가 재연(再燃)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사라진 듯 했던 망령이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시도통합논의, 민선 1기 단체장 선거가 있었던 지난 95년부터 10년 가까이 소모적인 논쟁속에 정치꾼들의 이해에 따라 시·도민들을 마음껏(?) 우롱해왔던 이 논의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지역여론의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꺼진 불이 이번에 다시 붙은 것은 중앙정부의 탓이다. 새 정부들어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의 책무를 수행하고 있는 행정자치부 장관이 그 일환으로 '광주·전남, 대구·경북등 광역 자치정부 두 개가 함께있는 지역은 통합하는 문제를 연구하겠다'고 언급한 데서 불씨가 표면화된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갑오경장(甲午更張)이후 1백년도 더 넘게 그 골격이 거의 바뀌지 않고 있는 지방행정계층구조 조정과 행정구역개편 문제를 연구용역을 통해 재검토 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10년소모 통합논쟁 불지핀 정부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시도-시군구-읍면동으로 이어지는 지방행정계층을 하나정도 줄이는 구조 조정문제는 정부수립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행정개혁의 단골 메뉴가 되어왔고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안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그런데도 군사정부를 비롯한 권위주의 정부치하에서 조차 이 문제에 대한 결론과 그 실행이 쉽지가 않았다.

만약 이 정부에서 시도를 폐지하는 전반적인 행정계층 축소조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일부 시도에 대한 통합을 시도할 수 있겠으나 이 또한 결코 쉽지도 않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행자부장관이 통합대상으로 예시한 광주와 대구 등은 내륙형 광역시로서 과거에도 인접도와의 통합을 추진해야 지역의 경쟁력이 증대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다.

허나 임해형 광역시로서의 부산이나 인천, 울산에 비해 지역중심기능과 산업거점기능에 있어 광주·대구·대전이 왜 열세에 있는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적 취약성을 보강해 임해형 광역시 못지않게 지역의 선도적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이 정부가 추구하는 지역균형발전의 첫걸음이라고 본다.

광주와 전남의 통합문제만 보아도 그렇다. 어떠한 배경과 취지에서든 광주가 광역시로 승격하여 대도시로서의 행정체제와 지역기반을 다져온지 어언 17년이 다 되었다. 당시 1백만의 인구도 채 못되었던 광주가 지금은 140만에 다달았고 광주·전남권역의 공동발전을 견인하는 중핵(中核)도시로서 목포와 광양을 잇는 3핵3축(三核三軸)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도 몇가지 기대효과가 있다하여 교각살우(矯角殺牛)식의 통합을 추진한다하면 이는 세계적인 조류나 시대적 요청에 반하는 조치가 될 것이다.

정치꾼들의 줄타기 유희 불보듯

지금 우리는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소위 세방화(Glocalization)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교통·통신의 발달과 인터넷 정보혁명으로 국가간의 경계가 퇴색되어 가는 무국경체제(Borderless system), 지구촌(Global village)의 개념이 확산되고 있는 탈국가화 현상속에서 대도시는 중앙정부와 다름없는 주체성과 권위를 갖는다.

지방 대도시가 중앙정부를 뛰어넘어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는 '지방외교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때에 거대도시 광주가 전라남도와 같이 빈약한 농도(農道)에 예속되어 나라안팎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힘이 꺾인다면 이는 광주시민만의 비극이 아니라 광주·전남권역 전체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또다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극히 예민한 문제에 대해 예단적(豫斷的)인 표현으로 느닷없이 정부방침을 언급한 처사가 못내 못마땅하다.

시도 통합논의는 필시 도청이전에 관한 실속없는 논쟁을 다시 촉발시킬 것이고 더불어 정치꾼들의 줄타기 유희가 여전히 재연(再演)될 것이기 때문이다. 되돌아온 망령의 유희, 여기에 또다시 놀아나서는 안될 각성과 분별이 요구되는 싯점이다.

/김완기(국제화재단 상임이사. 전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

김완기님이 새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오랜 공직생활속에 후배.동료들로부터 '신망받는 선배 공무원'중 한분으로 꼽히는 김 상임이사의 꼿꼿하면서도 포용력있는 필력을 기대합니다. '오픈 스페이스'는 '쓴소리단소리 ' ' 오늘과 내일' 등 고정 칼럼과 함께 3주마다 한번씩 선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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