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문화수도론의非문화성 그리고 非경제성
[오늘과내일]문화수도론의非문화성 그리고 非경제성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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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후 '문화수도론'이 꽤 수선스럽다. 그만큼 대통령의 말 한마디 무게가 큰 것일까.
지난해 12월 14일.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광주공원에서, 광주를 '문화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문화수도'란 말은 틀린 말이거나 최소한 적합하지 않은 말이다.

'수도'는 한 나라의 정치나 행정의 중심지를 말한다. 그렇다면 문화수도는 문화행정의 중심지이어야 한다. 문화관광부를 광주로 옮겨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과문한 탓일까. 나는 아직 중앙정부부처를 여기저기 흩어 놓은 나라에 대한 사례를 듣지 못했다. 산하기관을 지방에 두는 사례는 많지만, 중앙부처는 수도에 있는 게 타당해 보인다. 중앙부처는 청와대와 국회 다른 부처 등과 밀접한 업무연관을 갖는 기관이다. 화상회의니 통신의 발달이니 하는 얘기도 있지만, 아무래도 머리를 맞댈 일은 맞대야 할 것이다.

모나리자 미소도 사올 수 있는건가

백번 양보해서 일부중앙부처를 지방으로 보낸다 하드라도 문화관광부를 광주로 가져오는 것은 논란꺼리다. 부산은 해양의 1등 도시이다. 농업이라면 전남을 1등으로 칠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를 광주가 1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절대다수의 문화유산과 문화행사가 서울에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광주로 문화관광부를 옮겨와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지역발전을 위한 욕심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어거지로 살 수는 없다. 대통령 자신도 1월 28일 지역분권토론회에 참석해 '그 때 그냥 문화도시라고 했으면 좋았을 걸, 괜히 한 발 더 나아가 문화수도라고 해 버렸다'고 겸연쩍어 했다.

이런 비현실성보다 더 큰 문제는 '문화수도론' 이 내포하고 있는 지배적 속성이다. '수도'는 한 나라에 둘일 수 없다. '내'가 수도이면 '너'는 수도일 수 없고, '너'는 '나'의 정치적 행정적 지배를 받아야 한다. 야만의 문화, 지배의 문화도 하나의 문화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내'가 수도를 돼서 ' 널' 지배하겠다는 의식은 아무래도 '문화적'이지 못하다.
최소한 '너'와 '나'의 차별없이 대동세상을 열어가자는 '無等'의 문화는 아니다.

문화수도론이 횡횡하다보니 어처구니없는 주장들도 많다. 광주에 대형 박물관을 짓자거나 외국에 몇 백년 걸쳐 지은 건물이 유명하니 우리도 그런 건축물을 짓자는 것들이다. 대형 박물관을 짓는다고 하자. 그럼 그 안에 전시할 세계적 유물들은 있는가. 박물관을 지어놓고 '모나리자의 미소'를 사올 수는 없는 일이다.

수 백년 걸려 건축물을 짓자는 주장도 그렇다. 그 시절의 건축술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은 63빌딩도 몇 년만에 짓는 세상에, 몇 백년 걸쳐 건물을 짓자는 게 말이 되는가. 왜 이렇게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나오는가. 그것은 문화를 '인간 삶의 반영'으로 보지 않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주의에 치우친 까닭이다.

   
▲ 대형 박물관을 짓는다고 하자. 그럼 그 안에 전시할 세계적 유물들은 있는가.(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박물관)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선의를 가지고 열심히 해보겠다는 사람들을, 나서서 비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광주권의 국토발전뱡향을 문화수도로 정한다는데 이르러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며칠 전 건설교통부는 향후 국토관리 기본방향을 정하면서, 광주와 목포권은 문화수도를 지향한다고 했다. 이건 광주가 '문화'로 돈을 벌자는 얘기인데, 문화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주장이다.

지난 해 말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문화산업백서를 보면 문화산업은 대중문화와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와 'Technology'가 결합돼야 비로소 '문화산업'이 되는 것이다. 그림 몇 점 팔거나 공연을 잘 한다고해서 한 지역이 살아갈 만큼 돈벌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광주에서 문화산업을 일으키려면 제일 먼저 방송이 옮겨와야 한다. 지역방송이 아니라 KBS나 MBC 같은 주요 방송사의 본사를 옮겨 와야 하는 것이다. 애시당초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애니매이션이나 캐릭터산업 같은 것도 주요 市場인 방송과 떨어져서, 옮겨 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쯤이면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자. 광주에서 문화산업은 안되는 것이다.

'문화'로 수도하겠다는 욕심버리자

돈을 벌지 않아도 문화는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면 문화는 그 정당한 자리에 두자. 문화로 '수도'를 하겠다거나 돈을 벌겠다는 터무니없는 욕심은 접어두자.
돈을 벌겠다면 광산업 하나라도 딱부러지게 하자. 아직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클러스터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광산업 클러스터 하나라도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보자.

제발 대통령 한마디에 냄비처럼 들끓지 말고, 지역의 미래를 고민해서 결정하자.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대통령님, 당신 실수하신 겁니다.' 하고 웃어 넘길 여유도 좀 가져보자.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는 '참 분권'의 길일 것이다.

/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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