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일방적인 선전포고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의 참상은 우리 성인들에게 뿐만이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던모양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가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무차별 폭격장면을 뉴스로 보면서 내게 많은 것들을 물었다. 너는 아직 어리니까 그런 것에 대해 알 필요없다고 일축하기엔 질문이 너무 진지해서 바쁜 중에 용을 쓰고 신문과 잡지, 인터넷 사이트에 실린 이라크 전쟁자료들을 찾아주었다.
이런 저런 자료를 읽고 난 우리아이는 갈수록 답하기 난처한 심각한 질문들을 던졌다. 필자의 대답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논리적일 수밖에 없었다. 유엔 안보리의 표결절차조차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전쟁을 감행했으니 명백한 침략전쟁이라고. 이라크 독재정권이 테러를 지원하고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서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감행한다는 미국의 주장은 억지논리라고.
그렇다. 이번 전쟁은 힘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조폭의 무법천지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사회교과서에서 배운 상식은 어디에도 통하지 않았다. 미국이 깡패국가, 그것도 조폭의 총우두머리 국가라는 비난을 면하려면 적어도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자기들이 주장하는 전쟁명분의 두 가지 증거를 제시해야 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지금 미국은 더욱 고개를 들 수 없는 처지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지금 어디에서도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테러조직을 지원했다는 증거도 없다. 마치 전쟁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무차별 폭격과 대량살상을 감행한 미국의 행동은 9·11테러보다 더한 학살극이다.
미국의 또다른 전쟁명분은 사담 후세인의 독재로부터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켜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이라크 국민들의 몫이다. 어떤 경우든 진정한 해방은 핍박받는 사람들 자신들이 주체가 되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자기나라의 국익을 위해 약소국에 개입할 때마다 언제나 그 나라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해준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런 방식으로 세계도처의 국내분쟁에 개입하여 자신들의 이득을 관철시켜온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라크 전쟁에 대해, 미국의 행동에 대해 남의 일이라며 관심을 끊으라고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미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고 언제든지 마음만 내키면 한반도에서도 전쟁을 도발할 지 모를 일이다.
우리 정부가 국민들의 전쟁반대운동에 부딪혀 초기의 입장에서
후퇴하여 전투병력이 아닌 비전투병력 파병만을 결정했을지라도 그것은 미국의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동참하는 행위였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우리 정부의 이러한 결정은 도덕적으로도 명분이 없을 뿐 아니라 ,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리에도 위배되며, 더욱이 침략전쟁을 금지한 헌법 제5조 제1항에도 위배된다. 우리정부의 행동을 우리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설명하자니 참으로 난감하다. 사회교과서의 상식까지 부정해야 하니까.
아이들에게 특정한 국가를 지지하고 반대하라고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사이든 부모이든 교육이념이 추구하는 사회정의, 평화, 자율의 가치에 비추어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분별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을 따름이다. 정의의 편에 서는 것, 반전평화의 편에 서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는 데에는 굳이 반미라는 용어를 쓸 필요조차 없다.
최근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반전평화수업을 일부 보수세력들이 '반미 의식화' 교육으로 명명하며 문제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미'니 '의식화교육'이니 하는 50년대 냉전시대의 우스꽝스런 용어들이 되살아나 다시 위세를 떨치려 한다. 교육부조차 그것을 문제시하고 있으니 한숨이 나온다.
교사든 부모든 아이들이 제기하는 진지한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것에 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교사의 자율성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잡무에 시달리느라 수업자료준비가 부족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을
국가권력이 개입해서 해결하려는 것은 냉전시대의 발상이다. 레드 콤플렉스의 망령 때문에, 우리 내면에 있는 숭미의식 때문에, '반전'과 '반미'를
혼동해서는 않될 것이다.
/안진(광주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