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광주에서 문화수도론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참여자치 21에서 도시디자인센터를 발족시키면서
이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는가하면, 지난 주에는 문화연대와 광주문화자치회의가 공동으로 '광주 문화수도론'의 진단과 전망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이번 주에는 광주전남 비전 21에서 문화수도는 과연 가능한가라는 보다 도발적인 질문을 내세우면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비전 21 토론회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이 직접 참여하여 지난 1월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광주 문화수도론의 실체를 어느 정도 밝혔다.
광주 스스로의 실질적 준비
중요
필자가 두번째 토론회에서 밝혔듯이 문화수도론은 행정관청의 이전을 핵심으로 하는 행정중심적 패러다임, 문화산업론을 근간으로 한 경제주의적 패러다임, 시민 생활의 질의 제고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론적 패러다임으로 구분된다.
어느 패러다임에 서느냐에 따라 광주 문화수도론을 바라보는 입장이 크게 달라진다. 문화수도가 개념적으로 가능한가로부터, 광주가 문화수도가 될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우리는 이런 방식의 질문을 1980년대에 예향론을 둘러싸고, 200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문화도시론을 둘러싸고 제기한 바 있다. 그런 논의의 성과가 광주비엔날레의 창설이었고, 또 문화광주 2020 기본계획의 수립이었다.
최근의 토론에서 몇가지
잠정적으로 합의되어가는 것이 있다.
첫째, 문화수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둘째, 벤치마킹의 대상은
세계도시가 아니라 인구 100-200만의 문화도시여야 한다는 것,
셋째, 하드웨어 중심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
넷째,
대규모의 단일 프로젝트보다 다수의 중소규모 프로젝트가 바람직하다는 것, 다섯째, 광주비엔날레나 민주인권도시라는 이미지와 같은 현재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
여섯째 문화상품의 생산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향유와 소비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정부에 기댈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준비를 광주 스스로가 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광주의 현재의 역량으로 문화수도라는 이름에 걸맞는 선진적 문화도시를 만드는 것은 힘겨운 일임에 틀림없다. 부족한 역량으로 큰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흩어져 있는 역량들을 최대한 유기적으로 결집해야 한다.
여기에서 몇가지 제안이 가능하다.
우선, 시의 문화관광국, 비엔날레 재단, 대학의 문화관계 연구소, 문화관련 시민단체의 핵심실무자들이 허심탄회하게 모여 토론하는 자리를 자주, 또는 정기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권위나 형식을 내세우지 않고, 실제로 기획과 연구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모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이런 모임은 영역간의 네트웍 부족 또는 상호불신에 의해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
둘째, 국내외 사례들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문화관련 방문, 답사, 연구가 이루어지면 꼭 리포트를 작성하고 이를 발표하여 아이디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전문연구자 뿐 아니라 지역정치가나 행정 당국자, 문화운동가들에게도 해당된다. 가칭 광주 문화문고를 창설하여 출간함으로써 이런 토론과 리포팅 시스템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광주비엔날레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광주비엔날레는 한편으로는 그 자체로 광주라는 도시를 세계에 알리는 효과적인 수단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기초로 문화산업을 일으키는 징검다리이다.
지역사회 역량 유기적 결집을
광주 비엔날레가 그동안 거둔 성과가 많지만, 가장 부족한 것은 문화예술적 담론 생산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술의 전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준비과정에서 그리고 그것의 평가과정에서 학술적 토론을 통하여 논쟁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문화예술의 전시와 학술적 비평-연구가 충분히 결합하지 못했다.
아울러 공공미술의 영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비엔날레의 성과가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에 기여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의 성과가 공중으로 사라지거나 창고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광장과 거리로 나와야 한다. 우리는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 파리가 수차례에 걸친 만국박람회의 산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근식(전남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