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란은 생활의 대란이었다.'
'인터넷 대란은 생활의 대란이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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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인터넷>
<피해는 규모 예측 불허, 허점투성이 >
<당국의 책임, IT강국 도약계기 삼아야>


지난달 25일 발생한 인터넷 대란은 결국 생활의 대란이었다. 금융계, 쇼핑몰 업체, 공공기관 등에 대한 접속의 문제는 주말과 휴일이 끼어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주말과 휴일이라고 생활인들의 삶이 빗겨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는 박진희씨(여. 31)도 대란의 피해자다. 업무 특성상 비행일정을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시간에 맞춰 출퇴근해야 하는데 이날 아무리 인터넷을 두드려도 연결이 되지 않았던 것. 결국 전화통화로 일정을 확인하긴 했지만 30분 동안 접속이 안된 컴 앞에서 답답해하던 그날을 생각하면 황당한 생각까지든다고 했다.

인터넷은 업무뿐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한 공간이다. 주말 저녁 인터넷 동호회원들과 만나기 약속했던 조현호씨(28. 남구 봉선동).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이번 대란으로 낭패를 맛봐야 했다. 그는 온라인 모임을 시작한 지 두 달만에 첫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로 해 기대가 부푼 상태였다. 구체적 시간장소를 메일로 받기로 했는데, 퇴근 후 메일을 열었지만 먹통이었던 것이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최지현씨(여.32. 북구 중흥동)는 "웹서핑은 그 자체로도 스트레스 해소의 한 방법이 되고 있다"며 "이번 인터넷 대란을 통해 업무는 물론이고 생활의 많은 부분이 막히는 것을 경험하면서 인터넷이 우
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왔는지 새삼 절감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람들간 만남의 비중을 보아도 직접적 만남보다 메일교환이나 온라인 등을 통한 만남의 비율이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어쩌면 속도와 편리함이 한순간에 우리 삶에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고 덧붙였다.

이번엔 최대 소송대란으로?

인터넷 대란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다양한 유형의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법적인 소송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은 'IT강국'의 상징인 PC방들. 전국에 산재한 수천개의 PC방 업주들과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이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대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부 얼론에선 피해액을 220억원대로 추산하기도 했다.

설대목을 앞두고 특히 주말 휴일 특수를 노렸던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도 피해규모는 PC방 업계에 못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관련 업계별로 연대해 집단 손배소송을 검토중이어서 KT나 정보통신부 등 관련 통신업체와 정부기관이 대책을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피해자들을 대신해 집단손해배상청구 경험이 네차례나 있는 참여연대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인터넷 대란에 대한 소송은 피해 인원 등을 감안할 때 천문학적 규모가 될 전망이라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특히 참여연대는 서비스 이용약관의 손해배상 규정을 근거로 KT(구 한국통신)와 하나로통신 등 초고속통신업체를 상대로 통신장애에 대한 집단손해배상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초고속통신망 이용약관에 의하면 통신장애로 인해 고객이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을 하도록 규정되어있으며, 배상기준은 '최근 3개월 분의 요금의 일 평균액을 24로 나눈 시간당 평균액에 이용하지 못한 시간 수를 곱하여 산출한 금액의 3배'로 되어 있다.

따라서 통신이 불가능했던 시간을 하루로 잡을 경우, 월 3만원을 내고 있는 KT의 '매가패스 라이트' 가입자의 경우 약 3천원을 배상받게 되며 초고속통신망 가입자가 천만명을 넘는 점을 감안할 때 배상규모는 수백억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IT강국의 약한 모습', 유감없이 드러내다

최대 피해에 최대 소송까지 줄을 잇는 상황은 결국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는 앞으로 삶의 중심으로 파고들 인터넷 시대에 대한 최소한의 준비사항이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선 '인터넷 대란은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는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1위는 단연 정보통신부. 보안에 취약한 프로그램을 제공한 MS사나 서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KT 등의 업체에도 책임이 있지만 정보보안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지고 있는 정통부에 책임의 화살이 쏠리고 있는 것.

한 네티즌은 "정통부는 도대체 무엇에 정통한 정통부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질책하기도 했다.

정통부가 타킷이 된 것은 우선 늑장 대응. 사태가 발생한 지 21시간이 지나서야 원인과 대책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안철수 바이러스연구소나 하우리 등 사설 백신관련 업체들이 벌써 10시간 전에 원인을 진단하고 백신을 내놓은 뒤였다.

뒤늦은 진단과 처방도 문제지만 정통부의 처방전은 오히려 국민들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샀다. 정통부는 사건발생 이튿날 '대 국민행동요령'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마치 모든 국민들이 개인PC에 대책을 세워야하는 것처럼 헷갈리게 했다는 것.

그러나 정통부의 무능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해 처음엔 KT 혜화지사 서버의 해킹이라고 발표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곧 밝혀지고, 나중엔 민간업계의 의견을 들어 보도자료도 급히 수정하는 촌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정통부의 이같은 '늑장 대처'와 '헛다리분석'으로 정통부는 언론으로부터 '양치기 소년'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사상 초유의 인터넷 대란이라는 재난을 겪으며 한국민들은 인터넷이 얼마나 개개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또한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고 'IT강국'은 헛된 꿈이라는 사실 역시 절감해야 했다. 특히 정통부의 경우 민관을 조율하는 정책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뼈아픈 지적이 제기됐다.

새해 정초부터 벌어진 국가적 대란. 액땜으로 생각한다면, 앞으로 또다시 닥칠지 모를 더 큰 재난에 대비하는 성숙함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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