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지하철, 도청이전, 문화수도…리더의 책임
[오늘과내일]지하철, 도청이전, 문화수도…리더의 책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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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지하철

1992년 6월 19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광주지하철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공청회가 광주시청 회의실에서 열렸다. 전문가들과 각계대표들이 토론자로 나선 자리. 그러나 아무도 지하철의 근본적인 타당성에 대해서는 토론하지 않았다. 빚을 내서라도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찬성론만 판을 칠 뿐이었다. 공사를 착공하기 직전인 1996년 초, 광주시의 인구예측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당연히 지하철 건설이 재검토돼야 했지만, 광주시는 요지부동 일을 밀어 부쳤다.

그렇게 환영받던 지하철이 공사도 끝나기 전에 골치덩이로 변했다. 지하철 때문에 짊어져야 할 부채가 광주시의 재정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선임 시장은 후임 시장이 결정했다고 하고, 후임 시장은 선임시장 때부터 추진해 온 일이라고 한다.

◎도청이전 반대

도청이전을 반대해 온 심정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도청이전은 되돌릴 수 있는 상황을 넘어 섰다. 그렇다면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것이 한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역할이다. 아무리 양보해도 지난 해 광주시장 선거에서 도청이전 반대를 공약한 것은 지나친 일이었다.

광주시가 그렇게 소모적인 의제에 매달려 있는 사이, 광주발전의 호기(好期)였다는 김대중 정권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도청이전의 대안으로 추진해 온 도심활성화는 김대중 정권이 끝나도록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이제야 계획이 나왔다지만, 도청이전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없는 노무현 정권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얻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화수도

그렇게 흘려버린 세월도 모자라, 이제는 또 문화수도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그동안 문화도시임을 자임해 온 광주가 새롭게 문화수도를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 인프라에서 다른 지역보다 앞서고, 문화산업으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들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문화수도론은, 그 취지가 배타적이란 점에서 옳지 못하고, 중앙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이 실천할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고, 광주시의 계획대로 성공한다해도 지역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익(實益)이 없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3월 15일자에 실린 졸고(拙稿) '문화수도론의 비문화성과 비경제성'이나, 문화수도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던 김진애씨등 외부 전문가들의 토론내용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리더의 역할

이런 문화수도를 이 지역의 리더들이 추진하자고 한다. 기댈 곳은 단 하나,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당시 연설이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해져 보자. 광주의 문화수도 건설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집에는 없는 내용이다. 선거를 닷새 앞두고 광주를 찾은 대통령 후보.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 민주당 광주시지부의 건의를 받아 급조된 원고에 끼워 넣은 것이 문화수도였다. 물론 대통령 후보는 상황에 상관없이 신중해야 했다. 그렇다 하드라도, 참모들의 검토 한 번 거치지 못한 공약을 연설문에 끼워 넣고, 그걸 빌미로 약속 이행을 채근하는 것은 아무래도 신사답지 못하다. 문화의 도시 광주의 길은 아니다.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채근하는 이 지역의 정치인들을 향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오는 질문이 있다. 그래 당신들은 모든 공약을 지켰는가? 언제까지 이 지역의 리더들은 광주를 도로(徒勞)의 길로 이끌고 갈 것인가. 이제 그들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언론의 책임

IMF사태가 터졌을 때, 국민들은 언론을 질책했다. 언론 스스로 반성도 많았다. 지하철에서, 도청이전 반대에서, 지역 언론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오히려 문제를 부풀려 온 과오도 있다. 그것으로 부족했던가. 이제 또 일부 언론이 문화수도론에 북장구를 치고 나선다. 지역의 바른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면, 정당한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지금 '광주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따져 봐야 한다.

나는 진심으로 내 고향 광주가 문화의 도시, 민주 평화 인권의 도시, 환경의 도시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한 비판이 제기되고, 타당한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상식의 도시'가 먼저 되어야 할 것 같다.

/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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