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박시장의 책임
[오늘과내일]박시장의 책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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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물론 이런 일들을 박광태 광주시장이 처음부터 기획하고 결정했을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시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법리와 상식에 어긋난 시정을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박시장은 꽤 오래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광주시의회에서는 요즘 건설공무원들의 부조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하나는 지하철건설회사가 내야 할 지체상금 250억 원을 편법으로 탕감해준 것이고, 또 하나는 불량 자재를 사용한 건설업체를 비호하며 처벌하지 않은 것이다.

지하철 턴키 공구 공사가 계약기간 안에 끝날 수 없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계약기간이 끝난 지난 해 12월말에 이 공사 진척도는 82%. 지체상금 수 백억 원이 걸린 이 문제를 '광주시가 공정하게 처리할 것인가' 관심들이 많았다. 호사가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함이었을까. 광주시 지하철건설본부는 설계변경을 이유로 공사기간을 6개월 연장해 주었다. 기간만료를 겨우 이틀 앞 둔 결정이었다.

그러나 광주시가 공기연장의 사유로 내놓은 것들은 모두 수년에서 수개월 전에 설계변경을 마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이제야 설계 변경해 건설회사를 봐준 의혹이 짙다.

250억 원이면 광주시의 전체 문화예산보다 더 많은 돈이다.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직원에서 계장 과장 부장 본부장으로 이어지는 5명이 내렸다는 것도 어이없다. 자기들만 짊어지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을까. 도시철도자문회의가 공기연장에 동의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의회 심의에서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공무원들이 왜 하지도 않은 심의를 했다며 도시철도자문위원들을 끌어들였는지 그 속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행동은 지하철 안전을 위해 자문해주고 있는 전문가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엉뚱한 위원회를 들러리 세우는 수법은 평동산단 진입로 부실공사 처리에도 사용됐다. 공사하청에서 생긴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설치된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느닷없이 부실벌점 적용 문제를 상정한 것이다.

부실벌점부과는 법조항이 명백해서 자문이 필요 없는 사안이다. 예전에 벌점을 부과할 때 이런 위원회에 자문을 받은 전례도 없다. 그런데 건설교통부의 유권해석까지 받아 놓고도 '업자에게 유리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변호사나 위원회 자문을 계속한 것이다.

11일 열린 의회에서 건설국장은 다음부터 벌점을 강화하겠다고 하면서도, 이번에는 결정을 바꿀 수 없다고 고집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금광기업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반면 다른 회사들은 더 엄격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지하철본부장은 의원들과 기자들 앞에서 공기연장이 잘못됐다고 해도, 시공업체에게 지체상금을 물릴 수는 없다고 했다. 어떤 경우에도 건설회사에게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는, 그 배짱이 놀랍다.

'부순 돌'이 대통령령이 정한 '자재'이긴 하지만, '기자재'는 아니어서 처벌할 수 없다는 간부도 있으니, 그 논의 수준의 저급함을 견딜 수가 없다. 초등학교의 낱말시험에나 나올법한 문제를 따져야 하는 나도, 그렇게 억지를 부려야 하는 그도 서글프다.

기자재 : 기계 기구 자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두산동아 새국어사전에서)

이제 박광태 광주시장이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광주시장이라는 자리가 귀막고 눈 막고 앉아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언론이, 의회가, 시민단체가 제기한 이 문제를 모른다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시장은 지난 해 취임식에서 한 약속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둘째, 투명하고 합리적인 행정을 실현하여 (중략) 시민에게 신뢰받는 선진자치행정을 정착시켜 나가겠습니다.
(박광태 시장의 취임사 중에서)

요즘 광주시는 노무현 당선자에게 공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시장도 자기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선진자치행정은 못되더라도, '상식적인 행정'을 보고 싶은 시민들의 최소한의 바램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나는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광주시의 공무원 직장협의회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의 성패는 노동자들이 자기들의 권리주장만 하느냐, 아니면 자기가 생산한 생산물에 책임을 지느냐에 달려 있다. 일반 상품도 아니고 공공행정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노동운동은 '권력의 탄압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시민대중의 신뢰를 잃었을 때 실패한다'는 세계노동운동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수 공무원들의 잘못으로 광주시 전체 공무원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협의회가 그냥 두고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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