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닷컴]인터넷 유해사이트 논란-세상에 접속하는 코드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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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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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용 기자

목포 동반자살 3명 인터넷 자살사이트 회원
'중학생 살인' 부추긴 유해사이트 ...세대간 이질감이 원인
청소년에겐 인터넷은 해방구  기성세대는 생활의 도구일뿐
기성세대는 현실 불만 가상공간서 풀고  인터넷세대, 가상세계 욕구 현실서 해소
인터넷 세대.기성세대 함께할 접속코드 마련 시급

지난 4일 전남 목포에서 동반자살한 남녀 3명이 자살사이트 회원인 것으로 확인됐고 지난 5일 광주에서는 중학생이 친동생을 살해한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이들 사건을 인터넷 유해사이트 등을 자주 접속한 것이 자살 또는 살인동기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따라 인터넷 자살 사이트, 폭탄제조 사이트에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노출된 문제점이 지적되고 학교와 가정 탓이 제기됐다.

심지어 국가차원에서 인터넷 전체를 통제해 아이들이 아예 이들 유해 사이트에 접속할 기회 자체를 차단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진단들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과를 볼 때 인터넷과의 인과관계가 너무도 뚜렷하게 나타나 각계의 진단과 예방책은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가.

속성상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인터넷 세상을 물리적으로 통제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또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통제의 기준을 정하기도 힘들뿐더러 최근 국가보안법 논란에서 보듯이 자칫 통제의 기준이 전체의 공의가 아닌 일부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인터넷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하지만 서로 다른 코드로 세상에 접속하려는 어른들과 청소년들의 이질감이 이같은 끔찍한 사건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길을 아예 막아버린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에게 인터넷은 이메일, 상품구매, 정보획득 차원에 그치고 있다. 분명히 기성세대의 준거집단은 물리적 현실세계인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벗어날 생각도 별로 하지않으며 사실 인터넷만의 세상에서 살만한 능력도 별로없다. 현실세계에 접속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인터넷 세대들이 딛고있는 현실은 이와는 다르다. 또 하나의 세상인 인터넷에서 생활하고 성장하고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을 이곳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실제 생활의 상당시간을 인터넷에서 살며 남은 시간을 현실에 할애한다. 학교가고 학원가는 시간이 더 많겠지만 현실세계에서도 이들의 관심은 인터넷에 집중돼 있다. 인터넷 게임상의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현실에서 매매가 이뤄지고 폭력사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번 인터넷 앞에 앉으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떠나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가상의 공간에 접속해 현실세계의 대리만족을 한다고나 할까. 친동생 살해 사건의 경우 준거집단의 혼동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건의 기록을 보면 이 학생은 지난해 7월 '어디서 해골을 구해 제사를 지내야 되는데 어떻게 구해야 될 지 모르겠다'는 말을 학교 교사에게 했다고 한다. 수많은 학생들이 즐기고 있는 인터넷 게임의 스토리에 나오는 이야기다.

또 '폭탄을 제조해야 하는데 필요한 약품을 어떻게 구하는지'에 대해 과학교사에게 이메일로 문의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엽기적인 발상이고 듣기에 섬뜩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기성세대들이 현실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적의와 살의를 폭력적인 게임을 통해 배설해버리려는 사고의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면 인터넷 세대들은 가상공간에서의 불만과 욕구를 현실이라는 부차적인 세계에서 해소한다고 볼 수 있다. 완벽한 역전이 이뤄진 것이다.

주변의 학생들은 '그건 게임에 나오는 내용이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들이다. 엽기, 자살, 폭탄, 살인 등 상상력의 외연을 무한대로 넓혀놓은 가상공간에서 그같은 일은 흔하디 흔하다는 것. 실제 당시 이 학생의 말을 직접 들었던 이처럼 무시무시한 말에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하지만 '별 거 아니다'라는 주변 학생들의 설명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요즘 아이들이 그런가 보다'하고. 교사들을 비롯한 기성세대들은 이들의 세상에 쉽게 접속하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이 있다는 사실 정도만 희미하게 느낄 뿐. 학교는 이 사건 이후 학부모들에게 가정에서 유해사이트 단속을 잘 해 달라는 통신문을 보냈다. 인성교육에도 더욱 힘쓰겠다고 했다. 현실세계의 논리로만 이들을 바라볼 뿐 학생들이 사용하는 코드로 학생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려는 노력은 미약한 느낌이다.

목포동반자살 사건 역시 이들이 D사 인터넷 카페에 개설된 자살사이트 '이리로 22'에서 '자포자기' '죽은 새' '죽음의 늪'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회원이라는 것이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물론 이들의 동반자살 동기가 자살사이트 때문이었다고 확정하긴 어렵지만, 그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 인터넷 세대들의 접속 코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하다.

대증적인 처방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지구 위에 훨씬 더 넓은 영역으로 탄생한 가상공간과 현실과의 연결통로, 인터넷 세대들과 기성세대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접속코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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