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차라리 크게 하라
[투데이오늘]차라리 크게 하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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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원[지방분권국민운동 공동집행위원. 광주대 e-비즈니스학부 교수]

옛부터의 광주는 한량(閑良)들이 만든 도시다. 가사문학권에 흩어진 정자들, 유유히 그려놓은 온갖 그림들, 여기저기 벌어지는 온갖 굿판, 이런 게 주로 한량들에 의해 지탱되었을 테니 아니 그런가. 한량들의 공급원은 단연 기름진 평야지대의 전남이다. 광주가 전남에 근거를 둔 소비도시인 단초다.

이제 옛 한량들의 문화는 유물이 되었지만 한량문화의 전통만은 살아남아 광주는 여전히 소비도시, 그러나 빈약한 소비도시다. 지금 광주를 지탱해주는 한량은 오직 광주에서만 빈약하게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광주의 비전은 한량을 늘리는데서, 그것도 밖에서 찾아 늘리는데서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돈타령만 할건가

많은 사람들이 광주의 부흥을 원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에 시대 변환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커다란 공장에서 물건을 펑펑 만들어 낼 생각에만 젖어있어 정보, 지식, 문화, 예술에는 눈도 돌리지 않아서 그렇다. 이런 규모의 시대적 변화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 수렵에서 농업으로, 농업에서 공업으로의 변환만큼이나 거대한 변화가 제조업에서 지식정보산업으로 일어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특히 광주가 가지고 있는 소비도시적 특성은 새롭게 다가오던 시대와는 궁합이 아주 잘 맞는 것 아니던가. 우리가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것에 대하여 꿈도 꾸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지역은 각종 컴퓨터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새로운 산업을 지원했고 우리는 이제야 허둥대고 있다.

텅 비어있던 첨단지역에 정보문화예술대학을 세우고 전국, 아니 세계의 고등학교 학생 컴퓨터 도사들을 월급을 주어서라도 유치했더라면 광주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메카가 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돈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 할 것이다. 그동안 지하철, 월드컵 경기장에 쓴 돈이 얼만데 광주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사업에는 돈이 없다고 예산 타령을 한다면 좀 그렇지 않은가.

다행히 아직도 희망은 있다. 문화예술이 아직 남아있으니 여기에 같은 방법을 써보자. 광주를 문화예술도시로 만들고 싶으면 문화예술 한량들을 불러와야 한다. 광주에 사는 문화예술인들의 작품을 꾸준히 사주어 보라. 광주에 빵모자 쓴 예술 한량들이 꾸역꾸역 몰려올 것이다. 1년에 10억 어치만 사주어도 예술 한량들이 광주에 득실댈 것이다.

문화예술산업은 이렇게 모인 수많은 한량들이 스스로 만들어 낼 것이다. 문화교류도 이들이 스스로 해야 한다. 관에서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돈 없다는 말은 하지 말라. 지하철 하루 운행하는데 얼마나 적자나는지 말해 버릴 거니까.

자, 또 어떤 한량들을 볼러올까. 오라! 요즘 자치단체들이 경마장, 경륜장을 유치하려고 야단이던데, 게임 한량들을 불러오면 어떨까? 그러나 나는 자치단체들의 이러한 계획에 반대한다. 자치단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지역경제 때문이 아니라 자치단체의 살림살이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역경제의 비전은 외부에서 사람을 불러와 지역에서 소비하게 만드는데서 찾아야 하는데, 자기 지역사람들이 자기지역에서 도박하게 만드는 정책은 비전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박장을 하려거든 차라리 라스베가스처럼 하라. 광주인근에 게임특구를 만들어 광주전남 시민주를 모집하고 외자를 보태어 세계최대의 도박장을 만들어라. 그리고 광주 전남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외지의 한량들만 들여보내라.

문화예술에 희망걸자

또 있다. 지금 대형쇼핑몰이 등장하여 광주의 영세 유통업체들을 붕괴시키고 있다. 세포가 죽으면 생명체도 죽듯 세포경제인 풀뿌리 업체들이 죽으면 광주경제도 살지 못한다. 그런데도 자치단체는 법에 따라 허가를 내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체념하고 변명한다.

도를 닦는 사람들은 체념할 수 있어도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자치단체는 체념해서는 안 된다. 이 역시 대형쇼핑몰 허가를 내 줄 바에는 차라리 초대형 쇼핑몰을 만들어라. 광주의 유통업자들에게만 주주가 될 권리를 주어라. 외국자본을 끌어들일 때는 광주의 유통업자와 동반투자하게 하라. 대통령에게 이야기하여 광주를 소비특구로 지정받아라.

홍콩으로 물건 사러 가는 소비 한량들을 광주로 불러라. 온갖 진기한 물건들을 초대형 쇼핑몰에서 팔아라. 경제특구에 생산, 교역 특구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만들면 있는 거지. 그렇게 하려면 대통령에게 이것저것 요구할 게 많을 것이다.

/이민원(지방분권국민운동 공동집행위원. 광주대  e-비즈니스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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