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가다-어둠 속의 댄서
영화관에 가다-어둠 속의 댄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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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 넘나드는 <어둠 속의 댄서> 극장 개봉 날 첫 프로를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영화가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가 그랬다. '괴팍함'의 대명사 트리에가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괴상한 뮤지컬 영화, 지난해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는 이 영화를 내어찌 손꼽아 기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셀마는 미국 워싱턴주의 한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체코 이주민. 그녀가 사는 유일한 의미는, 머지 않아 자신처럼 눈이 멀게 될 아들이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돈을 모으는 일이다. 깡통 속에 한 장 두 장 지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그녀는 자신이 아들에게 물려준 어둠의 유전자를 '빛'으로 뒤바뀌게 만들어줄 순간도 가까이 다가옴을 행복하게 느낀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짊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비극적인 '현실' 속의 주인공인 그녀는 그러나 다행히도 아마추어 극단에서 공연할 '사운드 오브 뮤직' 연습에 몰두하며 빠져드는 '환상'(뮤지컬로 표현되는 부분이 환상 장면이다)으로 위안받곤 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출의 탁월함…, 라스 폰 트리에의 감독으로서의 천재성은 바로 이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그가 비록 인위적인 영화 요소를 배격한 '도그마 선언'으로 '백치들'을 만든 이후, 뮤지컬을 차용한 이 영화로 그 이즘을 포기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셀마가 처한 극도로 고통스런 현실과 지극히 평화로운 환상의 교차가 계속되면 객석 여기저기서 코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단 일초라도 방심하면 손이 싹둑 잘려나가는 프레스 기계 앞을 이미 눈이 멀어버린 셀마의 손이 왔다 갔다 할 땐 나 역시 몇 번이고 오금이 저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를 내야만 했다. 그런데 그 고통에 치를 떠는 순간, 셀마의 노래가 들리면 화면은 순식간에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가 되고 만다. 여기서, 쉘마 역을 맡은 뷔욕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팝가수이자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인 뷔욕은 이 영화에서 '절대적'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독특한 영화 스타일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해도 좋을 만큼 그녀의 연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다. 조그마한 체구인 뷔욕의 얼굴은 마녀와 성녀, 어린아이와 어른의 분위기가 동시에 담겨있어 다층적인 자의식을 지닌 셀마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맞은 배역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 세상에서 단 한 명 그녀만의 독특한 노래와 연기는 '그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만들고자 한 트리에 감독의 의도와 철저히 부합되어 있다. 셀마는 친절한 이웃에게 배반당하고, 본의 아니게 그를 살해하게 되고, 교수형까지 받게 되는 순간까지도 노래하는데, 클래식과 결합된 일렉트로닉하고도 실험적인 사운드를 깐 독특한 음향이 온몸의 신경줄을 자극하곤 한다. 그런데, 사실은 비평가들에게도 일반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독특한 춤과 음악을 끌어들인 신파조의 멜로영화라는 비난과 더불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의 영화라는 찬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감독을 '신의 손, 원숭이의 머리'에 비유하며 이 영화를 워스트로 꼽은 매체도 있다. 카메라 100대로 찍었다는 철길 노래 장면의 탁월함은 '신의 손'에, 관객의 심장을 쥐어짜 내내 불편하게 하는 가학증적 스토리 전개는 '원숭이의 머리'에 해당됐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트리에 감독과 뷔욕에게 이끌리는 이유는 뭘까? 아참, 아직 고아한 자태를 잃지 않은 까트린느 드뇌브(셀마의 동료, 캐시 역)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 영화가 내게 준 감동 중의 하나다. /심향미 (금호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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