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나는 분당(分黨)을 지지한다
[오늘과내일]나는 분당(分黨)을 지지한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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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신당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민주당이 참패한 4.24 보궐선거가 계기가 됐다. 개혁 그룹에 한정됐던 논의가 단 일주일만에 대세로 변했다. 그러면서 논의의 초점도 바뀌었다. 지금 은 신당의 참여 범위를 놓고 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소위 신주류는 이념적 지향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자고 한다. 더 이상 '지역'은 이들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구주류를 비롯해서 중도파까지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호남세력을 제외하면 내년 총선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논쟁을 지켜보면서 슬그머니 피어나는 의문이 있다. '왜 구주류는 이념적 지향이 다른 신주류와 꼭 당을 같이 하려고 할까?' 그 이유가 속시원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념이 다른 두 세력이 정당을 계속 함께 하면, 호남권의 정치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념 다른 신·구주류 갈라서야

지난 1987년 대선 이래 4반세기동안, 호남은 특정정당의 일당지배에 들어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던가. 계속된 일당지배는 이 지역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일당지배의 가장 큰 폐해는 부패한 선거풍토다. 당의 후보만 되면 당선이 보장된다고 믿는 구조에서, 본선거보다 당내 경선이 훨씬 치열했다. 선거인단을 매수하기 위한 금품과 향응제공이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해 민주당의 광주시장 후보 경선은 부패선거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민주당 후보 경선이 있기 하루 전 날 밤. 두 후보진영은 서로 차량을 동원해 상대 후보 감시에 나섰다. 이들은 그 날 밤 상대 후보가 대대적인 금품살포에 나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현장을 잡기 위해 영화에서나 봄직한 추격전을 밤새워 벌인 것이다. 그만큼 혼탁한 선거였다. 그 혼탁한 경선은 국회의원들의 밀실회의를 통해 박광태 현시장이 느닷없이 후보를 차지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광주시민은 민주당을 심판하지 못했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 후보도 기간당원과 국민투표단에 의해 상향식으로 선출된다고 한다. 총재 공천 보다 진일보한 방식임을 부인 할 순 없지만, 또 금품선거로 혼탁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구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 정책적 차이를 가진 복수의 정당이 나와야 한다. 정당이 정책에 따라 구성되면 선거풍토가 훨씬 깨끗해질 것이다. 유권자들이 자기 이익을 대변할 후보를 결정하고 나면, 금품을 받고 지지 후보를 바꾸는 일은 거의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당지배의 폐해는 선거가 끝나고도 계속되고 있다. 그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지방의회다. 민주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의회 구성. 거기다 단체장과 같은 정당 소속이고 보니, 제대로 된 견제와 비판이 이뤄지지 않는다. 부정부패 의혹이 있는 사안을 몇몇 의원들이 제기하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용두사미로 끝났다. 유의미한 야당이 있다면 꿈도 꾸기 어려웠을 일이다.

지난 해 광주시 예산안 심의 때는, 특정 사찰의 특혜 예산 삭감을 주장하던 예결위원들이 국회의원들의 연락을 받고 갑자기 태도를 바꾼 사례도 있었다.

일당지배의 폐해 이제 끝장내자

박광태시장의 행보를 보면 그는 보수주의자임에 틀림없다. 본래적 의미에서 보수주의는 자유시장과 기업 활동을 중시하고, 환경보전보다는 개발을 우선하는 일반적 경향을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박시장은 분명 보수주의자다. 그는 또 미국과 대립보다는 협력을 강조하는 친미주의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 내에는 스스로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다. 기업활동에 못지 않게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켜야 하고, 자연은 개발하기보다는 보존해야하며,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전 부문을 고루 고려하는 복지를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분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다. 모두 한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비판마저 자기검열하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문화수도론' 같은 어처구니없는 아젠다(agenda)가 별다른 비판없이 기정사실화되어 가는 것이 지금 광주의 현실이다.

바른 선거를 위해, 올곧은 권력감시를 위해, 그리고 정당한 토론을 위해, 나는 서로 다른 이념을 대변하는 정당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정치가 시급히 자리잡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이 지역의 정치풍토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름길임을 믿는다. 내가 '이념적 지향에 따른 분당(分黨)'을 지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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